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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지키다 #장바티스트앙드레아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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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소식은 알았지만 건너뛰려 했다. 제목에서 오는 진부함과 표지만 보고는 프랑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진득한 러브스토리로 이해했다. 뒤늦게 이 책이 #이동진의이달의책 에 선정이 되었고, 믿고 있는 인친님들의 정보를 통해 흥미가 생겼다. 남자가 여자를 지키는 이야지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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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책 앞부분만 정리한다. 600페이지가 넘는 꽤 많은 분량의 소설이다.
1904년 프랑스의 가난한 조각가의 아들로 태어난 미모(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는 부친의 사망으로 어린 나이에 이탈리아 시골마을 ‘피에트라달바’의 친척손에 맡겨진다. 미모는 두 가지를 부모에게 물려받았다. 조각의 재능과, 난쟁이라는 멸칭.
헛간에서 폭력과 학대 속에서 자라던 미모는 어느 날 마을 귀족의 막내딸 비올라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미모의 키와 신분에 의미를 두지 않은 똑똑하고 용감한 소녀 비올라는 미모의 손을 잡고, 그 순간 ‘미모’는 이미 ‘조각가’가 되기 시작한다.
여정은 길고 복잡하다. 무솔리니 정권의 이탈리아 상황에서 파시스트와 야합할 수밖에 없었던 교황청의 처신, 신부로 들어가 있던 비올라의 오빠, 그 뒷배와 미모의 조각에 대한 재능으로 성공의 비상과 추락, 또 방황의 파괴적 열락이 미모의 삶을 채워나간다. 그러나 미모의 마음 중심엔 언제나 비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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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면, 미모가 비올라를 지키는 내용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여자를 지키고자 했던 남자와 스스로 지켜나가는 여자의 이야기가 남는다. 사랑은 거들뿐, 예술과 삶, 성별과 계급, 세상의 모순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잘 연결되며 이어진다.
깔끔하고 정갈한 문장, 과하지 않은 은유와 수사,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적당한 템포 등 좋은 소설이 가져야 하는 대부분의 기술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또한 연극적 연출이란 단어는 흔하지만, 이 소설은 미니시리즈적 연출로 구성된다. 연속극처럼 챕터가 끝나는 부분에 작은 돌을 던져 다음 단락으로 바로 넘어가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가독성을 높이는 비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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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면 조각상의 위치에 생각해 조각의 비율을 조정해서 만들어졌다. 책 속 주인공 미모의 아버지도 ‘최종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아들을 가르쳤다. 우리 삶과 이어지는 이야기 같다. 내가 바라보고 결정 내리는 모든 것은 내 눈앞 정면으로 보았을 때를 가정하고 이루어진다. 하지만 모든 뱉어진 말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곳의 ‘위치’을 고려한 행동과 말을 고려한 ‘생각’을 ‘생각’하게 한다.
조각이라는 예술분야에 대한 정의도 기억에 남는다. 목표한 ‘이야기’에 닿을 때까지 불필요한 이야기들을 켜켜이 쳐내는 과정이 조각의 과정이며 ‘이야기’에 가닿는 순간 돌을 쪼는 일을 멈추는 것이 조각이라는 것이다. 소설과 다른가? 우리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나쁜 것 없어도 되는 것들을 덜어내는 과정, 그것에 능숙해져 가는 것이 잘 늙어가는 삶이 아닐까? 읽는 재미와 생각거리를 많이 남기는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 한줄감상 :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의 탈을 쓴, 역사소설, 정치소설, 여성소설. 아니 그 모든 것을 합친 웰메이드 드라마.
덧,
책 서두에 표현되는 이탈리아인의 특성이 재미있었다. ‘ 툭하면 죽음을 들먹이는 과장된 언사를 사용하고, 걸핏하면 눈물을 펑펑 쏟고, 말을 하면서 두 손을 가만히 놔두는 법이 거의 없었다. p15’ 한국인 같지 않은가? 배불러도 죽고, 웃겨도 죽고, 눈물 많고 정 많고, 다만 손쓰는 건 이탈리아 사람은 못 따라가는 것 같다. 😁
p13 “ 아름다움이 잠깐만이라도 눈을 붙여 봐라. 추함이 가차 없이 그 목을 따리라. “
p22 “ 나비는 나비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서 아주 작은 공간 안에 웅크린 거대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직관적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
p42 “ 한낮의 아름다움이 밤의 예지에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나는 오늘에서야 헤아린다. “
p130 “ 비올라 오르시니가 없으면 미모 비탈리아니도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필요 없이, 비올라 오르시니는 존재한다. “
p258 “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조각하는가가 아니야. 왜 그것을 하는가이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봤니? “
p312 “ 예술로, 진짜 예술로 만드는 것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여기서 설명이 될 수 없으니까. 예술가 그 자신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지. “
p375 “ 잘 모르겠지만, 네가 날 덜, 혹은 다른 방식으로 좋아하는 거였다. “
p427 “ 인간은 어디 있는가?…. 자란다는 건? 돈을 벌고, 돈을 버는 데 성공하면 약간 나아진다는 것? 나는 비올라를 비난했지만, 결국 내가 비올라보다 훨씬 더 멀리 날아간 건 아니었다. “
p496 “ 극적인 사건들은 시간을 늘어뜨린다. “
p528 “ 악의 아름다움은 바로 악이 아무런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결코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저 악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
p532 “ 나는 내 젊은 날의 일부가 구불구불 길게 그을음을 끌며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
p560 “ 마침내, 마침내, 무언가를 망각할 수 있게 되어서 은밀한 기쁨을 느끼며. “
p594 “ 하지만 내 안에는 아무리 너라도 절대 고치지 못할 비정장성이 있어. 그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고 그 점에 관한 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 “
p614 “ 우리는 서로의 품에 안겨서 우리의 늙어 가는 육신을 잊으려고 노력했고, 이는 얼마간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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