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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속죄

by 기시군 2022.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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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 지은 죄를 물건이나 다른 공로 따위로 비겨 없앰 '이라 정의한다. 기독교적인 정의는 빼고 생각해도, 난 속죄라는 단어에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지은 '죄'를 다른 것으로 덮어서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의 시작이었다.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오래전 #빨간책방 에서 내용을 들었던 기억만 강하게 남아있어 대략적인 줄거리까지는 알고 있었다. 재미있을까 싶었다. 별 기대없이 집어든 책은 의외로 흡입력이 좋았다. 재미있게 소설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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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3부와 짧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죄의 저지름에 대한 이야기가, 2부는 타인의 죄 때문에 고통받은 이의 모습이, 3부는 죄를 깨달은 주인공의 속죄의 내용이 담겨 있다. 1부 앞부분 죄에 대한 이야기만 보자.

1930년대 영국, 관료집안의 막내딸 '브라우니'는 문학적 열망에 가득차 있는 13살 소녀다. 어느날이였다. 자기집 파출부의 아들인 '로비'가 친언니인 '세실리아'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였으나 이것을 폭행으로 이해를 해버리고 만다. 그날 밤 사촌 '롤라'가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까지 보게된 순간,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만다. 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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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악의가 있었다고 볼수도 없다. '브라우니'는 어렸고 감정의 출렁거림에 빠져있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로비'를 좋아하고 있었다. 배신감은 그나마 어설픈 이성을 무너뜨린다. 그렇다고 그녀의 죄를 용인해 줄 수 있을까? 그녀의 그 죄 때문에 '로비'와 '세실리아'는 아주 길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된다. 뒤늦게 자신의 죄를 깨달은 '브라우니'는 속죄의 활동을 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고통받는 둘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충분히 '미안해' 했으니 잊고 살아가라 말해도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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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속죄의 방법이 가장 정답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 눈감아 버리지 않고 똑바로 진실을 응시하며 이야기 할 것, 최선을 다해 자신이 저지지른 죄악을 폭로' 하는 것. 하지만 왜 이렇게 뒷맛이 쓸까. 그걸로 속죄가 완성될 수 있을까 하는 잔념이 지워지진 않았다. 살아오면서 나와 내 주위에 벌어진 죄와 벌, 반성을 떠올려본다. 뭐라 간단히 결론 내리고 싶진 않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었다.

덧,
2부의 이야기는 사실 없어도 플롯에 크게 영향 받지 않을 부분이란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2부의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2차 세계대전 전반 덩케르트로 후퇴하는 영국군의 피폐한 상황과 그 위기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리얼묘사적에 깊게 인상에 남는다. 후반부 속죄의 일부로 소설을 쓰는 브라우니을 통해 작가 들려주는 '문학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도 묵직했다. 언제나 찬사받은 책들은 이유가 있다.

p245 "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고 믿는 것을 꽉 부 여잡았고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은 채 최초의 증언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사가 종결되고 형이 언도되어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서는 그 일을 깨끗이 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과 무자비한 청소년기 특유의 망각 덕분에 무사히 청소년기로 진입할 수 있었다. "

p521 " 지난 59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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