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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by 기시군 2022.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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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함'을 즐길생각으로 책을 펴는 것이 좋다. '불쾌함'을 견디고 즐기는 일은 약간이라도 나 스스로가 나아지는데 도움이 된다.

작년에 뒤늦게 알게된 정용준작가의 예전작품들을 천천히 읽어가고 있다. #선릉산책 부터 #가나 #내가말하고있잖아 까지 한권도 실망한적이 없다. 이 책은 2015년에 출간된 초기 단편집으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모았다. 어느 한편 모자람 없이 탄탄한 글솜씨로 독자의 목을 움켜지고 가족이라는  '불편함의 구덩이'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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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더 마음에 들었던 4편을 골랐다.

*우리는 혈육이 아니야
내가 다섯살때 아버지는 부부싸움끝에 엄마를 칼로 살해했다. 이모집에서 성장한 난 간호사가 되었고, 어느날 무기수에서 병치료을 이유로 출소를 하게된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왔다. 나에겐 아버지란 없는 존재였다. 그 존재가 혈육이란 이름으로 날 찾는다.

*개들
고아원에서 참을성이 좋다는 이유로 나를 입양한 '개농장' 주인 '곰'은 어쨌든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어릴때부터 나를 죽도록 때려가며 개를 죽이는 법과 해체하는 방법 등을 가르쳤다. 성인이 된 지금은 식당과 개소주집은 '곰'이 연변에서 끌고온 젊은 여자 '모란'과 같이 운영을 하고 있고, 난 정기적으로 개를 잡아 고기로 다듬어 가게로 찾아간다

*내려
바닷가 허름한 팬션에서 반신불수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29살 나에게, 40대 여자한명이 장기투숙을 하겠다고 찾아왔다. 한눈에 봐도 수상한 여자. 내칠까하다가 받았다. 사고가 나봤자 별거 없다 싶다. 어릴때 부터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고 살아온 삶, 죽어가는 아버지와 함께 머무르는 삶, 오랫동안 괜찮지 않았다. 며칠후 바다를 바라보며 술을 마시던 여자가 자기방에서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한다.

*새들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네
가출한 누나가 집에 누구씨인지도 모르는 애를 달고 들어왔단다. 전화가 온 며칠후 그 누나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경기도 아주 구석 다 무너져가는 오래된 빌라에 치매끼있는 엄마와 간난아기만 있단다. 어쩌겠는가. 일단 집에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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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게 싫어도 혈육지간이라면 끝내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가.(p256)'라는 해설의 질문이 게속 머리를 맴돈다. 문장을 접하는 사람마다 다른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다툼이 있어 싫은마음이 있었어도 혈육의 끈끈한 정 때문에 삶의 활력과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의 답변과, 지긋지긋한 복종의 의무와 폭력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의 답변은 가장 반대입장에 서 있을 것이다.

어떤이는 구차하다고 외면하고 싶어하고 어떤이는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다고 피하고 싶은 '불편함'이 가득한 작품들이다. 그 모든사람들에 가려져 있는 자기최면적인 착시의 천을 걷어내고 그 안을 들여다 보라고 하고싶다. 가난과 폭력과 죽음은 우리 삶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평범한 일상은 사실 언제든 자신의 존재형태를 바꿀 수 있고, 나와 당신이라는 독자들은 인간 또는 사회관계안에서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 그때  '혈육'은 비수가 될 수도, 삶의 동아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책을 통해 미리 겪어보는 불편함은 혹시나 싶은 상황에 좀더 좋은 판단을 하게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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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혈육이라는 이유로 모든걸 용서할 필요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살면서 '혈육들'에게 큰도움을 받았던 기억들이 별로없다. 어릴때 두둘겨 맞긴 엄청 맞았다. 그런 탓인지 책 많은 장면에서 데쟈뷰가 느껴졌다. 그들의 분노와 울분, 화가 이해가 되었다. 세월이 지났고 작고 큰 사고들을 겪었고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다해도 아직까지 그 트라우마에서 다 빠져나오진 못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런 요즘, 이 책은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단아하고 품위있는 문장과 단어들은 악다구니같은 상황을 희석시켜준다. 언듯 구질구질할 수 있는 상황과 마음을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정성껏 표현해 준다. 고마운 책을 만났다.

p105 " 농장에서는 거부하는 개가 없다. 늙고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더라도 다리를 절고 눈이 돌아간 병신이라도 농장은 차별하지 않는다. 모든 고기는 저울 위에서 평등하기 때문이다."

p198 " 겨울의 해변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본다. 눈과 모래가 섞인 바람, 물거품 속에 뒹구는 죽은 생물들, 그것은 세계의 끝과 같아서 기묘한 느낌을 준다. 절망과 무력함이 주는 쓸쓸함이 수면을 구기며 부는 바람처럼 사방에서 불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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