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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아침의 피아노

by 기시군 2022. 6. 11.

어느 법의학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은 심장질환처럼 갑자기 닥치는 죽음보다는 고통스럽더라도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암으로 죽고 싶다고 한다. 동의 할 수 없었다. 한발 한발 내게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긴 시간 견뎌내야 하는 형태의 죽음은 난 싫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책장에서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정말 죽음을 정리해 나간 인물. '자신에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고 말하는 죽어가는 철학자. 병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자 노력했던 정신.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긴 투병시간. 그리고 그 기록.

자신말을 위한 기록이 아니라 했다. 남겨진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록이라 했다. 나만을 지켜려 할때 더 약해진다 했다. 마음이 편안해 진다는 마지막 메모까지 철학자는 강한 사람이었다.

나의 끝이 철학자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벌어질 부존재로 가는 과정을 내가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 비춰볼 수 있는 책이었다. 아직까지는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죽음을 더 선호한다. 세월이 더 지나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지금을 알 수 없는 일들로 상황이 달라진다면, 혹시 이 철학자를 다시 떠올릴지 모르겠다. 언젠가.

p.125 " 때와 시간은 네가 알 바 아니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무엇이 다가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것은 열려있다. 그 열림 앞에서 네가 할 일은 단 하나. 사랑하는 일이다."

p242"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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