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과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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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물 #배수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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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여름휴가 때, 거제도 독립서점인 #책방익힘 에서 구입한 책이다. 서점 구경은 좋았고, 특이한 표지(?)의 책이 마음에 들었으나 휴가철 풀장 앞에서 읽기엔 너무 어두운 분위기라 읽기를 미뤄놨었다. 뒷 이야기를 들어보니 배수아 작가가 체코의 사진작가 작품인 이 소녀의 누드를 꼭 표지로 써달라고 문학동네에 부탁했었다고 판다. 작품의 분위기와 어울린다고… 읽어보니 맞다. 자신의 글과 이미지화의 간극을 최소화시키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났고, 더 지나기 전에 2017년의 배수아작가를 만나보기로 했다. 어두움의 마력 속으로 들어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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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이나 내용 소개는 필요 없다. 단편으로도, 장편이라 해도 무방한 작품이다. 플로우를 타고 이어지는 꿈의 덩어리들을 쪼갠 들, 이어 붙인 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소녀는 버려지기도 하고 남자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이름을 가진 여성은 전학생으로 퇴직을 앞둔 젊은 선생으로 늙은 여자로 분화되어 서로 이야기를 한다. 북쪽엔 남자나 거인이 살고 여자들은 복종하다 도망치기도 한다. 7편의 소설은 첫 편 ‘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로 시작해 ‘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로 끝난다.
작가에겐 서사는 감각을 위한 소모품이다. 역시 작가에게 등장인물들은 ’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들‘이다. 터너의 그림 안의 인물처럼 흐릿하고 명료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듯 시끄럽게 떠든다. 사건을 일으키고 상호작용을 일으키지만 인과 관계는 모호하다.
마술사가 피리를 불면 바구니에서 끝없이 쥐들이 기어 나오는 세계, 축축하고 짙은 갈색의 시궁쥐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세계. 소녀(들)가 나오고 그들은 다들 무거운 코트를 걸치고 다닌다. 삶의 무게만큼 무거워 보인다. 그리고 아버지는 언제나 거인이다. 남자들은 소리친다. 강하거나 ’ 묽고 희박한 검정 p137‘이다. 자신이 감각하는 여성성의 반대편, 그녀가 이해하는 남성성. 그들은 몽환적 사디스트들, 그녀(들)를 찢어버린다. 피와 악취, 그것의 반복. 다시 반복. 그녀의 세계에선 ‘거울은 한번 비춘 것이 다시 세상으로 반사 p‘ 되지 못한다. 다시 반복, 니체의 ’ 영혼회귀‘의 세계가 떠올랐다.
이성은 ‘세상에 대한 이해’을 전제로 한다. 작가는 한 가지 자유를 가지고 있다. ‘이해’ 이전의 세계를 그릴 자유가 있다. 이 소설은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끔찍한 파괴와 잔인한 묘사들로 범벅이 된 세계를 표현하면서도 그녀는 이 모두를 ’ 공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그 누구도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다고 p‘ 믿는다. 그리 말하고 그것을 하루도 참을 수 없다고 다시 말한다. 작가에게 글은 꿈이고 꿈은 직관이기에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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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직관에 충실한 저작. 저자가 완역한 페소아의 #불안의서 와 유사한 면도 있다. 하지만 배수아의 세계는 조금 더 열려있다. 오직 자신의 감각에 몰입하는 페소아에 비해, 작가에겐 ’ 흉노‘도 있고, 여학생을 욕망하는 ‘교사’도 있으며, 대사관의 서류처리 등이 있다. 이쪽의 상징들은 역사와 남성성의 폭력성, 그리고 여성, 약자와의 비균질한 긴장이라는 현실을 희미하게 라도 녹여낸다. 이 모든 꿈은 땅을 딛고 있는 인간의 상처에서 근거한다는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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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인육을 파는 동네 시장을 헤매던 악몽을 꾼 적이 있다. 7살 정도 때 꾸었던 악몽이 각인되어 버렸다. 선명하다. 작가에겐 더 많은 기억과 상처가 있었던 것 같다. 그걸 씀으로 자기 정화를 실현하는 걸까?
이 소설집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이지 않았다. 꿈의 흐름을 따른다. 즉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완성된 작품집이다. 그녀는 소설을 하나의 굿판으로 만든 주술사다. 굿판에서 원하는 것은 뭘까? 이야기의 논리성? 주장? 아니다. 그저 내 안의 곪은 감정에 대한 배설 또는 난장이다.
✍ 한줄감상 : 이해 가능한 세계가 아닌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굿판. 꿈이어서 다행인 잔혹과 폭력이 넘실대는 마음의 반사체
p24 “ 난 일곱 살 생일까지는 남자애예요. 그리고 이후에 여자애가 돼요. ”
p35 “ 그 여자는 참으로 사랑스러웠으므로 우리 모두는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여자의 빰을 때리고 얼굴에 못을 박아 그 여자가 우는 것을 보기를 소망했다. ”
p91 “ 교사의 새집이 황무지 한가운데 서 있었다. 집 주변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있었고, 구덩이 속에는 푸르스름한 물이 그득했는데 물 한가운데는 여자의 머리칼을 가진 나무가 자라났다. ”
p107 “ 쥐라도 발견한 것일까? 그러나 아이들을 흥분시킨 것은 쥐가 아니라 쓰레기 더미에 섞여 있는 죽은 아기의 몸뚱이였다. 너무 오래 익힌 만두처럼 물에 퉁퉁 불은 얼굴에는 핏자국이 선명했으며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듯 탯줄까지 달려 있는 작은 아기였다. ”
p154 “ 소녀는 나와 눈이 마주친 최초의 낯선 것이었다. 그 마주침으로 인해 소녀는 나이자 곧 세계가 되었다. ”
p158 “ 여인의 손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손뿐만 아니라 여인의 온몸에서는 생선 썩는 냄새가 진동했으므로, 나는 여인이 나를 만지는 것이 싫었다. ”
p214 “ 무대 한구석 커다란 거울 뒤편에서 뱀과 물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알몸에 검은 황소 마스크를 쓴 두 남자였다….. 황소 마스크를 쓴 두 남자는 여교사의 벌거벗은 등과 엉덩이를 가시 달린 채찍으로 후려쳤다. 여교사는 웃으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좀 더 자극적인 자태로 죽임을 당하는 방법을 궁리했다. ”
p216 “ 날 죽여줘. 소리도 없이. 직관도 없이. ”
p217 “ 여교사는 엉엉 울면서 태아에게 기어갔다. 필사적으로. 허겁지겁 기어갔다. 여전히 히죽히죽 웃는 태아를 붙잡고 머리를, 몸통을, 뜯어먹었다. 팔다리를 뚝뚝 잘라서 어금니로 우걱우걱 씹었다. 책을 읽어줘. 엄마. 태아는 절반쯤 남은 얼굴로 여전히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
p246 “ 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물이 되는 것, 형체가 사라져 버리는 일이었어요. ”
p251 “ 예전부터 나는, 언젠가 자라서 임신을 하게 되면 기차에 뛰어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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