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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축제 #밀란쿤데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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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출근길, 운전을 하다가 문득 떠올랐고, 다시 읽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저녁에 책장들 사이를 열심히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오래된 책들은 켜켜이 쌓여 구석구석 쌓여있다. 다시 읽고 싶다는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아, 그날 밤 교보에 주문을 넣었고, 다음날 받아 집중하며 이 얇은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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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사는 4명의 남자들은 친구사이다. 알랭은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가슴이나 힙이 아니라 ‘배꼽’에 두는 현상에 대해 궁금해한다. 라몽은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기념하는 이중 축하 파티’를 떠올리며 멀쩡한 사람을 암환자라 거짓말을 한다. 칼리방은 배우라는 직업에 삶의 ‘의미’를 두고 있다. 질투와 불안의 상징 샤를은 언제나 여자 근처에 머물지만 사랑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은 엇갈려 만나 수다를 떨고, 파티에도 가고,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수다를 나누다가도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는 ‘흔해 빠진’ 현대인의 병증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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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 이 책을 읽고 강하게 공감했던 부분을 찾았냈다. 등장인물 중 한 명처럼, 나도 내 부모에게 사과받고 싶다. 왜 내 허락도 없이 이 세상에 날 내놓았는지. 정말 사과받고 싶다. 우리는 탄생을 선택할 권리도 없으며, 삶을 끝낼 권리조차 없다. 부조리하다. 태어나게 해 준 걸 감사하라고? 아니 사과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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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간에게 삶은 무엇이냐고, 무슨 의미를 가지느냐고 쿤데라는 질문을 한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이 존재의 본질이며, 그 무의미 속에서 사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야 한다고 한다. 어찌 보면 무의미는 아름답게 존재한다고, 그것이 ’ 기분 좋음‘의 열쇠라고 강조한다.
간단한 결론이다. 우리는 축제를 벌여야 한다. 무의미라는 단어에 힘 빠지지 말자. 일상을 보내며, ’ 기분 좋음‘을 찾아 행동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라는 말이 격려처럼 들린다. 문득, 쿤데라의 ‘기분 좋음’을 생각했다. 그는 자신만이 자신의 방식으로 ‘ 무의미의 축제’를 써 내려갈 수 있는 ‘작가’라는 사실에서 ‘기분 좋음’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럽다. 이어지는 질문. 그럼 나는?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나의 ‘기분 좋음’은 타자의 기분 좋음과 상당 부분 공통분모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나만의 ‘그것’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좋은 책은 이렇게 긴 꼬리를 가진 질문을 남긴다.
✍ 한줄감상 : 무게 잡으며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말 것. 농담처럼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은 즐거운 행동 만으로도 ’ 기분 좋을 ‘ 수 있다. 기쁨은 의미에 선행한다.
p59 “ 나는 왜 틈만 나면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
p77 “ 네 엄마는 네가 태어나는 걸 전혀 원치 않았어. 네가 여기서 왔다 갔다 하는 거, 저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고 아주 편안해하는 거를 네 엄마는 전혀 원치 않았다고. ”
p80 “ 자신을 탄생시킨 두 가지 증오… 온화하면서 신체적으로 강한 남자의 증오와 대담하면서 신체적으로 약한 여자의 증오가 이룬 짝짓기. ”
p103 “ 우스운 것에 대한 성찰에서 헤겔은 진정한 유머란 무한히 좋은 기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오로지 무한히 좋은 기분이라는 저 높은 곳에서만 너는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거라고. ”
p136 “ 솔직히 말할게. 누군가를, 태어나게 해 달라고 하지도 않은 누군가를 세상에 내 보낸다는 게 나한테는 늘 끔찍해 보였다. ”
p142 “ 수없이 많은 엉덩이 중에서도 자기가 사랑한 엉덩이는 알아볼 것 같아. 그렇지만 배꼽을 가지고 이 여자가 내가 사랑하는 여자라고 말할 수는 없어. 배꼽은 다 똑같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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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꺼리 : 쿤데라의 주장의 가장 반대편은 누가 있을까? 공동체에서의 책임과 도덕을 강조한 #톨스토이 가 떠오른다.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인 죄와 고통, 영혼과 구원을 설파했던 #도스토예프스키 도 떠오른다. 구원과 진리는 무의미의 가장 반대편에 서 있다.
✍ 비슷한 책 : #폴오스터의 초기작들 #뉴욕3부작 등이 떠오르며, 카뮈의 작품들 역시 삶의 의미는 스스로 부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유사함. 그리고 이 작품과 가장 비슷한 책은 쿤데라의 다른 책들이다. 쿤데라 전집 참고하자.
✍ 남긴 질문 : 쿤데라는 의미의 과잉을 절대적으로 싫어한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염증에서 시작된 사고일 것이다. 그렇다면 쿤데라의 말처럼 ‘가볍게’ 살려하는 삶의 태도에는 문제가 없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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