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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양배추가있는풍경 #강보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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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작시리즈에서 작가의 #바우어의정원 을 재미있게 읽었다. 얼마 전 우연찮게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으로 강보라 작가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등단 4년 만에 첫 단편집을 낸다고 홍보하는 영상이었다. 본인의 작은 집에서 수줍어하듯 이야기하는 작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뱀과 양배추로 뭘 말하고 싶었을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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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몇편을 골라, 언제나 그렇듯 스포 없이 앞부분만 정리해 둔다. ‘
#뱀과양배추가있는풍경
대학원을 마치고 이런저런 단체들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난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 형오와 동거를 시작하곤 뜸해졌지만, 이번엔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좋아하는 요가 구루 애나 패서디나’가 발리의 우붓에서 워크숍을 한다는 소식에 고민 없이 떠나왔다.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서난 ‘부르주아 아줌마’로 불렸다. 독실을 예약한 탓도 있지만, 뭔가 지식인적인 분위기가 풍겨서 일 수도 있겠다. 사건보다 사람들과의 이야기다.
#신시어리유어스
잡지사 에디터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일이다. 나도 그렇다. 교양 있고 생각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삶을 배우고 일을 만든다. 문순 씨는 제주도에서 말을 케어하는 삶을 산다. 친했던 문태언니의 동생이기도 하다. 알게 된 지 3년 만에 문순씨네 농장(?)을 방문하게 된다. 사건은 그날 밤 발생하지만, 뭐 사건이 중요하겠는가. 감정과 느낌의 요동이 전달된다.
#빙점을만지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동표’는 돈이 없는 대신 예쁘며 사랑스러운 애인이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그녀 덕분에 샌프란시스코로 와인시음(?)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마침 학부 때 문청으로 유명했고, 가장 친했던 선배 ‘해규’가 그곳에서 살고 있단 걸 알게 되어 반가운 조우를 한다. 힘들게 산다는 소문과 달리 자본주의에 최적화되어 잘 나가는 그를 보며 동표는 뭔가 이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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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점은, 현 사회의 문화자본이 만들어낸 계급 및 신분의 차이을 이해를 하고 그 사이 갈등과 경계선의 아찔함을 세밀히 그려낼 수 있는 작가의 감각이었다. 아쉽다 느낀 점은 그 선에 대한 인정 이후에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였다.
‘일시적인 감흥이 우리(인간들)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 p81’이라는 문장은 계급 너머까지 건넬 무언가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합리화의 문장으로 느껴진다. 작가의 특기 중 엔 인간과 인간의 거리에 대한 예민함이 있다. 취향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한 명의 단독자가 타자를 만나는 것은 영원히 이해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영영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일지라도 끝끝내 곁을 지켜며 함께 존재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저마다 다른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자의 이상적인 방식이 아닐까… p134 ‘ 좋은 이야기고 부정할 틈이 많지 않다. 하지만 함께 ‘존재해야 하는 일’이 인내로, 당위로 느껴진다. 작가는 그 이질감을 노리고 있었던 건가 하는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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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이 이 소설집의 정조다. 취향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 하지만 공존해야 하기에 참아야 하는 불편. 구별 지으려 하는 인간의 본능은 극복하기 어렵다. 특히나 현대 한국사회의 더 세밀화된 계급사회에서 그 불편함마저도 차별화된다. 단지 보유한 자본의 양에서 시작된 차이는 경험의 누적과 그룹화하며 다시 분화된다. 배타성은 그것에 기인한다.
취향의 배타성은 그 바깥에 대해선 강고하지만 그 내부에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평론가는 그걸 ‘연대’라고 표현했지만, 난 그 연대라는 단어가 가지는 ‘가치’의 무게는 깊게 느낄 수 없었다. 물론 파편화되어 개별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취향/계급 적 동류의식으로 ‘모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구원이 될지 모른다는 가정은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그건 이미 상위 계급을 취득한 자들에게 허용된 ‘가치’ 일 것이다.
문제는 자기 서사로 계급 너머의 ‘우리들’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작가는 큰 욕심을 내지는 않은 것 같다. 회복이나 구원보다는 작은 동감과 지켜봄, 이해로 자신의 문학세계의 의의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깔끔하고 세련된 이야기 구성과 문체가 좋다. 데뷰작이다. 앞으로 그녀의 길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진다.
✍ 한줄감상 :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안에는 특이한 것이 담겨있다. 그걸 찾아다니는 불편함을 즐길 것. 😉
덧,
오랜만에 책 뒤에 실리는 해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인아영 평론가의 글이다. 작가의 책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을 3가지로 정리했다.
하나, 취향은 우리를 연결할 수 있는가?
둘, 예술에서 깊이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셋, 우리는 자기 서사를 통해 회복될 수 있는가.
나름의 답을 해보고 싶었어, 긴 글을 적다가 지웠다. 개별 독자들에게 던지는 글이고 읽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고민일 것 같아서다. 책이란 질문에 각자의 답을 마련해 보자. 소설은 이런 어려운 숙제를 주는 예술형식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p30 “ 그 시절 나와 잔 남자애들의 이름을 나는 전부 기억하고 있다. 다들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린 건 그 아이들이었는데, 정작 미워해야 할 사람은 그들이었는데. “
p48 “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뒤섞는 건 자기애로 똘똘 뭉친 작가가 자신감이 없을 대 쓰는 마지막 카드라고요. “
p77 “ 마흔 이후의 삶은 내리막길을 달리는 스쿠터처럼 무서운 가속도로 우리를 흔들었다. “
p101 “ 인맥 덕이 컸죠. J일보 부장님이 제가 하루키 좋아하는 걸 알고 작가 쪽 에이전시에 얘기를 잘해주셔서요…… J일보 부장이라면 나도 안면이 있었다….. 잡지사 에디터인 나를 마치 이류 기자 대하듯 무시했던 터라 똑똑히 기억했다. “
p107 “ 언니, 저희 같은 에디터들한테는 이런 게 다 일이에요. 자리 만들고, 술 마시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 듣고, 기획은 뭐 그냥 나오나요. “
p120 “ 채식이면 채식이지 페스코는 또 뭐야. 마음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
p176 “ 평소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양미의 소양이 그녀와 말과 행동에 은연중에 베어 난다는 것. 빈약한 어휘와 잘못된 표현으로 말의 정확성을 흐리는 양미의 언어가 이따금 참을 수 없이 거슬린다는 것. “
p235 “ - 아직 신혼이라, 나중에 이사하면 가지려고요. 그 말속에는 당신처럼 미개한 인간이 사는 동네에서 내 아이를 키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
p251 “ 나는 더 이상 손 타기 쉬운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나도 스러져가는 젊음 때문에 남들에게 인색하게 구는 여자에 속한다.”
p258 “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면 때로는 세상을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자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p277 “ 음. 저는 애초에 진실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의문인데, 어떻게 생각해요? “
p287 “ 미술 하는 사람들은 이럴 때 참 멋있네요. 나는 부러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질투가 나기도 했다. 두 사람이 다루는 재료의 물질성이. 그 구체적인 양감과 크기가. 마치 재료가 알아서 먼저 길을 터주는 느낌. 글쓰기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감각이었다. “
p294 “ 과거를 들여다볼수록 기억은 간데없고 잊고 있던 상실의 감각만 되살아날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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