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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환상의 빛

by 기시군 202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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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밤, 차분히 혼술을 하며 음악과 책을 뒤적거리다가 불현듯 이 책이 생각이 났다. 미아모토테루의 '환상의 빛'. 실존인물을 아니지만 여주인공은 아직도 남편이 왜 자살했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책을 들쳐보고 싶어서 한참을 책장속을 뒤졌는데 못 찾았다. 좁은 집, 오랜된 책들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은 곳에 쳐밖혀 있는 탓이다. 왠지 포기하기가 싫어 다시 책을 주문했고, 평온한 일요일인 오늘 아침, 일찍 떠진 눈을 핑계 삼아 받아논 책을 다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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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한 책이라 줄거리를 모르실 분이 있을까 싶다. 그래도 간략히 정리해 본다. 어려운 형편탓에 중학교만 겨우 마친 주인공 '유미코'는 동네에서 비슷한 처지의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살림을 차리고 아들 '유이키'가 태어나고 3개월 쯤 지난 어느날, 남편은 기차 선로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몇년의 세월이 지나 가난한 시골마을에 딸하나 있는 홀아비에게 새로 시집을 가는 '유미코'는 조금 씩 새생활에 적응을 하지만, 불쑥 떠오르는 의문때문에 수시로 괴로워 한다.  ‘남편은 왜 자살을 한 걸까?' 세월이 지나도 그녀는 그 이유를 알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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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었을때,  유려한 문장들에 완전히 빠졌었다. 당시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했던 #이동진 작가는 이 책을 '시간의 소금기가 묻어있는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 이라 표현했었다. 맞다. 사랑을 잃고 유령처럼 살아가는 유미코를 둘러싼 사람과 풍경들의 서정적이며 서늘한 묘사. 특히 바다에 반사되어 그녀의 눈안을 채우는 빛의 산란은 사람의 마음을 속여 인간이란 존재을 사라지게 만들 수 도 있는 무서운 바다의 정체를 숨겨주는 화려한 치장이기도 하다. 문학적인 묘사란 이런것이다라 할만한 여운 가득한 문장과 그 사이의 여백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새남편, 그의 딸, 동네사람 또는 낯선 이방인과의 작지만 의미있는 사건들을 통해 유미코의 사념이 단순해 지는 것을 막은 멋진 서사가 쌓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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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었던건 죽은 남편 때문이었다. 소설에서 남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유미코를 사랑했고 성실히 공장에 다니며 생활비를 벌고 있었고, 이쁜 아들까지 본 젊은남자의 선택. 책을 다시 읽으면 처음 읽을 때는 조금 무심했던 그 부분에 대한 좀더 짙은 이야기를 느낄 수 있을까 했다. 물론 다시 읽은다고 구체적인 답을 찾을 순 없었다. 다만 소설에서 그려지는 유미코의 아픔만큼이나, 보이지 않은 공간에서 더 고통에 몸부림쳤을 것이 뻔한 그의 흔적만이 느껴졌다. 책에서 유미코는 고통스러운 의문을 없애기 위해  남편은 '혼이 떠나가서'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불행을 딛고 올라서야하는 유미코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남편은? 그는 그저 죽오싶었을 뿐이였을 것이다. 사랑도 책임감도 삶의 욕망도 어느날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으러 고향으로 걸어서 돌아간 할머니처럼, 삶의 무게에 짖눌린 누군가는 삶이라는 길을 벗어나 반대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사라진 이의 생각보다는 살아남아 삶을 살아내야 하는 유미코를 계속 바라보게한다. 영원할 것 같았지만 순식간에 끝나버린 삶은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에게 더 많은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사라지는 삶'에 대한 마음에 단련을 시키는 책이기도 하다.

덧,

단편집이고 '환상의 빛' 말고 3편의 단편이 더 실려있다. 이번엔 '환상의 빛'만 다시 읽었다. 나머지 작품들도 좋았던 기억이 있다. 혹시라도 못보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p38" 그리고 참으로 신기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간 할머니와 교대라도 하듯 당신이 제 앞에 나타난 것에 뭔가 오싹한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p40" 저는 당신이라는 사람이 따라다니는 풍경에서, 소리에서, 냄새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p46" 상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가워져버리는 그 뒷모습에 말을 걸면, 저의 또 하나의 마음은 분명히 무언가에 빠져들어 황홀해지는 신기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p52" 그때만은 죽은 당신도, 당신의 뒷모습도 머릿속에 접어 넣고 요란하게 넘실거리는 바람과 파도의 한복판에서 살짝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

p80" 당신의 뒷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불행이라는 것의 정체가 비쳤습니다. 아아, 이것이 불행이라는 것이구나. 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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