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Life

봄밤의 모든 것

by 기시군 2025. 3. 11.

✔️
#봄밤의모든것 #백수린 #문학과지성사

🌌
백수린작가의 신간 소식에 예약구매를 걸어놨다. 자그마한 책의 제목이 봄밤의 모든 것이다. 이제 겨울을 이겨내고 따쓰함을 품은 봄에 한번 차분해지는 시간대인 밤이라니, 단정한 백작가의 소설집과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모든 것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다. 

🌌
역시 몇 편의 내용 개요만 보자. 

*아주 환한 날들
안정되고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는 독신의 노인, 딸네의 부탁으로 앵무새를 한두달 떠맡게 되었다. 귀찮기만 했던 앵무새에 조금씩 정이 들어가는데, 앵무새는 안 놀아주면 외로워서 죽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짜? 

*빛이 다가올 때
사랑하는 노모 부양으로 평생 연애한번 해보지 못한 사촌언니가 내가 사는 뉴욕으로 일년 간 교환교수로 왔다. 쉬는 시간마다 놀려 다니던 인주언니와 난, 단골 카페의 남자 알바와 친해졌다. 언니는 그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문제는 40대 여자교수와 20대 대학생이라는 상황이라는 것. 그래도 고백이라도 해야 하나?

*호우
능력 있고 성실하며 계획적인 남편(T스러운😅)과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소희’는 신축아파트에 입주하게 된다. 또래 아이엄마들과 교우도 원만하고 문제가 없다. 다만, 단지 바로 옆 아직 개발이 시작되지 않은 허름한 주택가에 한 집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사람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많은 화분을 키우고 계셨는데, 어느 날부터 보이질 않는다. 

*눈이 내리네
‘소희’ 친구 다혜의 이야기다. 부모님의 강권으로 대학생활의 하숙집을 이모할머니네에서 시작하게 된 이야기. 그 집을 중심으로 친구들을 사귀고, 공부도 하고, 연얘도 시작했다. 졸업을 하며 이모할머니로부터 떠났지만, 세월이 흘러 조만간 어떤 수술을 한다는 소식에 인사차 찾아간 자리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의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
타인이 세상을 느끼는 방식은 참조만 가능할 뿐, 동일하게 카피할 수 없다. 차이가 인간다움을 만들고, 자신만의 그림자를 새길 수 있다.  백작가 작품에서 풍겨지는 ‘정서’는 누가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책 말미의 평론가의 글에선 ‘허무’ 속에 찾는 ‘희망’을 말하지만 난 그대로 동의하고 싶진 않다. 

차분함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구멍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덧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멍은 늘어가며 그 안은 어둡고, 알 수 없음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하다. 다시 그녀는 차분함으로 그 불안을 덮는다.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그녀를 구원해 줄 순 없어도, 구멍 속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불안은 막아줄 수 있다. 

🌌
예전 작품들이 ‘내가 보는 그들’에 방점이 가 있었다면, 이번 작품집은 그들이 되어보는 것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고 느낀다. 사람들의 부실함이 서로에게 상처 입힌다는 것을 안다. ‘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랑을 주는 법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 사람뿐 p 140’인 것처럼, 그녀는 그녀와 그녀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계속 오래 생각할 것이며, 천천히 가장 적확한 단어들을 끌어내어 아물어야 할 상처에 치유의 마음을 덧 바를 것이다. 

✍ 한줄감상 :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의 의미를 과장도, 숨김도 없이 차분하게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인 작품집.

덧,
소설에선 ‘교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결여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을 ‘이해’하는 것이다는 문장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오래전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부친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는 쓸데없이 남이 써놓은 거짓말을 읽는데 시간을 쓰고 있냐.’라는 핀잔. 평생을 거짓말 읽기에 많은 시간을 썼지만 후회는 없다. 이해의 도사가 된 건가 잠시 생각했다가 나의 속좁음이 떠올라 이 말은 취소하기로 한다. 🥲

p35 “ 무언가가 쓰고 싶었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 강사는 수업 시간에 그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지, 너무 무서워. “ 

p66 “ 옛 애인들과 결국 헤어지고 만 건 누구의 일방적인 탓이라기보단 그들과 내가 서로 욕망하는 게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 

p80 “ 아직 스물여섯 살이었던 그녀에게 이십 대의 가난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마흔 살에 가가운 남자의 가난이란 초라한 것이었다. “ 

p86 “ 파리의 초여름 냄새와 밤 그리고 작별을 앞둔 자들의 희미한 슬픔이 가능하게 한 입맞춤이었다. “ 

p115 “ 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고, 그 사실은 주 머니 속의 바늘처럼 이따금씩 그를 찔렀다. “ 

p151 “ 소희는 자신이 겪는 고독과 괴로움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p188 “ 선배들을 따라 시위에 참여하는 동기들을 볼 때면 평온한 자신의 삶이 부끄러웠으나 다혜에게 그걸 깨뜨릴만한 위험을 무릅쓸 필요와 용기는 없었다. “. 

p215 “ 하지만 어느 날, 스스로를 다그치는 거시 직업과 무관하게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지니고 있는 삶의 태도라는 깨달음이 느닷없이 나를 찾아왔다. “ 

p240 “ 죽음이 코앞까지 왔다 갔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서로의 몸을 탐하고 싶기만 했던 긴급한 열망, 자기에 대한 몰두, 두려움을 모르던 충동, 그 당시 우리가 지녔던 삶을 향한 탄성은 얼마나 경이로웠나. “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bookstagram #독서 #추천도서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 #한국소설 #봄밤의모든것_기시리뷰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동사의 멸종  (0) 2025.03.17
세계에 대한 믿음  (0) 2025.03.14
타임 셸터  (0) 2025.03.09
스위트 솔티  (0) 2025.03.06
넥서스  (0) 2025.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