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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깊이에의 강요

by 기시군 2026.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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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강요 #파트리크쥐스킨트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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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는 것도 일이다. 여러 경로 중에 '남들의 인생책' 찾아 읽기 루트가 있다. 쥐스킨트는 오래전 '향수'만 읽었을 뿐, 다른 책은 읽은 적이 없다. 이 얇은 책이 계속 회자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미뤄뒀다 이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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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의 단편과 1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지만, 문학 입문자들에게 더 좋은 영향력을 줄 책으로 보인다.      

표제작 '깊이에의 강요'는 문학 또는 예술에 있어서 예술성, 그 '깊이'에 대한 의미를 임팩트 있게 다루고 있다. 예술적 '깊이'는 실존하는가? 객관적일 수 있는가? 그 질문은 쉽지 않다. 기초적인 합의에 의해 아마추어와 프로는 구별해 내겠지만, 전문가들의 누적된 경험들이 미세한 감동의 차이를 구별해 내고, 그것을 평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 물음은 부르디외가 말한 '취향'의 문제와 닿는다. '깊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이미 계급적 위치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전문가,출판관계자,교수,평론가로 구성된 '예술계'의 평가에 '객관성'이 어느 정도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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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편 '승부'는 선입견에 대한, 혹은 편견을 다루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직설적인 질문이다. 세 번째 단편 '장인 뮈사르의 유언'은 인간이 가지는 '세계관'의 정립 단계와 '신념'의 탄생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뮈사르는 평생 수집한 조개껍데기가 세상과 우주를 구성한다는 원리를 발견한다. 사소한 관찰이 하나의 신념 체계로 굳어지는 과정이 아이러니와 함께 그려지는데, 인간의 집착과 확신이 어떻게 세계관으로 변모하는지를 유쾌하게 비틀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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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문학의 건망증'은 스스로의 나태에 대한 위안이라는 작가의 자평에 동의한다. 좋은 문장,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작가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래도 이 짧은 에세이에서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책이 독자를 변화시키기'이전에 '너(작가)는 네(작가)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문장이다.

읽고 나서의 만족감이 큰 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으로 꼽을 땐 그 이유가 있는 법이구나 싶었다.

✍ 한 줄 감상 : 얇지만, 다양한 형태의 문학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깊이'는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직접 실천한 책이다.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이장욱의 '영혼의 물질적인 밤'. 앞의 책은 '깊이'의 판단에 대해 논하며, 뒤의 책은 '깊이' 그 자체를 보여준다.

p9 “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

p14 “ ……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

p34 “ 그 남자의 자신감과 천재성 그리고 젊음에서 오는 후광을 그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

p49 “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정형이나 아니면 어쨌든 완전히 자의적으로 형성된 돌 조각들이 무엇 때문에 지극히 예술적인 조개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일까? “

p51 “ 우리의 행성 전체가 조개와 조개 종류의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현실로 입증되었다. “

p69 “ 곧 나는 좋은 책을, 그것도 아주 썩 좋은 것을 집었다고 깨닫는다. 그것은 완벽한 문장과 지극히 명확한 사고의 흐름으로 짜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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