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Life

서교동에서 죽다

by 기시군 2022. 4. 27.

✔️
📕
재미있게 글을 쓰시는 인친님( @shining_yooni 😁 )피드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서교동 근처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작가의 자전적 소설. 연배(작가는 62년생이다)는 많이 다르지만 나 역시 서교동이라 표현되는 홍대입구 근처부터 지금은 망원시장으로 유명한 망원동, 성산동을 주 서식지로 어린시절을 보내왔었다. 호기심은 책을 읽게 만든다. 인친님 피드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나오는데 누가 죽길래 눈물이 난다는 말인가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받아본 책은 400페이지가 넘은 나름 두터운 책이였다. 그러나 쉬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버렸다.

📗
1974년. 주인공 진영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버스회사 사장이 아버지와 같은 실향민출신에 사투리가 구수하신 어머니, 공부잘하는 고3 큰형, 교회에 열심인 누나 그리고 세살어린 막내까지 6식구가 나름 식모누나도 부릴정도로 여유롭게 살고 있었다. 자전거를 좋아하고 개구진 진영이에게 74년의 가을은 시련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시고 본인이 큰 개에 물려 죽을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건 아버지 회사에서 운영하는 버스가 큰 사고를 내어 회사는 파산, 집은 차압당해 식구들은 외곽인 화곡동의 작은집으로 쫓겨나듯 이사를 하게된다. 안방에는 아버지가 시름시름 앓으며 누워있고 생활비벌이를 위해 어머니는 과일가계를 하게된다. 화곡동에서 서교동까지 힘든 등교를 해야하는 진영이는 이사 다음날 등교길에 학교를 재껴버린다. 나름 공부잘하는 모범생의 첫 일탈이었다.

📘
일인칭 시점에 화자는 어린아이다. 일부 이인칭으로 표현되는 사건 이외에는 그 어린아이의 눈으로 당시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그려진다. 꼼꼼한 묘사되는 풍경과 섬세하게 그려지는 인물간의 긴장이 효과적으로 소설화 되어 있다. 몰입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진영이 자전거를 타고, 혹은 아픈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거리들은 한 세월은 지났지만 나역시 같이 돌아다니던 동네였다. 홍대입구 역 근처에는 철도길이 있었고 가건물에서 떡볶기를 사먹었었다. 진영이가 힘들때 또는 놀아삼아 올라갔던 나즈막한 '성미산'에도 나역시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하러, 혹은 슬플때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려 올라갔었던 곳이다. 진영이는 잘사는 동네인 '서교동'에서 놀았지만 나는 성미산 반대쪽 '성산동'에서 살며 망원동, 합정동을 타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다. 소설속에 나오는 131번 버스 종점 근처 집에서 살았다. 당시 자전거에서 일던 흙냄새가 다시 느껴지는 듯 했다.

📙
진영이의 희노애락을 홀린듯 한번에 다 읽고나서 작가의 말을 읽었다. 다행이었다. 작가에게는 누나가 더 있었고 많은 애피소드들을 해체, 재구성하여 장편소설로 창작을 한 것이라 한다. 아니였으면 주인공 진영이 모습이 더 서럽게 떠 오를 뻔 했다. 물론 슬픈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영역에 닿는 사람들을 통해 어린자신이 성장하는 모습이 무척 흥미롭게 그려진다. 식모 구희누나를 통해 느끼게 되었던 음악과 이성에 대한 감흥, 어른들의 아귀다툼과 불합리한 심부름 등 부조리한 현실안에서 갈등과 방황을 하면서도 한단계 더 성장함을 느끼기도 한다. 큰 스킬없이 가족서사에 집중하는 이런 형태에 소설에 이렇게 몰입한 적이 있었나 놀라며 읽었다. 몇 장면에선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어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다. 🥲 추천받을 만한 책이었다. 고영범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작가의 책을 좀더 뒤져볼 생각이다.

덧,
작가가 입학한 중학교(소설에서는 가명을썼다) 묘사를 보니, 아무래도 나의 선배같다. 사단장출신 이사장. 군대같은 학교 문화. 아이스하키 스틱(아이스하키팀이 유명한 학교였다)을 휘두르던 '미친개' 체육선생. 물론 세월의 차이가 꽤 있다. 내가 학교를 다닐때는 그 이사장은 늙어 죽고 없었다. 그러나 '미친개'는 좀 늙긴했지만 높은자리에서 여전히 활발한 활동 즉, 여전히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선생들은 촌지를 받았고 따귀와 원산폭격은 여전했었다. 어린 나에게도 집과 학교는 황량했으며, 부자 친척집에서 공짜로 얻어온 ‘세계문학전집’과 만화가게에서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고 있었다. 만화가게엔 작가의 시절처럼  '김일성의 침실'등의 야한 반공만화는 없었고 불법으로 번역한 일본만화가 인기있던 시절이라 그 야시러움에 빠지기도 했었다. 잊혀졌던 장면들이 너무 많이 떠오른다. 고만해야겠다. 😊

p250" (하루종일 병으로 방에누워 멍하니 옆으로 누워 벽지만 쳐다보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같은 자세를 취해본다).....아버지 역시 이런 걸 읽어내고 있었던 걸까? 읽어내는 행위 이상의 의미는 전혀 없는걸? 공간만 충분하다면 무한히 이어질 장식적인 마름모들의 연쇄로 이어진 우주에서 단 몇 개, 아버지는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지냈다. 그것들은 어쩌면 아버지를 기억 속으로 이끌어 갈 아버지만의 마들렌이었을 수도 있고, 아버지가 가보고 싶었으나 일찌감치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 그럴 기회가 없었던 토끼굴로 들어가는 입구였을 수도 있겠다. 당신을 가둬놓고 있는 수많은 창살들이었을 수도 있겠고. 그러나 그걸 누가 알겠는가."

#서교동에서죽다 #고영범 #가쎄 #GASSE #서교동 #동교동 #성산동 #망원동 #화곡동 #한국소설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 #추천도서 #bookstagram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0) 2022.04.28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0) 2022.04.27
전국축제자랑  (0) 2022.04.27
제노사이드  (0) 2022.04.27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0)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