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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5

나경원 그리고 조봉암...2014년7월31일(목) #.1나경원이 대한민국 입법부의 하나의 기관으로 떠들어 대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나쁜사람들 이름을 말했다고 의원직에서 쫓겨났던 노회찬은 다시 상처를 받았다. 그녀가 살려달라고 떠드는 소리에 동작구민들이 흔들리진 않았을 것이다. 강남4구가 되어 집값을 올리겠다는 그 처절한 그들의 욕망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10년, 20년 아니 50년정도 지나, 돈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겠지만, 부동산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북한에 대한 공포에 찌든 노인네들이 늙어 죽어들 가면 조금은 변하게 될까? 희망을 성급히 버릴필요는 없지만 이런날 자꾸 딴 생각이 들어 큰일이다. 우울하다. #.21959년 7월 29일진보당 당수 조봉암은 간첩죄로 사형을 당한다. 60년도 되지 않았다. 진보정치를 한 정치인을 간첩으로 .. 2014. 7. 31.
이소룡&백남준...2014년7월20일(일) #.11932년 7월20일백남준이 태어났다. 1만시간의 노력이 없이도 예술가는 만들어진다. 보편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예술을 만들어 낸다. 그 어떤 가치보다 자유로움을 선택하는 것. 옳음과 상관없이 전망을 하는 것. 뿌리는 사람에 두는 것. 예술가다. #.21973년 7월20일이소룡이 홍콩에서 죽었다. 70년대 청춘들에게 화려한 로망이었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아도 하늘을 보아도 회색빛으로 가득했을 세월들이였을 것이다. 천명관의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서 그려지는 사람들이 뛰어다니던 시절. 이런 저런색으로 덧칠할 필요가 있을까? 그 시절을 살아냈던 내 또래 이상의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 잘들 포장해 낼 것이다. 열에 아홉이 발맞춰 앞으로 행진을 할 때 이소룡 흉내를 내며 갈짓자 걸음을 걸었을.. 2014. 7. 20.
이름표...2014년7월17일(목) #.1 이름표. 도보행진 중인 어느 단원고 학생가방매달린 떠난 친구들의 이름표가하얗게 무겁다. 느리게 가라않는다.내 마음속인지 물속인지도 알수없는 깊은 어둠터덜거리며 걷는 아이들의 가쁜 숨소리가아슬아슬 끌어올린다아이들의 솜털가득한 손등꼭 쥐고 놓지않은 손가락그게사람이다 #.21948년 7월17일.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명기한 최초의 성문법이 만들어 졌다. 고조선까지 치면 근 4천년 이상의 역사에서 처음있는 있는 일이었다. 주인님 눈치만 보던 노예신분을 아무튼 법적으론 처음으로 벗어났다. 그랬을 뿐이다. 60년이 넘어간 지금 아직까지 전체국민의 절반 이상은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못한다. #.31958년 7월17일.왕가위가 태어났다. 내 청춘을 상징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든 감독. 술, 담배.. 2014. 7. 17.
하로동선...2014년7월16일(수) #.11945년 7월16일일명 맨하탄프로젝트,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실험이 성공했다. 인류는 과학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기들 스스로를 절멸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역설적이게도 두번의 폭탄 사용으로 핵은 대규모 세계대전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물론 국지전까지 효과를 보여주진 못했으나 60년 이상의 전반적인 평화엔 기여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우산아래 비를 피한다 하고 우산가진 자들에게 모든 권리을 양도해 왔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나마 지금까지는 그래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우리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를 멸종시킬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21969년 7월16일아폴로 11호을 발사했다. 쏘는 사람도 날아가는 사람들도 그들이 생존할 확율이 높지 않을 .. 2014. 7. 16.
도시여름...2014년 7월14일(월) #.1하루 한편 씩 업로드 하기. 하루 한가지 이상 생각하기.하루 한번은 정리하기.나의 하루. #.21789년 7월 14일.프랑스혁명의 초반. 파리 바스티유감옥의 함락. 혼란의 한가운데서 그들은 그래도 될까를 생각했을 것이다. 민중이라 불리우는 사람들. 데모대열의 앞열에 서 있던 사람들. 누군가가 소리쳤을 것이다. 감옥을 열자. 수천년 동안 내려져 왔던 권위의 상징이라 볼 수도 있다. 너희들이 죄를 지으면 가야하는 곳. 더 이상 너희들이 죄인이라 말한다고 그렇게 그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상징의 표현이였을 수도 있겠다. 비록 몇명의 소소한 죄인이 있었을 뿐이였지만 그들이 열어재낀것은 감옥의 문이 아니라 그들 마음속의 족쇄를 열어내고야 만것일 터이다. #.31862년 7월 14일.오스트리아 구스타프 클림프 .. 2014.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