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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책을 다룰 때가 되었다. 이번엔 작가의 장편 중 가장 평이 좋지 않은 '기사단장 죽이기'를 선택했다. '현현하는 이데아, 전이하는 메타포’ 라니. 부제부터 구리다. 그러나 팬심은 꾸준해야 한다. 못난이부터 어루만져 주는 것이 진정한 팬일 것이다. 어떻게 이데아가 현현하며 메타포로 전이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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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내용을 앞부분만 간략히 본다. 급작스럽게 이혼통보를 받은 초상화 전문 화가인 주인공은 집을 나와 깊은 산속 친구의 집에서 은거하게 된다. 친구의 집은 화가였던 돌아가신 친구의 부친이 물려주신 집이다. 어느날 우연히 주인공은 친구부친이 남겨놓은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다. 한편, 에이전트를 통해 비싼금액에 ‘초상화'를 의뢰를 한 '멘시키'라는 인물과도 만나게 된다. 엄청난 재력을 가진 신비로운 인물이다. 이 인간도 이상한 일을 시킨다. 아무튼 초상화를 그리며 생활하던 그에게 어느날 그림 속 '기사단장'이 실제로 나타나는 일이 벌어진다. 그림속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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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하루키의 주인공은 새로운 여자와 잠을 자고, 지난 여자에게 차이고, LP로 오래된 음악을 감상한다. 레트로한 차를 타고 향기로운 커피와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는 '하루키스러운' 사내다. 역시 언제나처럼 현실과 비현실은 너무 자연스럽게 서로 교차하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책을 읽고 나면 '무슨 이야기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의도를 생각하면 찾을 수 없는 '메타포'이다. 하루키는 과정과 절차에 집중하고 있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와 다르지 않다. 특히나 이 책은 다층적 서사가 많이 중첩된다. 동일본 대지진부터 나찌 저항운동, 난징학살 등 역사적인 사실들은 연속적이면서도 파편화되어 소설 전반에 펼쳐져 있다. 실상 작가가 집중하는 부분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은유'하여 세상에 드러낼 것이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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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소설은 소설가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가에서 '작품'이라는 것은 현실의 자기반영 툴인 동시에 '메타포' 자체이다. 내 눈앞에 구체화되는 현실들(그것이 역사적인 현실이나 아주 개인적인 이혼이거나)의 이데아를 은유해 내는 과정 자체를 복잡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일상에 현실은 몰아친다. 너무 다양하다. 여자와도 잘 수 있고, 지진에 바로 죽을 수 도 있다. 내가 즐기는 이 음악은 왜 좋은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너무 좋다. 몰아치는 현실을 사는 소설가는 '작품'이라는 '것'에 무언가를 담아내야 한다. 연설문이라면 깔끔하고 명료하게 주제을 전달하면 되겠지만, 작가에게 소설은 화가의 그림과 다름아니다. 다양한 붓질과 구도, 내 현실'들'을 반영한 '상징'등으로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넓고 다의적으로 읽힐 수록 더 멋진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그에겐 자잘한 다양한 '서사'적인 '현실'을 갈아 넣고, 그 과정에서의 예술가의 고통을 구체화 시킨다. 이 책의 미덕은 자잘한 '서사'라 표현한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를 돋구며, 몇번을 비튼덕분에 깊숙히 숨어버린 작가의 '없는 의도'를 발견할 때 좀더 기분좋은 독서가 가능한 것에 있다.
덧,
본문에서 편을 좀 들었다. 사족으론 좀 불평을 하긴해야할 것 같다. 이 작품의 문제점은 등장인물들의 스타일이 너무 올드하다는 것이다. 삼십대중반에 쓴 초기작의 '하루키스러운 주인공'들은 모던하고 세련되었었다. 하지만 육십대 후반에 발표한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말이 삼십대지 나이드신 하루키의 모습과 다름아니다. 특히나 신비로운 인물의 '멘시키'의 있어보임 역시 어디서 본듯한 이미지이고, 왜 주인공의 여자들은 매번 원나잇을 하거나 아니면 이유없이 떠나는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야 누가 뭐래도 인정하겠지만 인물 스타일에 대한 업그레이드는 신경 좀 써 주셨으면 좋겠다. 😔
p95"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p369" 한 생각이 가고 다른 생각이 온다. 한 형상이 가고 다른 형상이 온다. 나 자신조차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조금씩 무너졌다가 재생된다. 무엇 하나 같은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상실된다. 시간은 내 등 뒤에서 조금씩 죽은 모래가 되어 무너지고 사라진다. 나는 그 구덩이 앞에 앉아 시간이 죽어가는 소리에 마냥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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