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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여름

by 기시군 2025. 7. 24.


#여름 #이디스워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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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 읽었다. 매년 여름마다 눈에 띄는데 별 이유 없이 읽지 않았고, 이번 여름엔 읽었다. 숙제를 한듯한 기분. ☺️ 시골 한 소녀의 성장담으로 읽기 시작했으나, 사실 이 소설은 (아쉽지만) 잘 억제된 ‘성애소설’이었다. 그저 시대적 한계 때문에 묘사가 극도로 제한되었을 뿐이다. 물론 지금 시선에선 상당히 ‘고구마’ 씹어먹는 듯한 사건의 전개가 답답하기도 하다만, 사람과 자연이 여름을 만날 때의 화사함과 싱그러운 묘사들이 그 단점을 잘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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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골마을, 동네 놀꺼리 하나 없는 작은 마을이다. 우리의 주인공 채리티는 작은 도서관의 사서로 일을 하지만 권태롭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 더 외진 ‘산’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우연히 그곳을 방문한 변호사를 따라 마을로 내려와 살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의 시간은 18살을 향하고 있고, 계절은 여름을 향한다.  

어느날, 그녀 앞에 매력적인 남자 ‘하니’가 나타났다. 도서관 주인의 친척이자 ‘건축가’로 마을의 오래된 집들을 살펴보려한다. 우연찮게 그와 동네나들이(?)을 안내하게된 채리티는 점점 그에게 빠져든다. 원래, 대도시에서 나타난 세련되고 친절하고 잘생긴 남자에게 빠지는 건 아주 정상적이다. 😋하지만 심난한 마음, 작은일에 기뻐하는 마음을 오가는 밀당 후에 그들은 그와 뜨거운(?) 여름안으로 밀려들어간다.

맑은 볕처럼 뜨겁게 다가오는 사랑 앞에서 그녀는 한없이 행복해진다. 하지만, 다들 알겠지만 인간들의 러브스토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가던가. 사회적 위치, 계급, 책임, 각종 번거로운 사연들이 이 둘 사이에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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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통속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다. 다 아는 이야기와 몇 개 되지 않은 결말 중 하나로 결정지어질 소설이 많이 읽히게 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강한 메시지 일 수도 있고, 충격적인 반전도 있겠다. 하지만 이 소설은 심상과 자연의 탁월한 묘사에 있다. 여름의 에너지를 담은 자연과 그걸 바라보는 인간마음의 울렁임. 그 자체로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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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체험이 녹아있는 소설이라고 한다. 이십년 넘게 결혼생활을 이어오던 이튼은 풀리턴이라는 남자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진다. 추측건대 ‘봄’ 같은 사랑에 안주하며 살아오다 ‘여름’ 같은 뜨거움을 느끼는 사랑을 만났던 것이리라. 소설 속에 피어오르는 생명력과 활기는 그녀가 느꼈던 생경 하지만 황홀하게 다가왔던 ‘어른의 사랑’ 덕분이지 않았을까?  

이 책의 21세기 버젼을 읽고 싶다. 정말 화사한 여름이 그려지지 않았을까싶다. 😘

✍ 한줄감상 : ‘슬픈 삶을 참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바로 인간의 성애인 것이다.’라는 해설자의 말이 내 해석이 과도한 것이 아니란 것을 증명해 준다. 😅 

p10 “ 상점도, 극장도, 강연장이나 상가 지역도 없었다. 다만 있는 것이라고는 도로 사정이 좋으면 두 주에 한 번씩 문을 여는 교회와 지난 이십 년 동안 새 책이라고는 한 권도 구입한 적이 없으며 낡은 책들마저 눅눅한 선반 위에서 조용히 썩어 가는 도서관뿐이었다. “ 

p25 “ 로열 씨와 채리티는 그 쓸쓸한 집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고독의 깊이를 헤아리곤 했다. “ 

p53 “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나무 가지에서 옅은 초록색 솔방울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숲 아래쪽 돌 비탈에 소귀나무 잎사귀가 돋아나며, 저쪽 들판에서 단풍터리풀과 노랑꽃창포 싹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수액이 부글부글 끓고 잎집이 훌훌 옷을 벗고 꽃받침이 터질 듯 차오르는 모습이 온갖 향기에 실려 왔다. “ 

p63 “ (산에 사는 사람들) 지금 그곳에 사는 사람이 백 명이 넘는다네요. 계곡의 지배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셈이죠. 학교도 없고, 교회도 없고… 경찰관도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러 올라가지 않고요. “ 

p99 “ 어쩌다 젊음이 몸속으로 활활 불타오를 때면 채리티는 다른 아가시들처럼 어스름한 황혼 녘 은밀히 사내들의 애무에 굴복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 

p168 “ 하니는 두 팔로 채리티를 껴안았고, 그녀의 머리카락과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하니의 입맞춤에 그녀 몸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것들이 온 힘을 다해 빛을 향해 꿈틀거리더니 햇빛 속의 꽃처럼 활짝 피어올랐다. “ 

p201 “ 긴 폭풍우에 이어 북서풍이 몰아쳤고, 폭풍이 끝나자 언덕은 처음으로 황갈색을 띠었으며 하늘이 점점 짙은 푸른색으로 변해 가는 동안 큼직한 뭉게구름이 눈 더미처럼 언덕에 드리웠다. “ 

p209 “ 그녀가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인 이상 자신을 하니의 아내로 그려 보는 데 이제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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