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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랑과 나의 사막

by 기시군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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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이성의 영역이라면 문학은 감정의 영역이다. 소설을 즐긴다는 것은 타인이 그려놓은 마음 속 깊은 감성의 타래를 따라가는 걸음이다. 위로는 그 길에서 느껴지는 공감에서 오며 공감의 폭이 넓을 때 더 많은 독자들이 위로의의 선물을 받게 된다. 작가 천선란은 어린왕자의 모티프을 가져와 SF의 표피을 입히고,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감정에 집중하여 평온한 우화를 만들어 내었다. '애도'에 관한 젊은 작가의 이야기를 만지작 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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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멸망해 가고 있다. 사막가운데 띄엄띄엄 살아남은 사람들 몇이 있을 뿐이다. 엄마 '조'랑 사는 '랑'이라는 소녀는 모래더미에서 파묻혀 있는 로봇을 우연히 발견한다. 힘들고 로봇을 고치고 '고고'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같이 살아간다. 시간은 흘러 '조'도 죽고 '랑'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소설은 '랑'의 시체를 묻고 나서 시작이 된다. '고고'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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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는 작가의 #천개의파랑 의 주인공 로봇과 닮았다. 사람이고 싶어하는 존재. 사람처럼 무언가를 좋아하고 삶의 목적을 궁금해 하는 존재. 그나마 이유 따위는 따질 필요없는 '사랑'이 있었는데 어느날 사라졌다고 한다면, '고고'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의미를 찾아 헤메이며, 작은 목표물이라도 찾아 앞으로 걸어가는 일이 전부이지 않을까? 그것을 우리는 '애도'라고 하지 않나싶다. 사막의 메마른 풍경에서 모래먼지에 관절이 굳어가며 앞으로 걷는 '고고'의 모습에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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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에서 '소슬'이란 단어를 만났다. 아무도 없는 식혀진 차가운 사막의 밤의 적막하고 쓸쓸한 모습에 몸서리를 치며 소슬하다를 중얼거린다. 소슬한 풍경, 예전 #playstation 게임중에 #journey 라는 게임이 있었다. 이 소설의 풍광인 사막에서  큰 이벤트 없이 사막을 걷는 특이한 게임이었다. 게임을 하며 느꼈던 감정이기도 하다. '고고'가 되어 삶의 의미와 내가 느끼는 감정의 정체에 대한 생각의 탑을 쌓아가는 것. 소슬하다. 생각해보면 산다는 건 참 소슬한 일이다.

p13 " 감정에는 효율을 따질 수 없다. 따져서는 안 된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고, 조가 떠난 뒤 랑이 방패처럼 말했다. 그 감정은 언제 소거될지 모른다. 예정도 없고 기약도 할 수 없다. "

p19 " 그림에는 감정이 들어가고 사진에는 의도가 들어가지. 감정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고 의도는 해석하게 만들어.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는 것. 그래서 인간은 정지해 있는 그림을 보고도 파도가 친다고, 바람이 분다고, 여인들이 웃는다고 생각하지. 사진은 현상의 전후를 추측하게 하지만 그림은 그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게 돼."

p44 " 마음은 목적이야. 네 목적에 가장 빨리 닿으려고 애쓰는 게 마음이야. "

p121 " 진정한 슬픔은 평범한 하루 속에 깃들어 있는데 자꾸 특별한 절망을 만들려고 했으니까. "

p128 " 그리움은 감정 중 시효가 가장 길다. "

p133 " 감정은 교류야. 흐르는 거야. 옮겨지는 거고, 오해하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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