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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정벌 #리숴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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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기록이 가득한 고대 상고사 책을 구매한 이유는 그저 궁금해서였다. 춘추전국시대 이후 진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의 중국사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이라도 했다. 그러나 공자가 매일 읊조리던 주나라, 그 전의 은/상나라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호기심용으로 읽기엔 너무 벽돌책이라 잠깐 고민은 했으나 어쩌랴 당기면 질러야 한다. 읽는데 조금씩 끊어 읽느라 읽는데 열흘은 훨씬 넘어 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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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하왕조는 벼농사를 지으며 좀 평화로웠다. 제사도 기껏 돼지정도를 썼다. 청동기시대로 접어든 상나라 시대에는 좀 상황이 달라진다. 상나라 흔적으로 2000개가 넘는 제사갱이 남아 있다. 제사갱은 말그대로 구멍, 건물을 세울 때도 구멍을 파고 인간, 개, 돼지, 소 등 생물들을 파묻고, 하늘 그들은 ‘상제’라 불렀다. 하늘에 대한 제사에도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 얌전히 목만 잘라 바친 게 아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껍질을 벗기고 팔다리를 자르고, 인간의 고통의 소리가 하늘에 닿아야 잘 치러진 제사라는 종교적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제사 후 그 음식물을 먹듯 그들은 사람의 사지를 해체해서 나누어 먹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직 통치자의 권력을 유지하는 기제, 행사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물론 상나라 사람들을 제물로 쓴건 아니다. 은나라의 200배나 넓은 땅을 정벌하여 주변 민족들을 포로로 잡아와 각종 제사의 재물로 사용했다. 그들에겐 명확한 선악의 개념이 없었다. 세계는 냉혹하고 살육과 폭력이 가득한 곳이었고 자기 민족은 그곳에서 권력을 잡았고, 그 권력을 잡게 해 준 ‘하늘/신/상세’에게 감사의 표시를 계속해야만 했던 것이다.
상나라의 주왕은 ‘ #달기 ’와 함께 #주지육림 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상나라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그 시대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보자. 상나라의 제후국 중 하나인 주나라는 상나라의 명령으로 주변 작은 나라에 흩어져 살던 ‘강족’들을 사냥해서 제사제물로 바쳐오는 치욕적인 일을 해왔다. 그런 주나라왕마저도 상나라 왕 앞에서 자신의 아들을 삶은 고기(육장)를 먹어야 했다. 상나라 정벌을 결심하게 된 계기였고, 몇 대가 지난 후 주나라의 ‘주공’은 상나라를 멸하게 된다. 이 장면에 그 유명한 #강태공 이 출현하여 주나라를 도와 활동을 하기도 했다.
상나라를 없앤 주나라는 초기 ‘상제’와 소통한다는 제사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하늘이 인간의 일에 관여한다고 믿었던 당시 사람들의 상식을 깨는데 노력했으며 그 결과 하늘의 일은 하늘일, 인간의 일은 인간의 일로 분리해 낼 수 있었다. 덕분에 인신공양은 빠른속도로 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일은 강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주나라 ‘주공’에 의해 이 끔찍한 과거를 역사에서 지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후국과의 혼인, 융화 정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자’를 가진 강한 주나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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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만 있진 않았다. 문자가 없던 은나라에 비해 상나라는 점치는 용도이긴 했으나 갑골문이란 문자를 만들어 냈다. 그들의 점인 ‘역’이 ‘주역’의 일부로 들온다. 그리고 의외로 유목민족의 특성도 있어 상나라 여인들 중 귀족들은 술을 마시고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활동 범위가 넓어지게된 과학적 도구는 ‘마차’를 활용하였고, 덕북에 당시 중국의 범위를 많이 넓히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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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춘추전국 시대에는 큰 힘을 발휘하진 못했으나 송나라 등 중국 주류사상을 이끌던 유가사상은 사실 주나라 ‘주공’에 기대고 있다. 공자가 편찬한 ‘육경’ 은 주공의 사업을 계승,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에 그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집필된 것이었다. 다민족 중국의 야만을 묻고, 덕과 예로 세상을 묶어 자신들 세상의 중심인 ‘중국’, 화하문명을 창조해 낸 것이다.
✍ 한줄감상 : 고고학적 실증이 많아 이쪽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겐 필독, 그저 지적 호기심에 집어 들기엔 너무 디테일하고 너무 많은 내용을 담은 무거운 책. 😭
p37 “ 상나라가 건립된 뒤에 인간을 희생으로 바쳐 제사 지내는 행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은허의 단계(대략 기원전 1300년부터 기원전 1046년까지)에 이르면 절정을 이루었다. “
p90 “ 고대사에 기록된 하 왕조의 과거사는 아직 고고학에서 검증되지 않았다. 게다라 얼리터우(하왕조의 유적으로 추정)의 고고학 발굴은 역사서에 전혀 기록되지 않은 많은 현상을 드러냈다. “
p161 “ 상족이 창조한 ‘갑골문’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글자는 폭력과 정벌, 살육에 관한 것이다. “
p201 “ (희생된) 두개골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가공되어 있었다. 눈언저리와 귓구멍 부분은 톱질해서 쪼개고 주발 모양의 두개골 부분만 남겼으며 다시 톱질한 부분을 돌로 갈아 반질반질하게 다듬었다. “
p306 “ 갑골복사에는 ‘타제’라는 것이 있는데, 어떤 학자는 이것이 복부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사지를 잘라 바치는 제사라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세제’가 있는데 갑골문의 형상은 도끼로 살을 발라내는 것이니 이 역시 사지를 해체하여 바치는 자사의 일종이다. “
p416 “ 상왕조는… 분봉건국제(일종의 봉건제)였다. 훗날 서주도 똑같이 봉건제를 실시했으나, 다른 점은 상왕조의 성읍이나 제후국은 상 문화의 특특성을 무척 중시해서 토착민들과 분명하게 구별했으므로, 문화와 민족의 융합 현상이 나타나기 무척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
p423 “ 이것은 상족의 정복과 잔혹한 통치로 인해 자급자족하던 토착 촌락이 상족의 노예 장원이 되어 버렸음을 의미한다. “
p549 “ 상족은 제사에서 소리를 중시했다. 제물로 바쳐진 동물이 크게 울부짖어 하늘의 신들에게 제수품이 건강하고 격조에 맞다고 알리는 것이 바로 ‘소리가 울리는 것은 천지간의 귀신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는 말의 뜻이다. (그 제물엔 사람도 포함된다.) “
p554 “ 고고학 발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상나라 사람들은 폭음하고 주사를 부리는 기풍이 무척 성행했다. 제사에 바치는 가축과 인간의 지체는 걸어서 전시할 수도 있었는데, 이것이 어쩌면 후세의 ‘주지육림’ 전설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
p820 “ 주공을 우두머리로 한 주 왕조의 상류층은 새로운 판본의 역사를 다시 구축해야 했다. 하나라와 상나라, 주나라는 아무 차이가 없고, 인신공양제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왕조 교체는 단지 마지막 군왕의 도덕적 결함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
p839 “ 주나라의 ‘대분봉’에 따라 광범하고 지속적인 민족 융합이 일어났다. 이로 말미암아 새로운 ‘화화족’이 점차 형성되었다. “
p862 “ 주공의 가장 중요한 작업은 상족의 인신공양제사 종교와 그와 짝을 이루는 약육강식의 종교적 가치 체계를 소멸한 것이었다…. 또 주족이 한때 상 왕조를 위해 포로를 사냥하여 인간 희생을 제공했다는 명예롭지 못한 역사를 무기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
p865 “ 공자와 유가는 주공을 무척 추앙했으며, 주공의 사상은 유가 문화의 원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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