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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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오지않는곳에서 #천선란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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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작가가 쓴 좀비 SF라니, 좀비마니아로써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좀비를 좋아하는 질문에 뚜렷한 답은 내지 못하겠지만 어릴 때부터, 좀비, 감염, 디스토피아, 생존 이런 상황들에 마음이 갔다. 현실을 빠져나오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나? 🤔
마음 착한 천작가님이 그리는 디스토피아와 좀비가 궁금했다. 역시나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좀비물이 탄생했다. 죽이는 이야기보다 살리고 싶어 죽는(?) 이야기가 가득이다. 이건 반칙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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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편의 연작이 담겼다. 스포 없는 선에서 앞부분 이야기만 정리해 둔다.
1부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우주선, 12년 만에 동면에서 깨어난 ‘옥주’는 이상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승무원들의 갈가리 찢긴 시체들과 심정지 상태에서 움직이는 존재들을 발견한 것이다. 시체들이 움직인다. 좀비들. 문제는 자신의 영원한 연인 ‘묵호’까지 좀비가 되어있다. 이상한 건 묵호는 나를 물려하지 않는다.
2부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
이미 지구는 좀비로 점령을 당했으며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좀비들마저 숫자가 줄어들었다. 소녀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부터 시체 같은 상태로 아픈 엄마를 돌보며, 3년 전 사라진 아빠를 기다린다. 은미, 전직 의사이자 자폐아인 딸 노윤을 홀로 키웠던 그녀는 좀비에게 물린 다리를 스스로 잘라내며 노윤과 자신을 힘들게 지켜왔다. 우연히 총을 든 소녀와 은미는 조우하게 된다.
3부 우리를 아십니까.
여고생 때 한눈에 내게 반한 아내는 졸업식날 내게 프러포즈를 했다. 그때까지 아직 여자와 키스도 해본 적 없던 나는 그녀를 받아들여 동성부부가 되었다. 행복은 여기까지. 뇌종양에 걸려 존엄사를 선택하고 잠든 난, 낯선 환경에서 깨어났다. 아내는 없고 병원 주변엔 좀비만 득실거린다. 아내는 나에게 ‘이야기’를 담은 녹음기 하나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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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좀비 소설의 탄생이다. 가끔 연인끼리 서로를 먹어버리겠다는 농담을 하지만, 소설에선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먹거나 먹힐 수 있는 가상의 세계다. 그 끔찍함을 피하고자 하는 사랑하는 이들 사이의 노력들이 애달프고 필사적이며, 끝까지 ‘로맨틱’하다. 아. 2부는 자식관계이나 아가페적이라고 해야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의식도 없는 엄마와 ‘숨’으로 대화하는 딸의 사랑. 좀비가 되어서도 연인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기적. 좀비화와 죽음 중 어느 걸 선택해야 내 연인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을까를 고민하는 사랑들. 좀비 소설을 읽다 울컥하기는 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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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은 기적이고 죽음이야말로 예정’된 것이라는 작중 언급이 와닿는다. 나의 탄생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회자된 말로 인식만 할 뿐이다. 예정된 죽음 역시, 죽음 이후의 순간은 모르기 때문에 죽음까지 다가가는 과정만 존재할 것이다. 고독하게 죽어간다는 뻔한 코멘터리는 빼자. 살아간다와 죽어간다는 동일어다. 작가의 주장처럼, 죽어가는 와중에 우리는 ‘사랑’을 안고 간다.
이 작품에서처럼 영원불변의 완벽한 사랑은 불가능하겠지만, 일반인 모두는 조금은 어긋나고 짧거나, 삐걱거리는 과정을 통해 죽어가고 있다. 그 끝에 좀비가 있던, 또 다른 무엇이 있던, 우리에게 중요한 건 어느 한순간 내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죽음과 종말의 소설에서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한줄감상 : 아무도 행복할 수 없는, 해피엔딩이 없는 세계에서 그려지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들.
덧,
오래간만에 소설을 읽다가 사전을 찾아봤다. ‘흔연’이란 단어. '흔연'은 한자어 '欣然(흔연)'에서 온 말로, 기쁘고 반가워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그냥 반갑다보다 흔연함을 느꼈다가 좀 더 있어 보이긴 한다. 😅
p41 “ 옥주. 세상이 끝났어. “
p47 “ 그런데 연구된 게 없어서 잠복기가 얼마나 긴지, 초기 증상이 있는 건지도 몰라. 그러니까 누가 언제 존비로 변할지 모른다는 거야. “
p52 “ (좀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쏴야 해.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시체가 되어버린 처참한 몰골을 봐야만 해. 이게 가장 끔찍한 종말이야. “
p56 “ 쉰 살이라는 건 너무도 완전한 어른 같았고,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했다면 존재할 가치가 없어 보였다. “
p84 “ 너는 속이 텅 비었고, 나는 입에 다 처넣고. 나는 좀비 되면 제일 먼저 엄마부터 물러갈 거야. “
p116 “ 괜찮으십니까. 이곳으로 올 거라면, 괴물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래도 오시겠습니까. “
p130 “ 비행은 날개의 활용일 뿐, 새의 정의가 될 수는 없지. 마찬가지로 ‘보행’도 ‘언어’도, 다리와 입의 활용일 뿐 인간 본질이 될 수 없지….. 퇴화란 평화의 상징일지도 모르지. “
p143 “ 입에 담긴 건 고작 말 한 모금뿐인데, 그걸 종일 뱉어 내야 하는 하루. 그 한 모금을 하루 종일 흘려보낼 수 없으니까 아무거나 막 뱉는 거지. “
p147 “ … 엄마는 … 자주 이 집에 박제된 것 같아. 늙어가는 게 아니라 낡아가는 사람. 햇볕에 삭고 바람에 풍화되는 사람. 죽어가는 게 아니고 메말라 가는 사람. “
p193 “ 책임감은 공포에서 온다. 살아가며 느낀 공포가 책임감을 키운다. “
p210 “ 숨은 잊을 수 없거든.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들었을 테니까. 사람의 숨은 잊지 못한다고 했어. “
p241 “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의식이 흐릿한 채로 있게 된다면, 그대로 편히 눈감게 해줘해 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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