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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쥬디 할머니

by 기시군 2026.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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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디할머니 #박완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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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소설가 31인이 추린 박완서선생님의 대표 단편선이라는데, 바로 예약구매를 했고 뜸 들이지 않고 읽었다. 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 작품까지 10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굴곡의 시대에 치대며 어떻게든 살아남은 ‘여성들, 인간들‘의 삶이 묵직하게 한 권의 책에 빼곡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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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다. 몇 편만 추려서 개요만 정리한다. 스포는 없다.

*쥬디할머니 - 그녀에겐 미국에 잘나가는 자식들이 있고, 그중 맏이의 막내딸 쥬디를 아주 많이 사랑하여 아파트에서 쥬디 할머니라 불리는 세련된 할머니가 있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할머니에게 급하게 이사를 가야 할 사정이 생겼다.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평온한 달래마을이었다. 전쟁이 나고 남쪽과 북쪽이 번갈아 가며 마을을 점령하고 휘저은 탓에 남자들은 모두 죽거나 도망쳤다. 마을은 온통 여자들 뿐. 어느 날 마을을 점령한 군대를 보니 양놈들이다. 밤마다 이놈들이 양색시를 찾는다며 마을을 휘젓고 다닌다. 마을 여자들은 제일 웃어른 집에 모여  공포에 떨고 있다. 암만해도 뭔일이 생길 모양이다. 그 순간 최고 웃어른 노파가 선언을 한다. ‘내가 코배기들의 색시 노릇을 해야 할까 보다. ‘ 새댁에게 자신을 화장시키라 명한다.

 *해산바가지
과부에 외동아들이라 걱정했지만 시어머니는 좋은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늙어 치매에 걸린 것이다. 부부의 문 앞에서 아들의 요강을 반짝반짝하게 닦아놓고 아들을 기다린다. 며느리가 자기를 굶기고 괴롭힌다고 난리를 친다. 의료보험도 없는 시절, 경제적으로도 효부 이미지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난 아들을 잃은 어머니다. 형님네 아들은 80년에 대학을 들어가서 공부만 열심히 해 출세 중이다. 형님네 보다 3년 뒤에 입학한 아들은 데모하다 죽었다. 개죽음인 줄 알았는데 민가협 어머니들을 통해 장한 아들이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난 아들을 잃은 어머니다. 지금은 형님에게 전화 중이다. 형님은 별 대꾸 없이 내 말을 듣고만 있다. 나는 내 말을 한다. 남을 위해 나를 속이기 싫다. 이제부터 울고 싶을 때 울 거라 말한다. 계속 말한다. 형님이 내 말을 듣고 있나 확인하면서 계속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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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자기의 친척, 친구가 잘 나가는 것을 자랑하며 그것이 마치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는 냥 떠드는 사람을 만난다. 그 빈약한 마음의 두께가 안쓰럽다. 그리고 자신의 부가 오로지 자신의 능력 만으로 만들어진 줄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시대와 개인 간의 관계 따위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 불쌍한 뻔뻔함이 불편하다.

선생은 그런사람들의 이야기를 품는다. 나만 아니면 된다의 신조로 세상을 버틴 세월들, 선생은 그래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꾸려간다. 이 땅의 악착같이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연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낸 사람들에 대한 예찬을 가득 담아, 선생은 소설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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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근대사라 해두자. 조금 나이 든 독자라 해도, 이 정도의 가난은 기미만을 느꼈을, 대부분의 독자들은 선생이 그려내는 삶에 대해 오래된 드라마라는 느낌만을 가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 땅에서 그 시간들을 버터 냈던 사람들의 기록들이 그 안에서 아팠던, 고통을 주고받았던 인간들의 기록이 아프게 다가온다. 가난마저 도둑맞은 시대에 대한 서사를 외면하지 말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독자들 근처에 ‘가난’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금 이 땅의 모두가 가난을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전검색을 많이 했다. ‘오살할 놈’, 몸을 다섯 조각낸다는 뜻이다. ‘낯나게’, 생색나게라는 뜻이다. ‘나종 지니인 것’은 마지막까지 지니게 되는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뜻이다.

한참 동안 나의 나종 지니인 것에 대해 생각했다. 

✍ 한줄감상 : 옛날이야기라고 외면하지 말 것. 너무 무거운 이야기라고 고개를 돌리지 말 것. 책을 좋아한다 말하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의무다. 

p30 (쥬디 할머니) “ 나는 다시 울타리를 칠 수 있을 거야. 할머니는 오로지 그 생각만 했다. “ 

p43 (애 보기가 쉽다고?) “ 개인적인 행운과 그 시대와의 관계에 어렴풋이라도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

p109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 마을에 여자들만 남게 되자 서로 모함해서 생사람 잡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 

p129 “ 그때 그를 받아들인 노파의 깊은 곳은 마치 그가 어릴 적 손을 밀어 넣은 엄마의 스웨터 주머니 속처럼 무심히 열려 있었고 헐렁했고 부숭부숭했었다. “ 

p208 (해산바가지) “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허구한 날 맺는 온당한 인연, 온당치 못한 인연이 훗날 무엇이 되어 돌아오나를 풀 수 있는 암시 같은 게 들어 있는 것처럼 느꼈다. “ 

p227 (해산바가지) “ 나는 효부인 척 위선을 떨지 않음으로써 조금은 숨구멍을 만들 수가 있었다. “ 

p286 (부처님 근처) “  우리는 마치 새끼를 낳고는 탯덩이를 집어삼키고 구정물까지 싹싹 핥아먹는 짐승처럼 앙큼하고 태연하게 한 죽음을 꼴깍 삼킨 것이다. “ 

p310 (도둑맞은 가난) “ 그들이 죽기를 무릅쓰고 거부한 가난을 내가 지금 얼마나 친근하게 동반하고 있나에 나는 뭉클하니 뜨거운 쾌감을 느꼈다. “ 

p345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 여자들끼리의 진정한 의미의 성의 있는 위로가 무엇인가를. 그것은 오직 자기보다 좀 더 불행한 경우를 목격하게 하는 것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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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거리 : 

선생의 소설은 거대담론을 피하고 실제 개인이 몸으로 겪게 된 역사의 폭력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여성이라는 위태로운 사회적 위치에서도 작게라도 끝까지 저항할 줄 아는 여성상을 만들어낸다. 

이 책을 읽는 다는 건 과거의 기록을 들추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형태로 지금 ‘현재’를 통과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질문을 읽는 일이다. 

✍ 같이 읽을 만한 책 :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김애란 작가의 소설들이 겹쳐 보였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계급의 간극과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현재형이다. 박완서가 그 시대의 삶을 기록했다면, 김애란은 지금의 삶을 같은 질문으로 다시 쓰고 있는 듯하다.

이미 유명한 최근작들 말고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등의 초기작을 추천한다. 

✍ 남긴 질문 :  

이 단편들이 놓인 70년대부터 90년대의 시간과, 선진국이 되었다고 말해지는 지금의 한국은 본질적으로 얼마나 달라졌을까. 문학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에 기꺼이 지지를 보내면서도, 그 질문이 여전히 우리의 삶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생각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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