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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기시군 2025. 5. 2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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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할마음이있습니다 #김지수 #느린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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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터뷰어로 기억하는 기자로 김지수작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이런 종류의 시에 대한 에세이를 계속 손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별 기대 없이 펼쳐든 책이 참 마음에 많이 와닿았습니다. 그녀에게도 지켜야 할 ‘마음’이 있고, 독자인 나에게도 지켜야 하는 ‘마음’ 있습니다. 시는 그 소통 창구이나 무기이자 찬란한 배설이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계속 개정되어온 책입니다. 그 시간이 이 책을 만들었나 봅니다. 시간 그 자체를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굉장히 쓸쓸한 일 p239’이라는 사실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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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에 담긴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라는 시의 앞부분이 재미있습니다.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이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

형식화 추상화 되어 있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구체화 시킬 수 있는 힘이 ‘시’에겐 있습니다. 

또는 시는 치료제입니다. ‘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의 많은 변주들이 시인들을 만듭니다. 그리고 시는 세상과 싸웁니다.  ‘네게 좆이 있다면  내겐 젖이 있다  그러니 과시하지 마라 P174’ 도 멋진 시어입니다. 사회 안의 개인의 차별과 고통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힘을 주는 것도 시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이런 ‘적의’마져 산뜻하게 만드는 것이 시인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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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성취와 목표 앞에 지켜야 할 마음을 잊습니다. 물질적 성공의 정답지와 처세를 위한 질문들만 가득합니다. 시는 정답지 없는 질문입니다. 해석할 수 없는 ‘사태’를 맞이할 때 그 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시’입니다. 

김지수작가는 시는 ‘아주 조금만 말하기p61 ‘이라 합니다. 덧 붙이고 싶습니다. 조금만 말하며 깊게 말하기가 시라 생각합니다. 

✏️
좋아하는 시인과 그들의 시로 가득한 책입니다. 다정한 작가의 추억과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선물 같은 책입니다. 

시의 선물은 매번 따뜻하진 않습니다. 몽환과 비탄, 삭제된 아름다움에도, 통제되는 슬픔의 상흔에도, 불행과의 대결에서 만들어지는 결핍과 그 극복의지 모두가 시의 선물입니다. 기형도시인이 말한 ‘질투’라는 장작을 내 마음속에서 태울 때 만들어지는 에너지도 그 선물의 영향권 하에 있습니다. 

시간과 사물과 지켜낸 내 ‘마음’을 직시하는 용기를 모두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외롭거나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자신이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온다 합니다. 먼저 내 ‘마음’ 밖의 것들을 이해해 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그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습니다. 

✍ 한줄감상 : 시는 좋은데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가 궁금한 시 초보자들과 선별된 좋은 시의 해설을 읽고 싶은, 시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 

덧,
작가는 이성복시인에게 ‘선재’라는 호를 하명받았다고 합니다. 질투 납니다. 😅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절친 개똥철학자 친구 녀석이 저에게 호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섬’이 제 호였습니다 바다 가운데 떠있는 하나의 섬이란 뜻이었습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시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이제 세상에 없는 그 친구가 보고 싶습니다. 

p6 “ 생의 최전선에서 전투적인 리듬으로 노래할 배짱이 없었기에, 후방에서 타인의 언어를 척후하는 기자가 되었다. “

p26 “ (속리산에서-나희덕) 산다는 일은 /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

p40 “ (동사무소에 가자-이장욱) 서률들은 언제나 낙천적이고 / 어제 죽은 사람들이 아직 / 떠나지 못한 곳 “

p50 “ (지하인간-장정일)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

p66 “ (초산-장석주) 산통이 오는지 개가 운다. / 호소하는 듯 긴 울음이 / 딱딱한 내 몸통 속으로 / 밀려들어온다. “

p78 “ (밥-천양희)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 

p106 “ (슬픔이 없는 십오 초-심보선)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나갔다 / 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 어디로든 끝 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 

p110 “ (길을 잃다-이병승) 마음은 길을 잃고 싶어도 / 머리는 이미 돌아올 길을 계산하고 있었다는 걸 / 마흔 넘은 이제야 알았다 “

p130 “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p178 “ (이우성-이우성) 애인이랑 통화하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 애인이랑 모텔 가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 야동 보느라 회사 가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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