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955 사랑에 대하여 ✔️#사랑에대하여 #체호프 #민음사 💘체호프의 단편들은 저수지 같다. 500여 편의 단편을 남긴 그에게 가끔 들린다. 이번엔 2025년 이항재의 새 번역으로 나온 민음사 세문전 판, ‘사랑에 대하여’다. 표제작은 사랑에 대하여 말하지만, 책의 대부분은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공감을 하다가, 허허롭기도 하다.💘19편이 단편이 실렸다. 그중 몇 편은 체호프의 감각이 극대화된 작품들이다. 단 5페이지로 한 인생을 요약해 버리는 ‘물음표와 느낌표로 이어지는 인생’, 태어나서 처음 '굴'을 먹게 되는 가난한 아이의 이야기 ‘굴’, 죽은 아들의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가슴이 미어지는 마부 포타포프의 ‘애수’, 남의 집에 맡겨져 노예처럼 사는 아홉 살 반카의 .. 2026. 5. 18. 연매장 ✔️#연매장 #팡팡 #문학동네 🪦좌파 보수주의자란 단어가 성립할까? 내가 보기엔 작가 팡팡은 그런 사람에 가깝다. 이미 이루어진 질서를 흔들 생각은 없지만, 모자란 부분은 부분적으로 수리해가며 사회 질서를 지키자는 사람. 다만 팡팡 스스로는 ‘역사적 사건의 옳고 그름은 작가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의도적인 판단 유보, 거기에서 나는 보수주의자의 한계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라는 '이상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 정도의 균형 감각을 갖춘 작가는 흔하지 않다. 권력의 폭력이 사람들을 어떻게 죽여왔는지를 기록하며, 그 비극의 원인에 대해 최대한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 거기에 적절한 완성된 서사 구조를 채우는 솜씨가 꽤 볼만했다.🪦 제목 '연매장'은 관 없이 흙에 곧장 묻히는 매.. 2026. 5. 15. 모우어 ✔️#모우어 #천선란 #문학동네 🔹SF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다. 2~3년 전에 비해서, 이제 SF는 바짝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올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2대의 휴머노이드가 파견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란을 향해 수십 군데에서 시차를 두고 발사된 미사일들이 단 한순간 한 지점에서 동시에 폭발하도록 계산하는 연산을 이미 AI가 해내고 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판단하여 인간을 살상하는 드론을 가자지구로 날린다. 80%의 정확도는 20%의 무고한 시민의 사망을 말한다.SF가 무서워졌다. 따뜻한 SF작가 천선란의 이 단편집이 이 마음을 녹여줄 수 있을까 궁금했다.🔹8편이 실린 이 단편집에서 난 '뼈의 기록'이 가장 좋았다. 백 년을 넘게 인간을 화장하는 화장 전문 안드로이드 로비스와 인간 청소부.. 2026. 5. 13.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재미까지바라는건욕심이겠지만 #월급사실주의 #문학동네 💰나는 '월급사실주의'의 지지자다.이 시리즈가 시작된 이유가 좋았다. 먹고사는 일의 진짜 이야기를, 꾸밈없이 직시하자는 기획. 문학이 현실로부터 도망가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불편함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번 네 번째 앤솔러지 역시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다.8인의 작가들이 각자의 '밥벌이' 현장을 소환했다. 단순한 직업 묘사가 아니다. 노동 안에서 사람이 얼마나 소진되고, 얼마나 버티고, 얼마나 작아지는지를 쓴 글들이다. 8편 모두 그 선명한 불편함을 공유하고 있다. 💰몇 작품들을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우리의 투어'에서는 실업 상황에 처한 인물이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며 맞서는 방식이 인상.. 2026. 5. 11.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시는내가홀로있는방식 #페르난두페소아 #민음사 💔술렁술렁 넘겨버린 책의 해설에서 한 문장만 건졌다. '페소아'는 포르투갈어로 '사람'이란 뜻이며, 라틴어로는 '가면', 프랑스어로는 '아무것도 아닌'이라 한다. 명쾌하다. 그의 여러 혼란스러운 이명(異名)들은 단순한 필명이 아니었다. 각자의 전기를 가지고, 각자의 문체로 시를 쓰는 별개의 인격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시인 자신이 만들어낸 가면들이었다.💔책은 3명의 페소아의 글이 담았다.'알베르투 카에이루'는 어떤 사람일까? 자신의 '슬픔은 고요'하다고 한다. '존재를 자각할 때 영혼'을 찾는 걸 보니 겁이 많은 페소아 같기도 하다. '생각한다는 건….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이라니, 게으른 것도 확실하다. 그저 '시인이 되는 건 나의 .. 2026. 5. 8. 백지 앞에서 ✔️#백지앞에서 #최은영 #문학동네 🗒️남의 일기장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내 길티플레저는 다른 방향 쪽이다. 그런데 최은영 작가의 첫 에세이 ‘백지 앞에서’는 내 기준을 조금은 흔들었다. 소설에서 그녀는 인물 뒤에 숨었다. 에세이에서 그녀는 앞으로 나온다. 백지 앞에서 써내려 간 내밀한 일기 같은 독백이,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더 깊이 내 마음을 조여왔다.그녀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진다.🗒️나도 그녀처럼 '옳음에 사로잡혀서 나와 타인을 존중하는 일의 중요성을 놓쳤던 적'이 있었다. 비슷하게 나이 들어가며 '자기 인식'의 변화를 겪었고, '무난해 보이기 위해 나를 속'이는 일들을 이어왔다.작가인 그녀는 작가의 세계안에 굳어있는 관념, 좋은 글, 좋은 주제, 좋은 이야기에 속박에서 벗어났을 때 자기 만의 글.. 2026. 5. 6. 이전 1 2 3 4 ··· 16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