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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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마를렌하우스호퍼 #g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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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장바구니엔 언제나 150여 권 정도의 책이 담겨 있다. 기다리던 신간이 나온 날이 아니면 가끔 예전에 담아놓은 책들을 훑어보다 몇 권씩 주문을 한다. 이 책도 그랬다. 왜 장바구니에 담겨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내용인지도 잘 모른 상태에서 책을 받았다.
1960년데 발간된 오스트리아 여성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의 앞부분을 읽다가 조금 흥분했다. 디스토피아 소설이었다. 나 혼자 가끔 상상하는 세계, 지구는 멸망하고 나 홀로 살아남은 상황에서 벌이는 모험담, 좀비 또는 외계인, 다른 살아남은 사람들과의 쟁투 또는 사랑을 기대하는 모양새로 소설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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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녀를 둔 이혼녀인 난, 사촌부부의 초대를 받아 오스트리아 산골의 산장에 방문했다. 마을로 외출을 나간 부부가 돌아오지 않은 날 아침,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을 깨달았다. 산 주위에 투명한 벽이 세워졌고, 벽 밖의 세상의 생물들은 모두 돌덩이 같은 화석이 되어 죽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벽을 뚫고 갈 수 도 없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노인은 굳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멀리 보이는 마을 어디에도 움직임이 없다.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도 없고 생명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이 산장이 포함된 산 주위로 길고 긴 투명한 장벽이 세워진 것이다. 이 안에만 생명이 존재한다.
핵전쟁을 걱정하던 사촌이 산장이 많은 생필품과 생존도구를 장만해 놓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비상식량으로 얼마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느낌상 세계는 멸망한 듯하고 나는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유일한 친구는 귀엽고 덩치 큰 강아지 ’ 룩스‘ 하나뿐이다. 나는 룩스를 데리고 산을 돌아다닌다. 정보가 필요하다. 운 좋게도 벽이 쳐질 때 농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소 한 마리를 만나게 된다. 우유를 마실 수 있다. 나는 소에게 ’ 벨라‘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그리고 오래 진행되는 나의 삶 이야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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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부분의 흥분은 책을 읽으며 가셔갔다. 워킹데드나 28일 후 같은 좀비물이 아니다. 책은 의외의 재미로 나를 끌고 간다. 혼자가 어떻게든 ’ 살아가야 ‘하는 여자의 고생과 노력이 ’ 살아가는 것‘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자살을 결심하기도 어렵다. 강아리 룩스와 소 벨라를 돌봐야 한다. 무엇보다 도대체 이놈의 투명한 벽의 정체를 알고 싶다. 그리고 정말로 세상이 멸망했는지 알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녀는 분주히 살아간다. 지속적인 식량을 얻기 위해 감자(#마스 가 생각난다. 😊) 농사를 시작하고 콩을 경작한다. 사촌이 남겨놓은 사냥총으로 야생동물을 사냥해 육류를 얻는다. 우유로 버터나 치즈를 만든다. 야행 과일도 채취해 저장해 놓는다. 소의 거처 외양간도 수리해야 하고, 여름에는 소가 먹을 신선한 풀이 많은 산 꼭대기 산장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바쁘다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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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그녀가 사랑하는 강아지와 소로 버틴다. 아프면 앓고 나으면 일한다. 산의 풍경에 감동하기도 하고, 밀려오는 허무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헤매기도 한다. 읽다 보면 산속에 고립된 누군가의 모험담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일상이라는 허울 좋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고독한 삶에 잠시라도 눈을 떼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사랑하는 것들을 잃으며 깨달아 간다. 살아내는 삶 속에 ’ 해묵은 슬픔‘을 억지로 끼워 넣는 바람에 더 괴롭다는 것을. 어디에 있건 불안은 우리를 급습한다. 아니 스며들 수도 있다. 다양한 이유에서 ’나 여기 있어 ‘ 신호를 보낸다. 산속에서 2년간의 삶을 버텨낸 그녀를 통해 우리가 다시 느낄 수 있는 것은 ’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불안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의지‘ 뿐이라는 것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든 간에 말이다.
✍ 한줄감상 : 디스토피아 세계, 세계 멸망 앞에 망연자실한 40대 여성에겐 자연과 한 마리 사랑스러운 강아지뿐이었다.
P24 “ 사람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죽은 것이었다. 오직 살아 있는 것이라곤 초원의 풀과 나무 들뿐이었다. 어린 나뭇잎이 햇살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
P53 “ 나는 진실을 쓰기로 결심했다. 내가 일생 동안 거짓말을 하며 위해주었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없다. ”
P90 “ 내가 지금 함께 있을 사람을 고를 수 있다면 현명하고 재미있어서 함께 웃음을 나눌 수 있는 할머니를 원할 것이다. 웃음은 지금도 너무나 그리운 것이기 때문이다. ”
P102 “ 우리가 자유라 부르는 것은 정말 보잘것없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부과된 짐을 지고 가다가 결국에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죽는다…. 태어나고 죽는 일은 명예와는 관계가 없다. ”
P136 “ 쉬고 있으면 자꾸 지난 일을 생각하게 되고 잡념에 빠지게 된다. 나는 그런 것이 싫었다. 내게 남은 선택은 계속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
P142 “ 아직은 그럭저럭 삶을 즐기며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삶이 끝나가는 것을 아무 미련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
P152 “ 벽은 지루함을 몰아내는 데에는 단단히 한몫했다. ”
P177 “ 산속에서 정당한 일과 부당한 일을 가려서 할 수 있는 존재는 나밖에 없었다. ”
P188 “ 나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P195 “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몸이 아픈 것은 내가 끊임없이 짐승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
P226 “ 이 산속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살아있는 한 나는 사랑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말로 아무것도 찾을 수 없게 도는 날, 나는 삶을 멈출 것이다. ”
P281 “ 생각해 보면 인식이라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쓸모없는 선물일 뿐이다. ”
P330 “ 나는 시간에 길들여져야 할 것이다. 시간의 무심함과 그 항존성에 말이다. 시간은 거대한 거미줄처럼 무한히 퍼져 있다. ”
P366 “ 나는 괴로움을 단순에 말끔히 씻을 능력이 없었다. 그것이 무르익고 죽어서 나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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