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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by 기시군 2022.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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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읽었던 선생님의 작품은 #친절한복자씨 이다. 초기작들이야 워낙 예전에 읽어 분위기만 남아있고 '복자씨'는 그나마 근작이라 기억에 생생하다. 이 책도 기회 닿으면 정리해 볼 예정이다. 교보문고 서핑하다가 선생님의 에세이 모음집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봤다. 생각해 보니 선생님의 수필이나 에세이는 본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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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서 가신지 10년이란다. 이 책은 1970년 등단때부터 돌아가신 2010년까지 발표하신 660편의 에세이 중 35편을 골라 모은 책이다. 6개의 파트로 나눠 각 파트별로 5~8편의 글들이 실려있다. 특이하게 시대순으로 묶지 않았다. 느슨한 주제로 40대의 선생님과 70대의 선생님을 불쑥불쑥 만나게 해 놓은 구조였다. 글첫부분에선 언제 이야기일까 궁금했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등단을 막 한 40대의 가정주부나 손자를 보고 즐거워하는 노인의 글이나 일관되게 겸손하시고 사려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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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커버에 잘 그려진 삽화, 책도 이쁘게 잘 만들었다. 서문에 따님의 글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이런분을 어머니로 모시는 건 어떤건지 상상이 잘 안되었다. 책 한권에 녹아나 있는 한사람의 여성작가의 글 흔적들은, 단 한마디의 현학적 미사여구도 없이도 묵직하게 사람에게 다가온다. 제목으로도 쓰여진 작가의 말,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다.” 를 그대로 평생을 실행에 옮기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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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도 재미있었다. 1930년대 황해도 산골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서울에 올라오게 되었는지, 서울에 와서는 어떤 생활을 하셨는지, 결혼을 하고 살림을 하다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고, 남편을 보내고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어떻게 참아내셨는지, 모든것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절망속에서도 어떻게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진솔하게 풀어내고 계신다. 읽다가 생각이 든다. 이 분은 정말 남에게눈 후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해야 한다는 성현의 말을 실천하며 사셨구나. 자신의 티끌만한 허물은 바위만하게 보시고 힘들고 없는 사람들에 대해선 한없이 마음을 쓰고 사신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누구든 읽어서 좋을 책이다. 특히나 자녀를 가진 여성이라면 더 느끼며 읽을 책이다. 추천드린다.

덧,
인상적이였던 수필은 '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 였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너무 괴로워 하시던 선생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고 살아내야 하는 상황에서 가졌던 희망이다. 조금 만 더 살면 세상을 떠나 아들에게 갈 수 있다는 희망말이다. 죽음도 희망이 될 때가 있었다.

p20"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는 착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고, 그런 날은 살맛이 난다."

p26"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p206"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 남이야 소설에도 효능이있다는 걸 의심하건 비웃건 나는 나의 이야기에 옛날 우리 어머니가 당신의 이야기에 거셨던 것 같은 효능의 꿈을 꾸겠다."

p236"작가의 눈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않는다. 모든 사람한테 미움받은 악인한테서도 연민할만한 인간성을 발굴해낼 수 있고, 만인이 추앙하여 마지않는 성인한테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작가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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