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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기시군 2025. 4. 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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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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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 때문에 살아남는다면 현대소설은 당대의 맨 첨단, 그 꼭대기에서 우습게 또는 진지하게 관계 맺은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묘사하여 ‘지금’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 준다는 담론적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성해나는 함께 빛나고 있는 다른 젊은 작가와는 다른 미묘한 향취로 독자에게 유니크한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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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편을 집어본다. 표제작 ‘혼모노’는 한참 전 ‘젊은 작가상’ 피드에서 언급한 것 같으니 뺀다. 

*킬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
속되게 말하자. 누군가가 어떻게 ‘빠’는 되는가는 각자의 형태로 각자의 의미로 객관적일 수 없는 이유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빠’에서 ‘까’가 되는 순간이다. 이성과 판단, 남아있는 감각의 잔재의 치열한 투쟁이 하나의 멋진 서사로 완성된다. 

*스무드
매끈한 세계를 사는 (한국말도 하지 못하는) 재미교포 3세의 태극기부대 참여기. ‘의도도 동기도 비밀도 없는 예술’을 큐레이터 주인공은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 할머니의 친절에 ‘ 알 수 없지만, 아주 좋은 하루. P111 “ 를 보낸다. 

*구의 길 :갈월동 98번지
인간은 욕망의 불구덩이 속에서 생존한다는 것을 믿는 건축과 교수는 박정희가 지시한 고문건물을 설계해야 한다. 성실해 보이는 제자 한 명을 지목해 일을 시작한다. 건축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사명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제자 덕분에, 건물은 점점 최대한 인간에게 가할 고문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괴물로 만들어져 간다. 

*우호적 감정 
밴쳐, 직급없이 서로 영문이름을 부르며, 버티컬 한 사업계획과 포티지티브 한 사고를 이야기하는 CEO 맥스 밑엔 대기업에서 스카웃된 중년의 ‘진’과 창업동기 ‘수진’, 그리고 막내 알렉스가 하나의 TF로 묶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사고는 사고로 전 직원들에게 개별 직원의 인센티브가 공개되면서 시작된다. 

*잉태기
상류층들의 삶, 결핍이 집착이 된 두사람(며느리와 시아버지)이 딸(또는 손녀)을 놓고 벌이는 한판의 소동극. 지금의 계급사회가 만들어 내놓은 결핍자 둘(늙은 그리고 더 늙은)과 그 결과물인 무사유 소비자인 딸(혹은 손녀)의 어우러지는 인물과 사건의 묘사가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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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가들이 많다. 누구는 분위기로, 누구는 사건으로 어떤 이는 인물들의 개성으로 각자의 유니크함을 뽐낸다. 작가 성애나는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다른 작가들보다 한 발자국 씩 진도 더 나가가는 느낌이다. 통속극을 코미디로 만드는 센스. 과함이 과하지 않게 다듬을 수 있는 균형감. 개성 있는 인물묘사 등 별 흠이 보이질 않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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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시비를 거는 방식도 독특하다, 직설적으로 또는 아주 돌려서 다시 돌려 무언가를 흘려 놓는다. 알아보고 줏어갈 독자들은 줏어갈 것이고, 나는 나의 글을 쓸 뿐이다라는 혼잣말이 들리는 것 같다. 어떻게 변해갈지 정말 궁금한 작가다. 오랫동안 지켜볼 예정이다. 

✍ 한줄감상 : 재능인지 노력인지 아직은 판단이 서지 않지만, 다양하고 흥미로우며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임엔 틀림없는 소설가의 두 번째 작품집.

덧,
상식의 부족인가. 단편들을 읽다가 몇개를 배웠다. ‘필리스틴’이 속물적이고 고매한 교양적 상식, 예술적 가치를 이해 못 하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라는 사실. 이런 단어도 모르는 걸 보면 난 ‘필리스틴’ 임에 틀림없다. 😂 벤처기업을 배경으로 하는 ‘우호적 감정’에서 읽은 ‘버티컬 하게 가보자’라는 문장. 그냥 타겟시장에 깊게 집중해 보자라고 말하는 하면 이미 촌스러운 회사원인 건가? 벤처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한 탓일 꺼라 자위해 본다.

p33 “ 우리는 정말 좋아서 빠는 거잖아요. “

p47 “ 그건 실수가 아니잖아요. 눈물 연기 못한다고 애 팔뚝을 피멍 들 때까지 꼬집은 게 어떻게 실수로 포장돼요? “ 

p70 “ 리는 갤러리를 포함한 이 아파트의 모든 공간엔 입주민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p71 “ 제프의 작품에는 분노도 불안도 결핍도 없었다. 비버라 크루거나 뱅크시의 작품처럼 무엇을 비판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런 매끈한 세계를 추앙했다. “ 

p176 “ 고문받을 이들이 넘쳐나는 바람에 증설한 시설이자 취조를 해도 실토하지 않는 이들이 최후로 방문하는 밀실. 그것이 내무부 장관이 여재화에게 발주한 증축 공간의 실체였다. “

p181 “ 제 생각에. 이 공간엔 창을 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이 생기잖습니까. “ 

p240 “ 정이 흘러넘치고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 안에서, 나는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

p244 “ 미안해하지도 겸연쩍어하지도 않고 내 돈을 거리낌 없이 쓰는 아이…. 이 아이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누릴 뿐이다. 자연스럽고 기껍게. “ 

p272 “ 사랑에 갈급해서 제가 받지 못한 걸 죄 자식에게 쥐여주려고 하잖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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