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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미세좌절의 시대

by 기시군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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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좌절의시대 #장강명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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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잘 차려진 멋진 음식을 내놓는 셰프가 있다. SF소설이며, 리얼리즘 소설(#월급사실주의)이며, 다양한 주제의 맛난 책들이 넘친다. 이 멋진 요리사가 이번엔 주방을 공개했다. 신문에 연재되었던 산문들을 모아 낸 책으로 직설적이며 진솔하게 자신의 생각들을 그대로 요리대에 올려놓았다.레시피, 양념의 비법 등으로 비유될 수 있는 작가의 철학관, 세계관, 사회관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연히 흡입력 있게 재미있게 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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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독자인 내가 중도 좌파라면 작가인 그는 중도 우파이다.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안정적인 사회를 위한 조심스러운 변화를 바라는 건강한 진짜보수라는 이야기다. 좌파들은 자주 외면하는, 사회적 성공을 위해선 개인차원의 수신제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에 반대할 생각이 없다. 수신제가가 그저 출세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나의 불편함이 도덕적 근거가 될 때’의 부작용을 상상해 본다든지, 자신 스스로의 성숙을 강조하는 실력에 대한 잔잔하지만 진중한 조언은 묵직하기만 하다.  

오히려, 미세하게 좌절을 주고 있는 사회시스템에 대한 우려와 변화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글들이 많다.  비오는 날 쿠팡을 시킬 때, 배달원의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할까?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맞는 보상을 받고 있나. 우리가 가진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나 ‘시민’으로서의 의심은 계속 필요하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특히나 개인으로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배울 만한 문장들이 좋았다. ‘ 좋은 삶이 무엇인지 적정량을 고민하는 것이 좋은 삶의 조건 중 하나 아닐까 p261’ 하는 말엔 깊게 공감한다. 

한편으로 ‘보수’로서의 할 말을 한다. 그는 대형마트 의무 휴무일에 반대한다. 자본주의가 가진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그에겐 마트 종사자, 아니 노동자들의 휴일 휴식권은 효율성의 가치보다 떨어진다. 대북문제도 마찬가지다. 대북관계개선은 좋으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 북한의 심각한 인권이슈는 정부가 아니더라도 시민단체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현 정권의 상식이하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비판은 그냥 넘어가는 사람은 아니다. 이태원참사를 애도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정부의 태도를 지적한다. 리버럴 한 건강한 보수주의자의 양심, 품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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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보와 보수(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가짜보수 말고)는 같은 방향을 가면서 다만 속도에 대한 이견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동의한다. ‘현실적’으로 빠른 변화는 희생자와 실패 등을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거는 입장이다. 나는 힘든 사람이 많기 때문에 조금은 위험하더라도 더 액셀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의견 차이라면 서로 배우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 물론 현 정권하에서도  새누리당 계열을 구주류, 민주당 계열을 신주류라 부르며 별 차이가 없는 양비론을 계속 유지한다면 조금 싸우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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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간의 존엄함을 믿는다. ‘우아함’으로 표현될 수 있는 존엄함. 강자는 견제받아야 하며, 약자는 보호받아야 하며, 인권은 보호되고, 자본주의의 경쟁은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세상. 하지만 세상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아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난쏘공 을 다시 읽은 그가 걱정하는 것처럼, 과거와 다르게 지금의 세상은 강자는 흐릿하게만 비치며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흐릿함을 구체화하며 변화의 속도를 논의해야 한다.  괜찮은 리버벌들이 가끔은 ‘우아하지 않은’ 모습까지도 보이면서 논쟁해야 할 사항들이다.  

✍ 한줄감상 : 2024년 4월 현재, 그가 아직도 ‘검찰과 친일파가 대한민국을 망쳤다’는 말이 진보의 프로파간다로 믿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닐 것이라 믿는다. 

덧,하나
가장 서운했던 한마디, 문재인정부 후반 ‘종전선언’ 노력에 대해 작가는 ‘임기 말 업적 세우기’였다고 바라본다. 인간 문재인에 대해 너무 모르면서 하는 소리다라고 내가 말한다면, 그는 그게 바로 정치를 망치는 팬심정치라고 반박할 것이다.  😂

덧,둘
가장 재미있었던 것 하나, 소설화될지 모르는 소재다. AI무인운전으로 운전사들이 실직자들이 된 세계. 실직운전자들은 자살특공대를 조직한다. 바로 무인운전 중인 차로 뛰어들어 무인운전의 위험성을 몸으로 증명하겠다는 계획이다. 소설로 만들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 😘

덧,셋
더 재미있었던 챕터, 흥미로운 중년이 되기 위해선 잡학에도 깊이가 있어야 한단다. ‘주제를 다양한 맥락에서 검토하고, 한 측면을 추상화하여 전혀 다른 범주에 있는 다른 사건과 유연하게 잇는 능력이 있으며, 메타인지도 확실한 사람들 p372’,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여부와 상관없이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

덧,넷
다만, 신문기자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언론 상황에 대한 그의 인식은 조금 기계적으로 보인다. 언론의 권위, 즉 뉴스선정의 권위를 잃어버리고 있는 미디어의 한계를 그저 SNS에 매몰된 소비자들을 향한 ‘장사’의 논리로만 비판하고 있다. 문제의 반만 지적하고 있다. 미디어가 권력의 애완견 역할을 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선 언급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쉬운 점이다. 🥲


p35 “ 한국 특유의 ‘모멸 문화’도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너의 자존감이 낮아져야 나의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믿는 인간들이 부지기수다. “ 

p43 “ 통화 중이 아닌 시간도 평온한 일상이 아니라 전화를 기다리는 대기 상태가 된다. “ 

p48 “ 뉴미디어는 어떤 사안을 고발하고 확산하는 데에는 뛰어나지만 사회통합의 기능은 거의 없는 것 같다. “ 

p67 “ 불편함이라는 신호가 꼭 불공정, 부조리에 대해서만 커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 

p69 “ 짧고 강하게 조룡을 잘하는 이들이 몇 년 전부터 여론을 이끌고 있다. 짤고 강하게 조롱을 잘하는 사람이 지식인 대접을 받는다. “ 

p87 “ 그나저나 지하철에서 백팩을 앞으로 메는 것은 이제 규범이 된 건가? 누가 ‘민폐’ ‘공해’ ‘백팩충’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상냥하게 알려주면 좋겠다. “ 

p111 “ 공정 개념은 평등과 상당 부분 겹친다. 우리는 공정을 실현하는 과정과 그 결과가 평등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어긋나지 않기를 바란다. “ 

p140 “ 좌우 양쪽에서 분노와 증오를 증폭하는 선동가들이 활개를 친다. “ 

p144 “ 신주류(민주당계열)에 대한 심정적 지지가 두 세대 이상 이어져온 것은 그들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서툴긴 해도 더 깨끗하고 더 정의롭겠거니 하는. 그런 믿음이 깨지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 

p161 “ 나는 북한 같은 거대한 악 옆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특수한 도덕적 의무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 

p190 “ ‘검찰과 친일파가 대한민국을 망쳤다’든가 ‘문재인 정권과 586이 나라 망쳤다든가. 그 서사에서 도출되는 과업은 복수다. “

p230 “ 정작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돈 얘기도, 꿈 얘기도 안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주로 남 얘기를 한다. 별로 가깝지도 않은, 어디 사는 누구 있잖아. 개가 글쎄….” 

p273 “ 자기혐오의 가장 당혹스러운 점은 그게 결코 유쾌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중독된다는 사실이다. “ 

p338 “ 모든 푸드트럭 운영자들이 백대표(백종원)의 코치를 충실히 따르면 골목의 전쟁은 더 처절해질 뿐이다. “ 

p393 “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언어나 행동을 모두 폭력으로 여기는 예민한 감각으로 주변을 살피면 결국 세상 전체가 폭력으로 가득차 있음을 깨닫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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