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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사랑과 결함

by 기시군 2025.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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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결함 #예소연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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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문에 그냥 넘어갈 뻔했다. 그저 젊은 작가 중 한 명, 사랑이야기에 집중한 작품인가 싶었다. 물론 사랑이야기가 맞다. 다만 폭풍우처럼 달아오른 연인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작가의 삶 속에서 만났던, 스쳤던, 잊혀졌던 이들과 나눴던 사랑과 그 사랑마다 새겨져 있던 결함의 이야기를 묶은 이야기였다. 잘 썼다. 미리 고백하자면 난 약간 과도하게 몰입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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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의 단편이 담겼다. 몇편들은 연작으로 묶일 수 도 있다. 

먼저, 아이에서 소녀를 지나 어른의 초입으로 가는 과정의 주인공이 겪는 성장담을 담은 3편의 소설, #아주사소한시절 #우리는계절마다 #그얼굴을마주하고 는 동일한 화자가 그녀가 처한 가족관계,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사랑과 아픔, 그리자 자기와 타자에 대한 이해의 태도등이 한 편의 독립영화처럼 펼쳐진다. 아직 덜 자란 도슴도치가 억지로 힘주어 움켜 세우는 가시들에 그녀 자신과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 그녀의 죄는 아니다. 

표제작 #사랑과결함 은 조건 없는 사랑의 허상과 기괴한 형태로 다가오는 사랑의 부수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애증은 같은 비율로 솟구치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기괴해진다. 사랑에게 결함은 필수조건일까.

연작이라 할 수 있는 #팜 과 #그개와혁명 에서는 85학번 운동권 아빠와 엄마를 둔 고삼녀(고학력 삽십대 여자) 주인공이 아버지와 벌이는 애증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제도와 구조’에 문제를 논하는 아버진 ‘가족이라는 관계’에서는 무심했지만, 주인공은 마음 한구석, 아빠를 낡은 만화에서 나오는 정의로운 주인공으로 여기는 마음도 혼재해 있다. 그런 아빠가 죽어가고 있다. 주인공은 아빠와 아빠의 장례식이라는 제도에 작은’ 혁명’을 일으키자고 일을 ‘도모’한다. 

3대의 걸친 여성사, 손녀와 죽은 할머니의 흔적들을 더듬는 #분재 도 꽤나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예감되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과거를 되돌아 본다. 좋은 추억보다는 후회가 많을 터, 대부분 그것은 가까운 이의 관계를 엉크는 일들이 많다. 이 소설에서처럼.

데뷰작인 #도블 #내가머물던자리 , #우리철봉하자 는 여성 간의 우정과 친밀성, 함께 살기에 대한 소설들이다. 지금 이 땅의 작가 또래의 여성이라면 많이 공감할 스토리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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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담의 마지막은 내 이야기를 남 이야기처럼 해왔던 것이 상처의 근원이었다는 걸 화자는 깨달으며 끝난다. 이제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자꾸 그녀를 보듬어 주고 싶게 만드는 건 작가의 세월에 담겼던 아픔과 그것에 대한 문학적 분출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세밀하게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것을 마음에 담는 듯 보인다. 잘 삭혀진 사람들의 삶은 제대로 된 레시피를 통해 ‘서사’로 만들어진다. 그 서사는 대단한 사건들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개개인 모두의 일상에서 닥칠, 당할, 괴로워하거나 기뻐할 소소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그 책에서의 절정은 ‘그 개와 혁명’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그(그녀) 또는 그들을 각자의 삶의 누적을 기반으로 사랑하게 된다. 실수와 실언은 서로를 다치게 하기도 하고 무심한 한마디에 상대는 억장이 무너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그런 과정을 함께 겪어온 아버지와 딸의 슬픈 희극이다. 울다 웃는다. 소설이 가지는 카타르시스는 이렇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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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뷰작은 설정의 어설품도 있었다. 시간이 작가를 다듬어 간다. 갈수록 멋보단 필요한 그곳에 적절한 단어를  가져다 놓는다.  작가의 말도 인상적이다.  ‘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이, 마음껏 제 이야기를 비틀고 곡해하며 함부로 다뤄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만든 인물이 여러분의 마음을 덧입혀서 조금이나마 그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주세요. p359 “ 자존감 높은 소설가 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주관적인 상찬을 감안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작품군 중 소수자 여성들의 '우애'에 관련된 작품들엔 덜 감정이입되었다. 작가 문제가 아니라 나의 존재론적 한계 때문이다. 아무튼 마음에 드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다음 책을 기다려본다. 

✍ 한줄감상 : 사람들이 가진 ‘모난 마음’을 주어 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은 이 책을 통해 시작된다. 

p33 “ 나는 나를 돌아보는 데 미숙했다. 일은 졸렬하게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좋아했다. 사랑에 있어서는 늘 나를 함부로 대하고 선을 넘어버렸다. “

p57 “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제일 강렬하게 나를 매혹했던 주제는 그것이었다. 죽음과 은총, 완전히 생을 망각하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강한 이끌림. “

p69 “ 엄마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해주려고 들지 않으면서도 표정만은 숨기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들에 질렸다는 그 표정. 나는 언제나 그런 어마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

p110 “ 나는 엄마의 조금 부른 배를 보며 이번만큼은 이들이 절대로 내 삶의 결정권자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

p113 “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나는 늘 그렇듯 무망했다. “

p149 “ 잠을 오래 자다보면 고즈넉하게 늙는 기분이 들었다. “

p179 “ 중소기업의 적은 월급에 비해 나가는 돈이 너무 많고 삶이 아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내 집은 없는데 남의 집이 너무 비싸서, 손 안 대고 돈 버는 사람들이 있어서, 애인이 미워서,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이 헐었다. “

p227 “ 사회는 조리 있게 굴러가야 하지만, 가족이라는 제도안의 조리는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

p248 “ 공여사, 자중하시오. 우리의 적은 제도잖아. “

p302 “ 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 삶을 갈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잔인한 일이었다. 혹시 내가 삶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하는 일들이, 사실은 정말 내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 “

p331 “ 그러니까 남의 불행을 소비하고는 건 상대방을 멸시하는 것만큼이나 내 마음을 스스로 깍아 내리는 일이었다. “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bookstagram #독서 #추천도서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 #한국소설 #사랑과결함_기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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