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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일 없는 평범한 휴일이었다. 본가 모친을 모시고 맛나는 점심을 먹었고, 집에 돌아와 김기택시인의 '껌'을 읽었다. 모친은 즐거웠으며 시집은 너무 좋았다. 좋은일만 있었는데 두가지 일이 겹쳐지니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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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모친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한다.
' 건강이 너무 많아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르는 건강을, 몸에 좋다는 것 찾아 먹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건강(p64) '을 많이 걱정한다.
위로와 호응의 말을 전하나
' 말들은 허공 속으로 마구 퍼져 스며(p89)' 드는 느낌이다.
다음 레파토리,
본인의 희생과 사랑의 댓구로 호응하지 못해 조금 혼났던 어린 내가 등장한다. 모친에게는 생활의 서러움이 각인되어 있고, 나에게는 ' 악쓰는, 윽박지르는, 한숨이 엿처럼 찍찍 늘어나는 중년 여자의 목소리에 숨통이 조여 시작된 어린 울음소리(p104)'가 선명하다.
순한 어린 나에 대한 칭찬이 이어진다. 맞을 때 모친을 노려보는 바람에 더 맞았다는 동생의 성깔 흉에, 맞다가 오줌을 지리는 바람에 동생보다는 덜 맞았다는 순한 나에 대한 칭찬이 미소와 함께 너무 평화롭다.
본가에서 돌아오는 운전길. 하늘이 너무 맑다.
괜시리, 동생처럼 작은반항 한번 못해보고 오줌을 질질싸며 피멍을 비비며 고개숙이고 서 있는 어린 내가 떠올랐다.
추레하게 ' 제 슬픈 흥에 취해 단맛이 든다.(p104)'
그녀 탓이 아닌걸 안다. 가난이, 부친이 나를 '껌'으로 만들었다.
'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 '
그런 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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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때문이다 라고 말하기 어렵다. ' 지나가는 사람들을 악의 없이 툭툭 건드리고 (p89)' 있는 상황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 않은가. 취기에 몸을 의탁하며 ' 취한 시간에만 보이는 그곳, 취한 시간에만 나오는 그 말을 그러나 술이 깬 그는 결코 기억하지 못할(p15) ' 그것 때문일꺼라는 추측만 남는다.
요즘 꿈을 꾼다. 자고나면 눈에 실핏줄이 터져 있다. ' 잠에서 깨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꿈은 깨지 않은 채 잠만 깨어 울고 있었다.... 왜 우는지 기억나지 않는데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p100) ' 는 시인의 말에 촌스러운 자기연민이 스믈거리며 밤시간을 잡고 있다. 여기까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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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단 한번도 권력자의 시선에 서지 않는다. 밣히고 씹히고 당하는 피지배자, 동물, 사물까지 철저하게 한없이 낮은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흥분하지 않은 시어들은 찐득하게 아픈 삶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시인 핑계로, 시인의 시어들을 새긴다는 핑계로 멋쩍은 낙서 한편 남겼다. 양해 바란다.
p15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 취한 시간에만 보이는 그곳 / 취한 시간에만 나오는 그 말을 /그러나 술이 깬 그는 결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p29 껌 " 지구의 일생 동안 이발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 제 한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 이빨이 먼저 지쳐 / 마지못해 놓아준 껌. "
p45 죽거나 죽이거나 엉덩이에 뿔나거나 " 나는 또 속도 위에 앉는다. / 속도가 너무 많아 / 오히려 느려터지거나 아예 멈추 엄추어버리는 / 한순간도 속도가 되지 않으면 /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독한 냄새를 내뿜으며 그르렁거리는 "
p64 건강이 최고야 " 건강은 / 너무 건강한 건강은 / 건강이 너무 많아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르는 건강은 / 겨울에도 반팔 입고 조깅하고 찬물로 샤워하는 건강은 / 몸에 좋다는 것 찾아 먹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건강은 / 음모처럼 막무가내로 돋아나 아무때나 아무데서나 뜨거워지는 건강은 "
p100 울다 깨다 " 잠에서 깨었는데도 / 나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 꿈은 깨지 않은 채 / 잠만 깨어 울고 있었다. / .....왜 우는지 기억나지 않는데도 /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
p102 옛날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 내가 보고 있다. 너무 많이 변하여 한번도 나였던 적이 없는 내가 , 시간을 겹겹이 처바르고 껴입어 이제는 전혀 다른 인간인 내가, 시간의 열기와 압력으로 튀겨지고 뒤틀리고 구겨진 내가, 이미 늙은 생각이 두개골에 가득 찬 내가, 수백번 고이고 배출한 후에 이제 막 새 정액으로 갈아넣은 고환을 달고 있는 내가 "
p104 이층에서 우는 아이 " 울음소리가 마음껏 내 머리통을 두 드리도록 / 내 귓구멍은 멍청한 입처럼 벌어져 있다./ 악쓰는, 윽박지르는, 한숨이 엿처럼 찍찍 늘어나는 / 중년 여자의 목소리에 숨통이 조여 / 시작된 어린 울음소리는 / 점점 제 슬픈 흥에 취해 단맛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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