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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고백의 제왕

by 기시군 202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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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지 않은 속도로 전작들을 찾아다니는 작가가 있다. 이장욱작가가 그중 한명이다. 작가의 첫 단편집을 골랐다. 2010년 초판 발행이다. 13년전의 젊은 이장욱은 어떤 모습이였을까 궁금했고 역시니 실망시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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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너무나 반갑게도 8편 모두 하나같이 어둡고 칙칙하다. 😁(개인적인 취향이다. 용서하시길..🙏) 시공간은 얽히고 사건의 인과과 서사의 전개는 불규칙적이다. 몇편의 개요를 보자

*고백의 제왕
이제는 아저씨들이 된 대학동기들의 송년회 모임, 오랜만에 학교 때 '고백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곽'이 참석한다. 1학년 첫술자리 진실게임에서 60대 식당할머니와 첫경험을 고백하던, 어눌하지만 '고백'의 이야기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는 친구였다. 소설은 '곽'의  과거의 고백들과 지금의 우리들의 고백을 다룬다.  

*변희봉
올해 몇번이나 변희봉을 만났다.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변희봉, 결혼식 주례를 서는 변희봉을 만났다. 팬이라 기분이 좋아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그런데 아무도 변희봉을 모른다. 영화 '괴물'의 변희봉을 이야기해도 '김인문'이랜다. 이혼한 아내에게 전화를 해도 변희봉을 모른단다. 세상에...

*기차방귀 카타콤
중년의 당신, 딸은 몇년전 사고로 죽었고 와이프인 난 얼마전 자살했다. 당신은 나와 예약해놓은 파리의 지하공동묘지 카타콤 여행은 취소않았다. 난 유령인지 영혼인지 가타콤을 향해가는 기차안 당신 옆에 있다. 앞자리 서양여자는 세침하고 덩치큰 흑인남자는 무신경하다. 당신은 변비에 속이 않좋다. 자꾸 방귀가 나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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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기승전결이 있는게 아니다. '수많은 발단과 시시한 절정과 엉뚱한 결말p60'이 평행우주처럼 공존하는 것이 인생이다. 작가는 소설로 인생의 이러한 특성을 집어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의미는 언제나 인과를 가지고 있지 않다. 주어 이후에 언제나 목적어와 서술어가 따라붙어야 할 필요도 없다. 어쩌면 자신들의 인생에서 주인공으로 사는 개별자들은 사실 ' 비애나 우수 같은 고급스러운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텅 빈 얼굴p83 ' 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스스로는 그것을 못느끼고 그 랜덤한 인생을 소비하고 있는건 아닐까. 이야기들은 독자들에게 계속 이런 질문을 던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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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빼곤, 이장욱 작가의 소설은 다 읽은 것 같다. 이제 신간을 기다려야 할 때다. 왜 이렇게 이장욱에게 끌려하는 걸까? 작가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는 '노인처럼 낮고 견고한 감정'을 가지길 바란다고 했다. 독자인 난 '높고 흔들리는 감정'에 불안해한다. 나의 지향을 그는 오래전부터 걷고 있었다. 그의 글이 좋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작가의 말’로 마무리한다.

- 언젠가는 당신도 말도 사라지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삶은 삶일 수 있을 터이다. 당신과 나와 말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간판들, 행인들, 여고생들의 욕지거리, 취객들의 고성방가. 이 모든 것들은 남아 있겠지. 그들이 조금씩은 더 아름다워지기를. p283

p17 "유끼는 텅빈 듯 가득한 여자였고 알 수 잇을 듯도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여자이기도 했습니다. 유끼는 오직 유끼이면서도 그 어디에도 유끼라는 여자는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했습니다. "

p72 " 세상의 가장 이기적인 존재란, 아마도 잠든 개가 아닐까. "

p104 "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그의 고백에 이끌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자기 자신에게 탐닉할 때 느껴지는 집중력으로 매번 곽의 이야기를 경청했던 것은, 바로 우리였으니까 말이다...... 나는 곽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지껄였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누군가에 대한 흠모나 적의이기도 했으며, 타인이 가진 허점에 대한 비루한 관심이기도 했다. 곽의 이야기는 건조하면서도 감상적이었고 잔인하면서도 달콤했는데, 그럴수록 나의 고백 역시 더욱 노골적이 되어갔다. 곽의 침묵이 나의 고백을 부추길 때, 나는 쾌감에 몸을 떨며 내 내밀한 모든 것을 곽에게 고백했던 것이다. "

p166 " 두개골만큼 고요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

p186 " 죽음에게는 죽음만이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죽음은 삶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건 아닐까. 죽음은 죽음 자체를 밀고가는 힘으로만 충만한 것은 아닐까. "

p208 " 몸을 끌 수 있었으면 좋겠어....... 스위치 내리듯이. 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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