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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롤리타

by 기시군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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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느낌으로 이 책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예술을 이용한 것일꺼라 지레짐작했다. 읽고나니 오해가 풀렸다. 작가는 예술을 위해 욕망을 활용한 것 뿐이었다.

"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의 양심이란
  아름다움을 즐긴 대가로 치르는 세금 같은 것. p450 "

러시아에서 건너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문학이라는 예술행위를 하는 그에게 정치, 윤리, 도덕 등은 자신의 예술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틀로써만 의미가 있었다. 그는 문학에는 의미가 존재할 수 없고, 미적 희열을 선사하는 어쩌면 유한한 인간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로 보았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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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버트 험버트'라는 이름의 소아성애자의 수기 형태로 소설은 시작된다. 나보코프처럼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험버트는 어느정도 재산을 가진 부르조아 중년이다. 그는 미국에서 살곳을 찾다가 우연이 만나게된 어린소녀 '로'에 이끌려 그녀의 어머니 '살럿'의 집에 하숙을 시작한다. 사냥감을 발견한 험버트는 티나지 않게 서서히 12세 소녀인 '님펫(나보코프가 정의한 9~12세사이의 성적욕망을 발현시키는 여자아이)을 손에 넣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잘생긴 외모 덕에 주위의 호감을 얻기 쉬었던 그는 '로'의 어머니 '샬럿'과 결혼을 결정한다. 오로지 '로'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였다. 1,2부로 나누어진 이 소설은 1부에선 희극이 완성되고 2부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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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지루하다고?
이 책은 예외다. 문장을 가지고 논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묘사는 유니크하고 심리는 찰지게 그려진다. 말장난 같은 언어유희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책 후반에 번역가가 토로한 고충이 이해가 될 정도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감탄하며 읽을 수 있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위대한 소설가인가?
그런가에는 100%동의는 못하겠지만  이 작품이 위대한 작품 리스트에는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19세기 중반 보수적 미국문화 안에서 이정도의 공격적인 작품을 '맨얼굴'로 던질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은 박수 받을 만 하며, 그 결과물의 성취는 미적으로 탁월할 뿐 아니라 오랜세월이 지나고 독자들에게 즐거움 혹은 비극의 카타르시스 제공하는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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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부는 코메디로 읽힌다. 비하의 의미가 아니다. (윤리적 판단을 일단 배제하고) 성적 욕망의 발현을 이렇게 자기비하적이며 엉뚱하게 풀어내는 방식은 신선하고 효과적이었다. 2부의 비극은 헐리우드 로드무비 형식에, 인간의 또다른 주요한 '욕망'인 복수심, 그리고 '파멸'로 가는 서사가 1부와는 아주 다른톤으로 매력적이다. 완성된 한편의 소설로는 최고 수준의 작품이고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서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 p500 - 작가의 말 "

욕망은 이성에 선행한다. 욕망의 제어를 이성이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낱말'로 만드는 세계인 '문학'에서 나보코프가 정의한 소설론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그가 범주화 감정들 (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 이외에도 소설의 대상이 되어 예술적 성취를 만들어주는 감성들이 많다는 것은 집고 가고 싶다.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자신의 삶 뿐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을 구성하는 동료들에 대한 삶의 통찰을 담은 작품들. (물론 프로파간다를 소설이라 볼 수는 없지만) '의미'와 '재미'를 같이 만들어내는 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덧,
잠깐 떠오른 딴 생각. 나보코프나 보르헤스는 평생 투표한번 안 했을것 같다. 내 예술에 정치따위는 필요없어라고 생각했겠지. 내 주변에서도 많이 본다. 더러운 정치는 외면하고 고상한 예술 쪽으로만 시선을 돌리는 지식인들. 50억 퇴직금 무제 문제를 꼭 예술적으로 풀 필요는 없다. 다만 조금만이라도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최소한 투표장엔 갔으면 좋겠다. 기성정당이 더러워보이면 녹색당이든 군소정당이라도 찍자. 아니면 지지후보 없다고 무효표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고고함은 지금 기득권카르텔에겐 좋은 아군이다. 서글프게도.

p21 " 눈을 감았을 때 눈꺼풀 안쪽의 어둠 속에 즉각 나타나는 영상인데,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마치 자연스러운 빛깔의 작은 유렁처럼, 마치 복제화처럼 철저히 시각적이며 객관적인 형태로 재현된다. "

p53 " 아, 나의 롤리타, 내가 가지고 놀 것은 낱말뿐이구나! "

p76 " 내가 집필중인 교과서에 롱사르의 ' 블그스레한 틈새'나 레미벨로의 '보드라운 이끼로 뒤덮인 언덕, 한복판에 그어진 붉은 금 하나' 같은 구저을 인용한다면 학구적인 출판사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p81 " 아주 조용조용하게, 얼굴을 붉히고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저런 흥미로운 소문을, 하숙인roomer에 대한 소문rumor을 부정하면서, 그러나 실제로는 넌지시 긍정하면서 은밀히 속닥거리는데... "

p205 " 부디 내 모습을 상상해보라. 여러분이 상상해주지 않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스스로 저지른 죄악의 숲속에서 암사슴처럼 부들부들 떠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지어보라. "

p419 " 사실 내가 미성년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어리고 순결하고 요정 같은 금단의 소녀가 지닌 투명한 아름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초라한 현실과 나에게 약속된 위대한 이상 사이의 격차를 이렇게 무한한 완벽성으로 메워가는 상황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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