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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설명충 박멸기

by 기시군 2025.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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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충박멸기 #이진하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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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 무겁다 느끼며 술 한잔을 할 때, 이진하작가는 소설을 쓴 듯하다. 고통 바깥으로 나갈 결심이 보였다. 유쾌한 상상 속으로, 그렇다고 자신의 발 끝은 지금, 여기, 이 땅에서 떼지 않았다. 경쾌한 문장에도 힘이 느껴지는 이유다. 엉뚱한 상상력이 현실과 만나면 이런 작품집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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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에 27편의 짧은 소설이 담겼다. 몇 편을 골라서 어떤 이야기들인지 분위기만 전한다. 

- [ ] 너무 과도하게 설명을 해대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주인공이 혹시 몰라 병원에 가보니 의사 ‘설명’이 목안에 ‘설명충’이라는 벌레가 기생하고 있단다. 

- [ ] 취준생인 나에게 어느날 악마가 찾아와 영혼을 팔라 한다. 싫다고 하니, 생명기간이라도 팔라고 한다. 50년 팔면, 결혼과 출산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준다고 한다. 

- [ ] 죽어서 가는 천국도 커트라인이 있다. 난 아슬아슬하게 턱걸이 대학입학같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제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대천사가 모른다는 것에 있다. 

- [ ] 작은 학원의 강사로 취직한 내게 원장은 가혹하게 여러 수업을 맡긴다. 어느날 내 몸은 반쪽으로 갈라져 두 개의 수업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시급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 [ ] 지구에 외계인 비밀조직이 있다. 조금 평화로운 놈들인가보다. 직접 학살보다는 인구를 줄여 지구를 비워버리기로 했다. 그에 따라 지역별로 외계인들은 지구인으로 변장하여 인간들의 출생률 하락에 최선을 다한다. 

- [ ] 우리 와이프는 내 코의 피지를 뽑으며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한다. 처음엔 장난 삼아 코를 내주었다. 그런데 점점 아내는 더 피지에 욕망하게 된다. 피르가즘이란다. 

이 밖에 말하는 개가 집에 들어오는 바람에 위기에 처한 남자 이야기, 어느 날 남자들 머리에 ‘오라’가 생기고 그 오라는 ‘남편의 기’라는 썰이 퍼지면서 생기는 사건들 등 작가의 신박한 상상력은 대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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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설명충박멸기’을 읽으며 움찔하기도 했다. 😂   아무게나는 아니지만 조금 친한 사람들에게는 나 혼자 재미있겠다 싶은 이야기들을 ‘설명’하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어 먹는’ 김’은 김 씨가 만들어서 김이 되었다거나, 보리차는 토종차가 아니라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커피 흉내를 내어 만든 이야기 등등. 누군가는 재미있어하고 누군가는 ‘안물안궁’이다. 내 입이 들썩들썩한 게 내 입안에 사는 ‘설명충’ 때문이었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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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스러운 작품만 있진 않다. 온라인게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혐오와 집단주의에 물든 모습들을 다룬 #아키라의왕국 도 꽤 인상적이었고, 타자와의 신뢰 그리고 우정, 믿음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 #니카니카 역시 잘 만들어진 단편이다. 

처음엔 위트넘치는 초단편시리즈의 거장(?) #김동식 작가를 떠올렸으나, 읽어갈수록 결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김작가는 상상의 범위가 넓어지며 작품활동을 펼친다면 이진하작가는 자기 일상에 밀착한 사건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이 번 책이 첫 소설집이라고 한다. 다음 작품들은 어떨까 궁금해지는 작가를 만났다. 

✍ 한줄감상 : 현실의 모순을 집어가면서도 유쾌함을 주는 작고 많은 이야기를 담은 책 🥰

덧,
욕잘하는 루돌프와 조우하는 #크리스마스특근 편에서 나도 등장인물처럼 루돌프가 사슴이 아닌 순록이란 걸 처음 알았다. 그런데 왜 노래는 ‘ 루돌프 사슴코는 ….. ‘이라고 시작되는 것인가. 😎

p11 “ 그런 건 원래 돈 받고도 하기 힘든 일이야. 알아? 네 알량한 통찰을 누군가가 성의 있게 들어 주는 것이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 좀 깨달으란 말이야 “ 

p36 “ 50년을 제공하시면 결혼과 자녀, 서울의 집 한채를 보장해 드립니다…. 대기업 입사확정은 10년인데, 굉장히 저렴하지요. “

p59 “ 조금 더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 개선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전에 기종명 시, 자발적으로 행복 지수를 높여 보자고요. “ 

p84 “ 말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행동입니다. 저는 회사와 결혼한다는 생각으로 미리 정관수술을 했습니다. “ 

p172 “ 상관있어! 사실 나, 피지를 뽑으면서 느낀단 말이야. “

p206 “ 겜하는 년들 중엔 정상인 년 없다는 욕이나 듣는 게 고작이었다. “ 

p232 “ 제발 저 개를 없애 줘. 저 개나 내 자리를 위협하고 있어. 저 개새끼가. “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bookstagram #독서 #추천도서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 #엽편소설 #초단편 #설명충박멸기_기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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