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Life

스크롤

by 기시군 2022. 5. 27.

✔️
📕
소설의 기본은 인과관계다. 우리가 이야기에 몰입하는 이유는 이번 사건으로 다음사건을 유추하거나 어긋났을 때의 긴장감 때문이다. 대부분은 잘 짜여진 핍진성이 인과관계가 주는 쾌감을 고조시켜 독자들에게 소설 안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해 준다. 정지돈작가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실험을 한다. 소설의 일반적인 문법은 대부분 무시하고 한권의 '소설'책을 만들어 냈다. 호불호가 갈릴것으로 보인다.

📗
두개의 줄기로 내용은 진행된다. 첫째, 음모론에 대응하는 글로벌 국제조직 '미신파괴자' 소속 대원들은 '존재론적 행방불명자'가 되어 음모론 자체에 뛰어는 이야기. 또 하나는 펜데믹 이후 가상현실이 일상화된 근미래 한국에서 거대 메타버스 '메타북스'의 종업원으로 살고 있는 몇 명 인물의 파편화된 이야기들이 나열된다.

📘
일단, 책 앞부분에서 유지되던 평범한 일반소설적인 문법은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의 실험정신이 혼란스러워진다. 시간은 섞이고, 인과는 생략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비현실인지를 흐트려진다. 가짜정보와 진짜정보지만, 너무 오타쿠스러워 사람들은 잘 알 수 없는 정보들이 콜라주형태로 소설 부분 부분에 새겨진다. 분화되고 개인화되는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의 삶을 비추는 형태로의 실험으로 보인다.

📙
동감과 연민, 거대담론, 세상에 대한 문학의 역할 등 고전적인 주제에는 작가는 관심이 없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자신은 "책이 깨달음을 준다는 말 따위는 믿지 않는다. 모든 언어는 이미 깨달은 사람, 깨달을 준비를 한 사람에게만 이해된다."고 말이다. 친구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자. 그들은 현실의 문제를 공유하고 같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컨텐츠는 영화나 소설작품, 가쉽, 풍문 뿐이다. " 변화, 새로운 혁신은 언제나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작가에 견해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작은 이야기, 사소한 논쟁" 에의 즐거움에만 집중하겠다는 작가의 자세에는 그렇게 마음이 가질 않는다.
물론 그의 실험이 현존하는 소설형식에 대한 질문이며 이는 당연히 유의미한 시도이다. 참신하고 유니크한 작가의 작법은 어느순간 반짝이며 감탄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다만 '하루하루 즐겁게' 살기위한 소설을 쓰는 그도 존중받아야 하나, 독자인 나의 '즐기기 위한' 소설읽기 방식에는 그렇게 적합하지 않아서 아쉽다. 나의 소설읽기에는 작품을 위한 예습이나 복습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덧,
생각해보니 이 책에선 작가의 장기인 유머코드가 별로 보이질 않은다. 에세이긴 하지만 전작 #당신을위한것이나당신의것은아닌 에서 보여주었던 센스넘치는 재치와 웃음이 없으니 더 허전했던 모양이다.

덧 둘,
작가 덕분에 새롭게 알게된 병이 있다. #아불리아 abulia 라고 하여 '무의지증'으로 번역된다고 한다. 뇌에 생기는 신경 질환이라한다. 난 그저 생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실제 그런 질병이 있다니. 놀랍다.

p17" 책의 흔적, 책의 신호, 책의 찌꺼기, 책의 정신, 책과 관련된 모든 정보 흐름의 엔트로피가 메타북스의 촉수가 된다."

p71" 프랜은 단지 말들을 떠돌게 하고 싶었다. 대단한 예술 작품, 베스트셀러, 히트작, 영원불멸의 클래식 따위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떤 생각, 아이디어, 논평, 꿈, 일상, 작은 이야기, 사소한 논쟁 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며 하루하루를 즐겁고 슬프게 스치고 사려졌으면 했다. "

p81"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파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p148"  프랜은 생각했다.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절대 그 속사정을 알 수 없다고, 안다 해도 되돌리거나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인다 해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그것이 때로 우리를 절망하게 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주 작고 표면적인 일을 통제하고 실천하는 것에 만족하며 살 거라고." 

#스크롤 #정지돈 #오늘의젊은작가 #민음사 #한국소설 #장편소설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 #추천도서 #bookstagram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 #독서노트 #글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테무진 투 더 칸  (0) 2022.05.27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0) 2022.05.27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0) 2022.05.26
나오미와 가나코  (0) 2022.05.26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0) 2022.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