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Life

절창

기시군 2025. 9. 19. 11:49

#절창 #구병모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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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알림을 받고 바로 예약을 했고, 책을 손에 든 건 어제 저녁을 먹고 나서다. 그리고 지금 난 이 책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 구명모작가가 구성한 세계 속에 몸을 담다 이제 빠져나왔다. 

작정하고 쓴 것 같다. ‘ 구병모식 스타일리쉬’ 는 이런 것이라 선언하듯 보여준다. 지금 검색해 보니 교보 베스트셀러 2위, 알라딘에서 5위다. 이 말은 소수만이 공감할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가 좋아할 소설의 서사 안에 조각조각 박혀있는 작가의 ‘의지’가 날 더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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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별하고 ‘읽고 쓰는’는 여러 일들을 하며 살아가던 내게 여성 입주 독서지도사라는 괜찮은 오퍼가 왔다. 살던 집도 빚 때문에 팔았기에 숙식제공은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재벌가의 숨겨진 아들로 알려진 집주인, 보스는 면접 대기하던 내 앞에서 기괴한 일을 벌인다. 거대한 덩치가 사내를 묶어놓고 피떡칠을 하며 고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 죽을 것 같다는 공포 도 잠시, 어떤 아가씨가 다가와 고문받고 있는 남자의 찢어진 상처에 손을 댄다. 그리고 사내가 숨기고 있던 비밀들을 ‘읽어내기 시작한다. ‘

그녀는 벌어져 피가 넘처 흐르는 베인 상처에 손을 대면 찰나의 불과한 순간에 온갖 감각과 언어정보가 전달되어 대상자의 생각을 ‘읽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녀의 독서를 지도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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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切創)은 베인 상처를 말한다. 사건의 중심이자 ‘몇 겹의 문장’으로 작가가 감싼 주제, ‘ 읽다’의 틈이기도 하다. 한자어들의 장점, 흩어지는 의미를 꼭 모아 집결시키는 힘을 아는 작가가 구병모 작가다. 이미 #상아의문으로 등에서 실험적으로 도입했던, 그때만 해도 그 낯섦에 조금 가리를 두고 싶었던, 그녀의 문장이 이제 자리를 단단히 잡았다. ‘절창’이라 발음하는 순간 느껴지는 긴장감과 무게가 소설 곳곳에 녹아난다. 

흥미로전 사건으로 대중의 눈을 끌고 오며, 독특한 작법으로 느낌과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그 안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간과 읽고 쓰는 행위와 의미를 묻는다. 잘 직조된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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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쓴 소설도 2가지로 분류된다고 생각한다. 압도적인 서사에 자연스럽게 끌려가며 완성된 작품. 그리고 이 책처럼 완벽하게 소설가가 서사와 문장을 지배하여 이야기의 시작과 마지막을 마치는 작품이 있다. 그녀는 한 권의 책을 완벽하게 지배하며 자기의 생각, 철학, 예술관 등을 적절하게 잘 녹여놓았다. 구병모 작가의 책을 오래 읽어왔지만, 지금까지 나온 책 중엔 최고라 생각한다. 물론 책 후반부 서사의 핍진성 부족은 지적 사항이 될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걸 뛰어넘는 아우라는 인정해야 한다 생각한다. 

한번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의 단절감과 리듬감을 소리로 듣고 싶어졌다.  

✍ 한줄감상 : 흥미진진한 초능력과 폭력의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읽은 행위에 대한 문학적/철학적 고찰이 잘 담긴 개성적인 책.

덧,
별도로 한 문장을 옮겨 놓고 싶다. ‘ 한 명의 사람을 한 권의 책 대하듯 다각도로 읽어야 인생이라는 이름의 위기를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감당할 수 있을 거란다. p301 ‘ 더 어렸을 때 들었어야 할 조언이다. 아니다. 지금 다시 들어도 필요한 이야기다.  

p11 “ 이야기의 배태란 일상의 붕괴와 질서의 와해 그리고 소망의 파탄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 “  

p41 “ 사람은 무언가를 들을 때, 심혈을 쏟지 않더라도 자신이 가진 지성과 가치관을 자연스레 동원합니다. “ 

p63 “ 거듭된 곡해 속에 난파된 말들의 바다 한가운데서도 뗏목의 파편 하나를 발견하여 올라타는 것을 가리켜 우리는 사람 사이, 즉 인간이라 부릅니다. “ 

p82 “ 과잉, 모순, 왜곡, 결락, 소요, 파탄, 돌출 등과 같이 인간의 특성을 서술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단어들이 내 머릿속을 거닐었습니다. “ 

p165 “ 글자를 해독하는 것, 글자가 모여 이룬 낱말의 부유를 응시하고 낱말이 모여 이룬 문맥을 붙드는 것, 물을 머금은 빨래를 햇빛 아래 널어 말릴 때처럼 의미를 머금고 무거워진 행간을 털어서 밝혀내는 것까지. “ 

p285 “ 신이라는 건 있잖아. 그냥 하나의 오래된 질문이라고 생각해. “ 

p300 “ 책 속에 그토록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이 등장하는 까닭은 인간이라는 텍스트가 얼마나 복잡하며 해결 불가능한 문제와 총제적인 모순으로 빚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

p302 “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인간들과…..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자 태초부터운명 지워진비극… 그리고 그 비극을 견디는 게 인생의 거의 전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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