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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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궤도를 돈다. 일터와 집 그리고 그 사이 어느 곳을 뱅글뱅글 돌고 있다. 한편으론 우리 전체가 돈다. 엄청난 속도로 태양을 놓고 하루에 한 번의 궤도를 탄다. 지구라는 거대한 버스는 그 거대한 때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내 눈앞의 광고판이 세상의 전부 같다.
부커상 수상자 서맨사 하비는 일상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행위를 구체화했다. 아예 사람들을 지구와 우주의 경계로 올려보네 실제로 거리를 두고 지구와 우주를, 그리고 지구에서 서식하는 ‘인간이라는 종’을 사유한다. 이 작은 생물종 하나는 보유하고 잇는 뇌 부피보다 더 많은 ‘잡념’에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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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우주인이 대략 9개월간 좁은 우주정거장에서 자신들의 오줌을 재활용한 물을 마시며, 내 쉰 숨들을 걸러 같이 마시며 산다. 우주정거장은 시속 27천 킬로미터의 속도로 궤도를 따라 지구를 하루 16번씩 돈다. 소설은 이 하루동안 벌어지는 인간들의 ‘행위’, ‘생각’, ‘상념’, ‘대화’ 들을 다룬다.
지구라는 삶의 구체적인 장소와 방대한 우주의 경계에 위치한 사람들은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다. ‘충만한 의도’ 없이 이런 우주가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유신론자부터, ‘의도’를 믿지 않은 유물론자의 대화부터, 우주공간에서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은 딸의 슬픔, 지상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눈에 빠르게 들어왔다 사라지는 지구의 풍광, 우주의 장엄함에 따른 감정의 울림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소설은 마치 작가가 그곳에서 생활을 본듯한 생생한 현장감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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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100 만대분의 연료를 태우고 ‘궤도’에 안착한 이들은 유한한 시간 동안 궤도를 돈다. 아니 우리의 지구도 앞으로 50억 년 후면 적색왜성으로 팽창한 태양에 잡아먹힐 터이니 유한한 궤도여행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좋다’는 단어가 낯선 장소.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위압적이고 외롭고 별나고 장대한 곳 p34’이 우주정거장이라면, 지구라고 다를까?
한 번도 서본 적 없는 위치에서 ‘인간’에 대한 생각을 기회를 가졌다. 삶의 의미는 자신이 부여한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유기체라는 한계 속에, 스펙터클에 흔들리는 감정과 물리적인 고통과 답답함 속에서도 내 행동의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고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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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정말로 예술은 삶의 속의 허상이자 눈속임자 기교의 집합일까? 정말로 아름다움은 선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으니 아름다운 걸까? 정말로 진보는 실체가 아니라 느낌일까? 답에 대해선 더 느리게 생각해 볼 일이다.
한편으론 우주에서 울리는 작은 실내악 연주를 본 기분이 든다. 선율에 따라 악기에 따라 다른 음, 다른 느낌을 전하지만 모두 인간이 악기라는 도구를 통해 느낌과 감정을 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비슷했다. 발아래 지구를 두고 머리 위론 무한의 우주를 둔 사람들. 그들이 시연하는 연주를 차분하게 잘 감상했다.
✍ 한줄감상 : ‘ 존/엄/한/존/재/로 보/잘/것/없/는/ 삶/을/ 살/아/가/렴. ‘이라 딸에게 말하는 엄마가 있다. 이 한 문장 만으로도 난 이 책에 만족한다.
p10 “ 이들은 저마다 아홉 달쯤 여기 머무를 것이다. 아홉 달 동안 이렇게 무중력 상태로 떠다니고, 머리가 퉁퉁 붓고, 비좁게 지내고, 넋 놓은 채 지구를 보고, 그러다 저 아래 진득한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 “
p49 “ 우주에서 6개월을 보내고 나면 엄밀히 말해 지구에 있는 사람보다 0.007초 덜 늙는다. “
p88 “ 진공 우주 속 깡통에서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깡통에 든 깡통 인간. 4인치 두께의 티타늄 밖에 죽음이 있다. 그냥 죽음도 아니다. 존재의 말살이다. “
p96 “ 남근을 닮은 우주선을 우주로 쏘아 보내는 것만큼 오만한 행동은 또 없다. 우주선은 자기애로 미쳐 버린 종족의 토템이다. “
p180 “ 고소 공포와 향수병을 일으키는 우주라는 약에 그는 중독되었다. 이곳에 있기 싫지만 동시에 늘 이곳에 있고 싶은 마음. 갈망으로 긁힌 마음은 움푹 파였지만 텅 비어 있지 않다. “
p185 “ (그림 시녀들) 시선과 응시가 전부인 그림에서 어디도, 누구도, 무엇도 보고 있지 않은 유일한 존재가 바로 이 개다. “
p189 “ 치에(일본인 우주인)는 시계 내부에 살고 있고, 그 시계는 그녀의 뼈를 갈며 째깍째깍 돌아간다. “
p195 “ (빅뱅) 그날 우주를 농축한 초강력 에너지 입자가 빛보다 빠른 속도와 섭씨 1000조도 이상의 열기로 폭발했다. “
p201 “ 지금 우리는 무상하게 피어난 삶을 살고 있다. 광란의 존재가 딱 한 번 손가락을 튕기면 모두 끝나리란 것도 안다. 여름에 터져 나오는 이 생명은 새싹보다 폭탄에 가깝다. “
p212 “ 몸은 원자-자아가 담긴 샘. 걱정을 잊은 부분들의 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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