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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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서 #천쉐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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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읽었던 #무라카미류 의 #한없이투명에가까운블루 가 떠올랐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밀접한 결합이 만들어 내는 파괴적 미학, 이십 대 작가만이 가능한 폭주의 기록이 아주 늦게 찾아왔다. 1995년 초판 발매 이후 선정성 이슈 등으로 절판되었다가 다시 발매된 책이다. 대만 최초로 동성결혼에 성공한 인물, 그녀에서 글을 쓴다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숨쉬기가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살아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글쓰기의 기록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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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책이다. 줄거리의 비중은 낮다. 각 단편의 이야기를 조금은 남겨두고 싶다.
*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쓰는 ‘차오차오’에게 ‘이쑤’가 다가왔다. 남자의 욕망을 먹고사는 이쑤는 차오차오와 동거를 시작한다. 차오차오는 먼저 떠난 엄마와 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빠 탓일까. 치유되지 않은 마음을 달고 산다. 그녀는 이쑤와의 깊은 키스에서 섹스를 통해 잘 알 수 없는 구원의 느낌이 가진다.
*이상한 집
나는 이상한 집에서 에로 소설을 글을 쓰는 사람이다. 많은 여자들이 이 집에 왔다가 갔다. 떠나거나 죽은 소녀도 있다. 이번엔 남친에게 착취당하다 탈출한 ‘타오타오’가 집에 들어왔다. 받아들였다. 몸도 마음도 같이 받아들였다.
*밤의 미궁
피아노를 치는 난, 3년전 나의 아이가 죽고나서, 갑자기 중지 손가락을 잘랐다. 잘린 손가락을 수세식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렸다. 남편 아린은 여전히 날 사랑하지만, 내 몸은 메말라버려 그에게 문을 열지 못한다. 매일 밤 찾는 술집에서 나의 문을 열수 있는 여자를 만났다.
*고양이가 죽은 뒤
세살 되던 해 엄마가 죽고 난 시골 외할머니집에 맡겨졌다. 그곳엔 ‘후’라는 고양이가 있었다. 지금의 난 대학을 그만두고 영화간판을 그리는 일을 하는 가난한 직장인이다. 우연히 퇴근길에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고 말았다. 쉭하고 고양이가 날아와 내 심장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고양이 말고 내겐 ‘아마오’가 있었다. 남자같이 생긴 여자, 섹시하고 멋진 사랑하는 아마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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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과 단절 속에서 낯선 묘사와 시공간을 흔들어 대는 서사를 지켜보자면 #배수아 작가가 떠오른다. 차이가 있다면 여성성에 대한 감각적 몰입에 있어 천쉐의 경우, 에로티시즘의 아우라가 진하게 배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이런 자기 해체적 글쓰기를 좋아한다. 끝없이 추락하며 몇개 남지 않은 개인의 쾌락에 매달리는 위험과 가여움에 끌린다. ‘구제되지 못할 듯’한 절망감. 표현과 묘사의 금기를 너무 쉽게 넘나드는 작가의 자유로움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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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지난 시절들을 떠올렸다. 물론 난 이성애자이고 작가와 같은 파괴적인 삶을 산적은 (아쉽게도) 없다. 하지만 성실한 교회오빠 같은 삶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긴 했다. 😎 생각해보면 나도 아직 에로스와 타나토스에 대한 매혹에서 아직 다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저 일상의 ‘장맛비’에 젖어가며 경향적으로 착해지고 있을 따름이다. (이것 역시 아쉽다. 🙃)
동성애는 존재이며 삶이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 상식이 된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소수자는 세상과 대결을 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을 지지한다. 이 책이 쓰여진 1995년도는 더 삐뚤어진 ‘상식’들이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시절이었다. 시대와 맞짱 뜬 작가가 존경스럽다. 멋진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 한줄감상 : ‘사람이 담긴 이야기’ ....다만 인간의 욕망과 에로티시즘에 대한 직시가 눈에 더 들어오는 이야기. 사랑과 몸에 대한 이야기.
덧, 하나
작가가 이번 #서울국제도서전 에 초대되었다고 한다. 티켓예매 놓쳐 나는 방문하지 못한다. 😅 기회 닿으신 분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실 수 있겠다. 이제는 중년이 된 작가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하다.
덧, 둘
내게는 끌리는 소설이지만 대중적으로는 거부감을 느낄 요소가 많은 책이다. 참고하셨으면 한다.
p23 “ ‘눈물 냄새가 나네.’ 이쑤가 내 음부를 빠는 사이에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
p27 “ 그래서 글을 쓰는 거야. 글쓰기를 통해 잠재되어 보이지 않는 자아를 파내려고 시도하는 거야. “
p31 “ 내 몸에 한 알 한 알 홍갈색 돌기가 돋아났다. “
p35 “ 사실 내가 찾는 것은 무덤이야. 타락한 나의 텅 빈 영혼을 안장할 수 있는 무덤이 필요해. “
p41 “ 엎치락뒤치락하며 잠 못 이루는 밤에는 카프카를 읽으면서 수음을 하기도 했다. “
p58 “ 나는 올해 마흔 살이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많이 마신다. 자위를 하고 남을 위로하기도 한다. 나는 색정소설을 제조하여 ....남자들을 미혹시키면서 돈을 번다. 나는 정통 문학을 날조하여 지식인들을 즐겁게 해 주고 가짜 명성을 만든다. “
p74 “ 이름 없는 여자아이는 두 젖가슴 사이에 입이 하나 나 있어 쒹 하는 소리와 함께 단숨에 나를 산 채로 집어삼켰다. “
p78 “ ‘ 정말 행복해. ‘ 타오타오가 말했다. ‘ 그 다음은? ‘ 그 다음이라고? 그 다음은, 먼저 화장실에 가서 대변 좀 보고 올께. 대변을 보고 와서 말해줄게. “
p89 “ 모든 인생은 미궁 속으로 들어간 실험용 흰쥐와 같아. 이유도 모르면서 먹이를 찾고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출구를 찾지. “
p113 “ 답안은, 답안은 존재하지 않았다. 답안이 존재하지 않으니 물을 필요도 없었다. “
p135 “ 내 몸은 커피 냄새와 낡은 가구냄새가 가득한 협소한 공간에서 인체공학을 초월하는 갖가지 자세를 취했다. “
p150 “ 기묘한 음악이 내 하체에서 흘러나왔다. 졸졸졸 그치지 않았다. “
p187 “ 고양이의 부러워하는 자신감과 자기만족, 오만함, 좀처럼 타협할 줄 모르는 근성이 부러웠던 거야. “
p199 “ 사람의 말이 무서운 걸까? 하지만 진정으로 내게 위해를 입힌 것은 나 자신의 연약함과 무지였다! “
p219 “ ‘슬퍼!’ ‘왜 슬픈데?’ ‘나는 섹스를 하고 싶다고! 그런데 너는 자꾸 뭔가를 물어대잖아.’ 우리는 미친 듯이 뒤엉켜 몸을 섞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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