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
#안녕이라그랬어 #김애란 #문학동네
‘휑’ 이란 글자를 자세히 봤다. ㅎ과 ㅜ 그리고 ㅔ 에다가 이응받침이 만들어내는 모양새가 정말 ‘휑하다’는 느낌을 낸다. 몇 번을 울컥거림을 참아내고 책장을 덮었을 때, 남는 단어였다. 내 삶이, 아니 우리 이웃의 삶이 이렇게 휑했나 싶다.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선의와 폼새은 뺀 교양과 뒤떨어지지 않은 상식을 가진 남자로 잘 늙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애란 작가는 그런 날 자신의 책으로 조용히 긁어버렸다.
난 그저 ‘ 어쩌면 저렇게 자기 삶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얼굴로 거리를 누비는 사람p279’ 중 한명이었다.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모든 단편이 다 좋다. 몇편의 서두만 정리해 둔다.
*홈파티
교양과 품위 있는 자들의 파티에 초대된 연극배우 이이연, 조금씩 드러나는 그들의 민낯은 이기적이고 편협한 가치체계에 매몰되어 있다. 작가는 교묘하게 숨어있는 ‘계급 문제’를 무대 한가운데로 질질 끌고나와 조용한 난타전을 만들어낸다.
*좋은이웃
집값이 급등하기 전, 돈을 빌려서라도 집을 사야 하나 고민했던 부부. 시기를 놓치고 오르는 전세금 때문에 이사를 해야 한다. 위층으로 집을 사서 이사 오는 젊은 부부는 한 달 정도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며 과자봉지를 들고 양해를 구한다. ‘좋은 이웃’이 되겠단다.
*이물감
의사는 식도역류 때문에 이물감이 생겼단다. 그런데 좀 심하다. 이유가 뭘까. 이혼한 전처의 인스타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나름 유명한 쉐프와 썸을 타는 것 때문도 아니라 생각한다. 가끔 만나는 담백한 섹파 이혼녀 때문도 아니다.
*빗방울처럼
전세 사기를 당했다. 신혼부부 특공으로 아파트 당첨도 되었는데 전세 사기를 당해 시세보다 두배는 비싸게 이 낡은 연립을 사게 되었다. 빛은 늘었고, 나나 신랑은 더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한다. 나쁜 일은 자기 혼자만 오지 않는다.
길게 인용한다. 나나 나와같이 착한 척(?) 사는 사람의 속내다.
‘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욕구, 생존 욕구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그런데 그곳에 생존이란 말을 붙여도 될까 , 그런 건 좀 염치없지 않나 자책하다가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p141 ‘
일상은 훼손의 과정이다. 길어지는 일상에서 무감각해지며 ‘정말 소중한 것’들 대신에 남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에 시선을 빼앗긴다. 떳떳한 선을 고민하던 사람은 떳떳한 돈으로 자위하며, 좁쌀만 한 우월감으로 패배해가는 삶을 포장한다. 그러다가 가끔 ‘진심을 말하는 실수’을 범하기도, 갑자기 ‘휑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신형철 평론가에 따르면 작가는 ‘온갖 사실들의 오지를 걸어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의 방에 작은 깃발 하나를 꽂는 직업p298’이라 한다. 이 책은 그 방까지 독자를 잘 몰아넣는다. 깃발을 바라보는 독자는 ‘ 안타까움과 미안함, 짜증과 홀가분함, 연민과 죄책감이 동시에 p209 ‘ 느끼게 된다. 독자 괴롭히기 일인자. 사랑스러운 김애란 작가 악취미이자 그녀의 존재 이유다.
✍ 한줄감상 : 좋은 이웃인 당신 안에 숨어 있는 다른 당신을 찾게 해주는 소중한 책.
덧,
김애란 작가의 문장은 언제나 적절하다. 과한 치장도 없이 상투적은 표현은 찾아볼 수 없으며, 흔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적확한 느낌 그대로를 집어낸다. 사랑에 빠진 남녀을 한문장으로 묘사한다. ‘ 몸과 마음의 욕구가 거의 일치했던 때…. ‘ 난 이보다 연애감정을 잘 표현한 문장을 본적이 없다.
p53 “ 오랜시간 햇빛과 바람, 빗물에 색이 바래 순한 나뭇결을 드러낸 문틀과 창틀, 고상하되 전허 기름진 티가 나지 않는 담박한 그릇장, 세간과 배치와 배색, 그럴 리야 없겠지만 투숙객이 혹 초록에 물릴까 다홍과 주홍을 살짝 섞은 간이 화단까지 모든 게 적절했다. “
p58 “ 기호에게는 뭐랄까, 어려서부터 몸에 밴 쥐족적 천진함이 있었다. “
p62 “ 며칠 전부터 누군가 자꾸 사물의 입을 찢어, 각을 벌려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이기 전까진 말이다. “
p95 “ 오늘 하루, 이곳에서만 고맙다는 말을 세 번이나 들었는데 가슴이 왜 이렇게 횅한지 모르겠다고. “
p104 “ 평소라면 어디 기부했을 텐데, 집값 폭등 후 갑자기 마음이 인색해진 남편은 ‘한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며 중고 서점에 내놓을 책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
p113 “ 인권 감수성이 낮고, 돈밖에 모르는 점주는 결독 돈으로 혼내는 수밖에 없다. “
p120 “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힘들게 한 건 ‘어쩌면 잘못은 정말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
p142 “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
p152 “ 꼭 연예 상대가 아니더라도 희쥬ㅜ는 ‘일단 만나면 기분좋아지는 사람’이었다. “
p159 “ 당신들이 첫 세대가 아니라 ‘부모보다 못살거나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은 늘 있었어요. 지금도 있고. “
p175 “ 실제로 기태의 젊은 시절 꿈은 훌륭한 어른은 못 돼도 산듯한 중년은 되는 거였다….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
p179 “ 작은 쾌락이 축적된 얼굴이랄까. 아무튼 그런 인상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
#독후감 #북스타그램 #bookstagram #독서 #추천도서 #book #서평 #신형철 #한국소설 #안녕이라그랬어_기시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