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는내가홀로있는방식 #페르난두페소아 #민음사
💔
술렁술렁 넘겨버린 책의 해설에서 한 문장만 건졌다. '페소아'는 포르투갈어로 '사람'이란 뜻이며, 라틴어로는 '가면', 프랑스어로는 '아무것도 아닌'이라 한다. 명쾌하다. 그의 여러 혼란스러운 이명(異名)들은 단순한 필명이 아니었다. 각자의 전기를 가지고, 각자의 문체로 시를 쓰는 별개의 인격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시인 자신이 만들어낸 가면들이었다.
💔
책은 3명의 페소아의 글이 담았다.
'알베르투 카에이루'는 어떤 사람일까? 자신의 '슬픔은 고요'하다고 한다. '존재를 자각할 때 영혼'을 찾는 걸 보니 겁이 많은 페소아 같기도 하다. '생각한다는 건….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이라니, 게으른 것도 확실하다. 그저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이란다. 작가적 야망 없이, 그냥 자연 속으로 숨어버린 인물. '자연스럽고 편안해지는 것'을 갈망하는 첫번째 페소아였다.
두번째 사람, '리카르두 레이스'. '금빛의 푸른 곡선을 구부릴 동안, 그리고 영원한 조수가 밀려온다'라니. 스타일리스트구나. 조국보다 장미를 사랑한다니, 애국자 페소아의 개인주의자 버전 같기도 하다. (조국보다 사랑하는 게 장미 정도라니 실망스럽긴 하다. 그 많은 꽃들 중에서… 😎) 하지만 치장 사이에 그가 보인다. '무관심에 대한 욕망, 그리고 달아나는 시간의 게으른 확신.' 장식 뒤에도 역시 그다. 결국 무언가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페소아.
마지막, 페소아 자신. '오 소금기 바다여, 너의 소금 중 얼마만큼이 포르투갈의 눈물인가? 너를 건너느라,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눈물 흘렸으며, 얼마나 많은 자식들이 부질없이 기도했던가!’…..웅장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카에이루는 자연 속으로 숨었고, 레이스는 개인의 감각 속으로 숨었는데, 정작 페소아 자신은 역사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것들 뒤에 숨어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만든 가면들보다 작다. 가면은 뚜렷한데, 가면 뒤의 얼굴이 흐릿하다. 소심한 페소아. 자신의 페르소나보다 작은 시인. 이 아이러니가 그를 매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
백업 자료를 뒤져보니 페소아의 #불안의서 를 읽은 지도 2년이 지났다. 이 시집을 왜 장바구니에 담았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에세이의 탈을 쓰고 있었지만 '불안의 서' 역시 '시'였고, 난 시인 페소아를 다시 만나고 싶었나 보다. 찌질함 사이에 반짝이는 그의 매력적인 문장들이 그리웠나 싶다.
💔
시는 사람이고 음악이고 감정의 투영이라 믿었던 그다. 거부할 수 없는 정의다. 사람이기에 아이러니가 존재하고, 과잉이 용서되며, 졸렬한 자기 변명과 자기연민이 가능하다. 두서없음은 시인의 특권이며, 비존재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비논리의 '시'를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다른 책을 통해 ‘자기 연민’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자기에 대한 ‘연민’이자 ‘공감’이라 했던가. 덕분에 페소아가 더 다정해졌다. 몇 년뒤 다른 책으로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 한줄감상 : 2~3000개나 되는 그의 시 중에서 전문가가 뽑은 베스트. 나머지 시를 읽지 못해 정말 베스트인줄은 모르겠지만, 팬이라면 추천. 😎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당연히, 아직 읽지 않았다면 ‘불안의 서’. 그 두터움을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p13 “ [알베르투 카에이루] 나는 나를 읽을 모든 이에게, / 챙 넓은 모자를 들어 인사한다. “
p17 “ [알베르투 카에이루] 사랑한다는 것은 순진함이요, 모든 순진함은 생각하지 않는 것….. “
p23 “ [알베르투 카에이루] 사물 내면의 유일한 의미는 그것들에 내면의 의미 따위는 없다는 것뿐. “
p45 “ [알베르투 카에이루] 내가 죽으면, 아이야, 내가 그 애, 막내가 될게, 나를 네 품에 안고 너의 집으로 데려가 주렴. 지쳐 버린 내 인간 존재를 벗기고 나를 네 침대에 눕혀 다오. 내가 깨어나거든, 내게 이야기를 들려줘, 내가 다시 잠들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갖고 놀 수 있게 너의 꿈들을 줘. “
p67 “ [알베르투 카에이루]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의 이름 내게 주는 만족감의 보답으로 내가 사물에게 주는 것.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되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것만 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
p81 “ [알베르투 카에이루] 사물들의 유일한 숨은 의미는
그것들에 아무런 숨은 의미도 없다는 것이니까. “
p175 “ [리카르두 레이스] 위대해지려면, 전부가 되어라, 너의 어떤 것도 과장하거나 제외하지 말고. 매사에 모든 것이 되어라. 네 최소한의 행동에도 네 전부를 담아라. “
p181 “ [리카르두 레이스] 나에게는 하나 이상의 영혼이 있다. 나 자신보다 많은 나들이 있다. “
#bookstagram #books #reading #bookreview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기록 #책리뷰 #시는내가홀로있는방식_기시리뷰 #페르난두페소아_기시리뷰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모우어 (0) | 2026.05.13 |
|---|---|
|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0) | 2026.05.11 |
| 백지 앞에서 (0) | 2026.05.06 |
| 자연은 왜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가 (0) | 2026.05.04 |
| 2026 제1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0) | 2026.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