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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망한사랑 #김지연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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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에서 읽은 #반려빚 때문에 이 책을 골랐다. ‘반려’에 ‘빚’을 담는 참신함과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인상에 남았다. 받아 든 책을 보니 벌써 두 번째 소설집이다. 조금 더 기대가 되었다. 경험 상 좋은 작가들은 시간이 그들을 더 잘 익게 만들어 준다. 수확물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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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대부분의 단편 앞에 주인공의 이름이 먼저 등장한다. 바로 시작이란 느낌. 직진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자는 초대 같단 느낌을 준다. 9편의 작품 중 좋았던 몇 편만 살펴본다.
#포기
엑스남친 민재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사라졌다. 내게도 돈을 빌리고 내 사촌 ‘호두’에게는 2천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빌렸다. 몇 년간 모은 ‘호두’의 독립자금이었다. 웃기는 건 가끔 민재는 내게 연락을 해 온다는 거다. 무슨 생각인 걸까?
#긴끝
오랜 동거생활을 하는 문애는 찬희에 큰 불만이 없다. 익숙함의 편안함이 뻔함의 안도감이 일상을 감돈다. 끝의 시작은 코로나 때문이었다. 찬희는 일을 잃고 집에만 머문다. 자기 동생은 사고를 친다. 돈은 점점 부족해져만 간다. 사람도 ‘제도’도 그들의 끝을 막지 못한다.
#좋아하는마음없이
무난한 삶을 살고 싶어, 무난한 남자와 결혼을 했고 남들처럼 아이를 낳았다. 아이 돌 무렵,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아이에 대한 애착도 별로 없는 상태, 무난한 ‘위자료’를 받고 아이를 넘기고 이혼에 동의한다. 십 년이 지난 어느날 아이의 새엄마로부터 연락이 온다. 남편은 사고로 죽었고 아이는 친엄마와 살고 싶다한단다. 난감하다. 내가 생각하는 ‘평균적인 삶’엔 없는 시나리오다.
#유자차를마시고나는쓰네
수능을 끝내고 삼촌과 버려진 유자밭에서 유자를 줍는 난, 삼촌이 좋다. 죽어버렸지만 삼촌이 데려왔던 연상의 숙모도 좋았고, 숙모의 아들은 내가 몰래 짝사랑했던 오빠라 상황이 좀 비극적이긴 했어도 역시 좋았다. 사고가 그들을 앗아가 버렸다. 삼촌은 마음한구석이 비었다. 근래 동네 작고 이쁜 카페가 생겼다. 여주인은 삼촌처럼 짝을 잃은 사람이었다. 왠지 삼촌과 여주인과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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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부분집합이 연애라면 생활의 전체집합은 돈문제인 걸까. 작가는 시스템이나 구조에 시비걸 생각은 별로 없다. 그저 이미 시스템에 의해 녹아든 이들의 삶을 조금은 심드렁하게 바라보는 자세로 세상의 모양을 비춰낸다.
남들은 다 들어가 있는 ‘세계(서울, 내 집, 정규직)’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전력질주하는 평균이하의 삶들을 비춰낸다. 공격성을 배제하고 힘을 빼고, 지금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그들이 가지는 소망과 실패, 좌절, 갈등을 찬찬히 풍경화 보듯 둘러본다. 아픈 이야기를 조금 덜 아프게 괴로운 고통을 조금을 덜 괴롭게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작가의 의도적인 ‘심드렁’과 반걸음 뒤쪽에서 바라보는 듯한 ‘조망법’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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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에서 낯선 질감을 만들어 내는 작가가 있다. 김지연작가도 그렇다. 퀴어의 소수자성은 그녀의 작품들에선 날을 세우진 않는다. 여성이라는 차별도, 과도하게 상향평준화 되어버린 폭력적인 사회 시선에서 뒷배 없는 청춘의 사랑과 고통의 불협화음도 평온하게 흘러간다. 서사 안에서의 사건들은 개별적으론 평범하다. 하지만 그 연결과 그것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는 사건들을 다른 부피감, 다른 무게감으로 느끼게 만들어 준다.
✍ 한줄감상 : 단편의 제목을 통해 작가의 지향을 느낀다. #가능한밝은어둠 , 어두운 세상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밝기를 발하고자 하는 것. 누군가에게 그 밝음을 전해주고자 하는 것. 그녀의 소망을 지지한다.
덧,
어쩌면 이런 특징들 때문에 어떤 독자들에겐 소설들이 밋밋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에서의 에피소드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녹여 내린다. 라이브포토의 존재를 몰랐던 삼촌이 우연히 조카에게 그 사실을 듣고 자신의 핸드폰에 있는 ‘그녀’의 사진들이 1~2초라도 움직이는 모습을 수백 번 돌려보는 장면은 이 소설집의 백미라 느꼈다. 인간 보통이 가지는 간절함과 소소한 감격이 삼촌의 눈물로 같이 흘러내린다. 밋밋함도 같이 씻겨 내려간다.
p43 “ 상욱은 선미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늘 겸양을 떨며 하기 싫은 것을 하고, 막상 하고 싶은 건 양보하는 모습을 곁에서 오래 지켜보며 상욱이 다 마음이 상했다. 터울이 많이나 선미는 거의 엄마처럼 상욱을 돌보며 많은 것을 포기했다. “
p50 “ 어쩌면 끝없이 질문해 주며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까지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는 사람은 그동안 거의 없었으니까. “
p79 “ 빚이야말로 정현이 잘 돌보고 보살펴 임종에 이르는 순간까지 지켜봐야 할 그 무엇이었다. 빚 역시 앞으로 수년간은 정현의 옆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정현이 죽었나 살았나 그 누구보다도 두 눈 부릅뜨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빚이야말로 정현의 반려였다. “
p125 “ 좋아하는 것과 익숙한 것을 다들 어떻게 구분하는 것일까. 문애는 팔에 힘을 잔뜩 줘서 자신의 허리를 점점 더 조여 오는 찬희를 보며 생각했다. “
p184 “ 종희는 팔로 다리로 자신의 몸에 엉겨드는 현태 때문에 점점 숨이 막혔다. 숨 막힌다고 놓아달고 웃으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 압박감에 안정을 느낀다는 것도, 그 안정감이 자신을 흥분시킨다는 것도 잘 알았다. “
p208 “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니까 바람을 피울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엠비티아이 유형을 따져보자면 아마 K는 J타입일 것이다. “
p230 “ 나는 혜미가 자신의 비밀을 내게만 털어놓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폭로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
p246 “ 소금기가 가득한 바람은 양철 지붕도 자동차도 빨리 삭게 만들어. 우리 할머니가 늙은 것도 다 소금 때문이야. “
p248 “ 어느 날 바다에 오줌을 누는 종우의 자지를 보았을 때는 딱 잘라버리기 좋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탯줄을 자를 때 같이 잘라버렸어야 했던 게 아닐까. 그러나 아무래도 안 될 일이었다. 지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종우에게 사과했다. “
p260 “ 계절은 흘러가지 않고 뚝뚝 끊어진 채 지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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