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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재수사

by 기시군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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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작가가 6년만에 신작을 냈다. 정유정작가의 극찬이 들려온다. 당연히 예약구매를 했고 금요일에 받아 주말에 읽었다. 책안엔 정유정과 도스토에프스키, 그리고 피터싱어가 적정비율로 조리되어 잘 차려져 있었다. 주방장인 장작가의 욕심은 성공했다. 진수성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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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파트, 2권으로 구성된 형사소설이다. 절반의 내용은 22년전 신촌에서 발생한 미모의 여대생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3명의 형사들의 수사과정이 담겨있고, 나머지 절반은 그 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독백이 담긴다. 살해의 장면부터 범죄와 사회, 개인간의 관계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을 모았다. 두가지 내용이 끝까지 교차되며, 이야기를 흥미있게 풀어간다. 서사자체가 즐거움이고 스포일 수 있어 앞단의 아주 작은 내용만 정리한다.

2000년 여름 신촌 신영극장 옆 오피스텔에 연세대에 다니는 '민소림'이라는 여학생이 가슴에 두번의 칼을 찔린채 사망한 것이 다음날 발견된다. 남은 흔적은 거의 없다. 1층 cctv에 살짝 비춰지는 잘생긴 남자의 모습이 유일한 단서다. 당시 대대적인 수사가 있었으나 범인 검거에는 실패했다.  22년이 지난 지금, 여형사 '연지혜'가 소속된 강력수사대 1반에서 이 미결사건을 재수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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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성찬이라 표현한 이유가 있다. 일단 소설자체가 형사소설로 아주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사건 전개의 서사는 탄탄하고 등장인물 숫자가 꽤 많음에도 불고하고 그 모두가 생생하게 개성들을 뽐낸다. 특히나 한국형 형사물은 이런것이다라고 할 만큼 우리나라 형사들에 대한 취재는 많이 되어 있는듯 했다. 사건을 따라가게 만드는 흡입력도 좋고 반전까지 설득력있다. 그 뿐이 아니다. 범인의 입장으로 쓰여진 변명이자 요설이라 할 수 있는 독백들을 통해, 단순히 형사추리물이 아닌, 범죄와 사회의 관계들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한다. 도스토엡스키의 작품들은 형사들의 추리과정에서도, 범인의 요설속에서도 중요 키워드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다른 많은 사상가들의 이론을 끄집어내어, 밀고 땡기며 '죄'와 '벌' 그리고 '범인'과 '고통'에 대한 사회학적인 접근마져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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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부터 작가는 자칭 타칭 '월급 사실주의자'라 불리운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성실함과 꾸준함이 아닐까. 월급이 나오는 만큼 일정량의 아웃풋을 내야하는 회사원처럼 장작가는 정말 꾸준하게 일정 퀄리티 이상의 작품들을 생산해 오고 있다. 이번 장편은 그 성실함의 좋은 결과물로 읽힌다. 정말 많은 공부와 깊은 취재, 그리고 많은 고민이 만들어낸 웰메이드 범죄소설이다. 개인적으론 그전까지 가장좋았던 #한국이싫어서 보다 이 소설이 더 좋았다.

덧,
최근에 도스토엡스키 책을 읽으신 분들은 좀더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다른 작품보다 도선생님의 '백치'는 읽고나서 읽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

p121 " 어떤 의미는 고통 속에서, 고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우주와 자신을 서사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사가 없는 상태를 상상하지 못한다. "

p132 " 계몽사상은 세속 이데올로기다. 이 사상이 지배하는 사회의 인민에게 주어지는 삶의 목표는 행복이다. 생명, 자유, 평등 같은 다른 가치는 한 개인이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아무리 노력해도 남들과 같은 정도만큼만 누릴 수 있다. "

p273 " 문학에서는 모호한 단어를 겹겹이 쌓아 올려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가장할 수도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p340 " 저는 자유라는 게 탄수화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유건, 탄수화물이건, 그걸 재로로 뭔가를 만들어 이뤄내야죠. 자유로운 삶이 목표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삶의 목표가 탄수화물이라는 말처럼 들려요. "

2권 p13 " 좋은 삶은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는 삶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통을 파하고 없애는 것이다. "

2권 p133 " 계몽주의는 인간을 입자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른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 하지만 인간은 애초에 다른 인간과 중첩되어 있는 존재다. "

2권 p187 " 인간은 손해는 잊을 수 있지만 악의는 잊지 못해요. 훌훌 털어버릴 수가 없다고요."

2권 p304 " 상당수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이전까지 종교가 지배했던 영토로 침범해감을 알았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은 사실을 다루고 종교는 가치를 다룬다며 둘 사이에 멋대로 선을 긋고 그런 구분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래서 자신들이 종교의 영역을 축소하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맹렬히 그런 작업을 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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