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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서머싯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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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사서 쟁겨놓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왠지 ‘면도날’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 뭔가 날카롭고 베이고 핏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근거 없는 느낌 때문에 미루고 묵혀두었나 보다. 면도기로 얼마 없는 털을 밀다가 이 책을 떠올랐고 😌 며칠 가지고 다니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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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앞부분만 보자.
화자는 아마도 작가 자신인 듯 싶다. 오랜 세월을 교우하던 상류층 인물들과의 교제, 사건, 사고 들이 520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제목에 해당하는 ‘면도날’은 아마 주요 등장인물 중에 한 명인 ‘래리’를 말하는 듯하다. 남들처럼 살지 않는 삶을 선택한 래리. 마음만 먹으면 아름다운 여성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는 공군비행사 출신의 묘한 매력의 래리는 사교계를 떠나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삶의 의미’를 찾아 구도자의 모습으로 인생을 보내게 된다.
이야기는 래리를 중심으로 그의 첫사랑이나 미녀 ‘이사벨’, 이사벨을 사랑했지만 래리와의 약혼으로 멀찍히 짝사랑을 했던 ‘그레이’, 이사벨의 외삼촌이자 사교계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았던 세련된 속물 부자 ‘엘리엇’, 그들 간 벌어지는 긴 세월의 드라마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래리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선택했던 이사벨은 부자인 증권거래업자 그레이와 결혼을 하게되고 자녀를 낳고 뉴욕에서 화려한 생활을 해 나간다. 엘리엇은 작가의 낮은 지위를 무시하긴 하지만, 간간히 백작, 후작들 고위층이 문학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저자를 초대해 파티를 계속한다. 세월이 쌓이니 작가는 그들 가족과 친분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간간이 들려오는 래리의 소식을 이사벨네 가족에게 전하기도 하는데, 래리의 삶이 갈수록 이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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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관찰력과 묘사의 힘은 서머싯몸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작가의 필력은 지루하지 않게 묘사되는 상황과 섬세한 인물들의 표정과 자세의 변화를 현실감 있게 보여주며 작품 속으로의 몰입에 도움을 준다.
자아실현의 영적의미를 찾는 래리를 앞세우지만,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으로 보인다. 일종의 풍자소설의 기능으로 당시 사교계의 화려한 파티, 그들간의 암투, 욕망과 질투를 포함하여 일부의 비극적인 계략과 파괴적인 인간군상의 모습들까지 다채로운 인물들이 모습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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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보기에 행복한, 또는 부와 명성으로 만들어진 행복은 어느 순간 ‘ 햇살을 손에 쥐어 보려고 애써도 잡자마자 이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p256 ‘ 것처럼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이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들의 운명이다. 서머싯몸은 당연한 이 삶의 허무함과, 조금은 신비롭게 동양철학 등으로 포장된 진지한 청년 래리를 대비시키며 자신의 소설의 ‘급’을 올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화류계를 구경하는 재미, 누구나 좋아하는 삼각관계 등 기본 흥미요소 만으로도 꽤나 웰메이드한 상업소설로 인정받았을 텐데 작가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다. 자신은 하지 못한 삶, 선택하기 어려운 삶을 선택한 인물 ‘래리’의 이야기로 이야기의 폭과 수준을 자기 욕심만큼 끌어올린 것으로 보이며, 이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재미있는 소설, 면도날이었다.
✍ 한줄감상 :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들의 속물성에 대한 다양한 서사.
덧,
서머싯몸이 요즘 한국에 태어났다면 수십억 대 수익을 올리는 K-드라마 작가로 성공했을 것이다. 😁
p19 “나는 엘리엇 탬플턴이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사람을 만날 때 사회적 신분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
p77 “ (이사벨) 외삼촌이 그러는데, 선생님의 날카로운 관력력에 깜짝 놀랄 때가 많대요. 선생님 순을 속이기는 힘들다고 그러던걸요. 하지만 작가로서 선생님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상식과 분별력이라고 했어요. “
p116 “ (래리)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도. 또 내게 불멸의 영혼이 있는지. 아니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지 알고 싶어.”
p200 “ 엘리엇의 사교계 활동과 출세에 힘을 실어 주던 상류층 부인들도 나이를 먹어 늙어 갔다. 영국의 귀족 부인들은 남편이 죽은 후 대저택을 며느리들에게 물려줘야 했기 때문에, 이젠 첼튼엄에 있는 별장이나 리전트 공원에 있는 수수한 집에서 지냈다. “
p236 “ (화자) 나의 결점 가운데 하나는, 못생긴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 것에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
p274 “ (이사벨) 잠자리에서도 훌륭하다구요. 벌써 결혼 10년짼데 처음의 열정이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어요. 전에 선생님이 어떤 희곡에서 이렇게 쓰셨죠? ‘ 그 어떤 남자도 한 여자를 5년 이상 원하지는 않는다.’ 그건 정말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
p307 “ 여자들은 정말 불행한 존재예요. 사랑에 빠지면 매력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더 이상은 그에게 빠져들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죠. “
p345 “ 여자를 설득하기란 너무도 쉽다. 진실만 말하면 되니까. “
p349 (래리는) “ 내 생각엔 철학이나 종교 그리고 머리와 가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인생의 규칙 같은 것을 찾지 않았을까 하는데. “
p398 (엘리엇의 죽음 앞에서) “ 다정했던 옛 친구. 그의 인생이 얼마나 헛되고 어리석고 보잘것없었는지를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다. 수많은 파티에 참석하면서 그 모든 공작, 백작들과 허물없이 지냈지만,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그를 잊었으니까. “
p463 (래리) “ 인내를 갖고 평온하게, 자비롭게, 욕심 없이 그리고 금욕적으로. “
p501 “ 이사벨, 난 부도덕한 사람이야.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면 그 사람의 잘못을 비난하긴 해도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식지는 않거든. 이사벨도 나름대로 나쁜 여잔 아니야. 게다가 누구보다도 우하하고 매력적이잖아…. 이사벨은 딱 한 가지만 더 갖추면 완벽하게 매력적이지…. 바로 따뜻한 마음씨야.”
p515 “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내 의도와는 달리, 이 글이 일종의 성공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등장시킨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원하는 바를 얻지 않았는가? 엘리엇은 사교게에서 명성을, 이사벨은 막대한 재산을 확보해여 활동적이 교양 있는 지역사회에서 확실한 지위를 얻었으며,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업과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나설 수 있는 사무실을 덩었다. 수잔 루비에는 안정을, 소피는 죽음을, 래리는 행복을 얻었다. 물론 ‘자칭’ 지식인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트집을 잡겠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대중은 모두 성공감을 좋아한다. 그러니 나의 결말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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