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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어떤 동사의 멸종

by 기시군 2025.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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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동사의멸종 #한승태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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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데뷰작 #인간의조건 (#퀴닝 으로 개정됨)을 많이 좋아한다. 땀냄새 가득한 살아있는 인간 노동의 날 것이 생명체를 포함한 ‘일’과 만났을 때 내뿜는 포스가 만만찮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작년에 나온 세 번째 책에서도 그는 ‘노동’을 하고 있었고, 그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노동’들은 AI시대에 맞춰 선별되었다. 예측컨데 90% 이상의 확률로 곧 사라질 직업들, 평범하고 익숙한 일들이다. 몇 개월간 그는 돈을 위한 ‘노동’을 하면서 그 디테일들을 꼼꼼히 기록해 내었다. 그것도 반짝이는 유머감각을 유지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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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5개의 직업을 경험한다. 

1부는 콜센터 직원이다. 나의 일과가 초단위로 관리자에게 모니터링 되며, 화장실을 가려 일어설 때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의 감정의 쓰레기들을 쓰레받기가 된 모양새로 받아내는 현장의 이야기다. 쏟아지는 욕설에 저항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총알받이의 정서적 육체적 소모는 그의 세밀한 관찰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독자에게 깊게 와닿게 된다. 

2부는 택배상하차, 일명 까대기. 콜센터 상담사가 정서의 파괴를 임금으로 바꾼다면, 이 업무는 육체 자체의 무너짐을 돈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다. 우리 윗세대에는 ‘막장’이 있었다면, 지금의 ‘막장’은 이곳이다. 인당 평균 하루 25톤의 무게을 감당하며, 반복동장수는 1500번에 달한다. 정말 작가 말대로 남은 수명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이다. 

3부는 뷔페 요리사, 음식의 대량 생산자. 생각보다 노동의 강도도 높다. 콜센터는 영혼을 포기하고, 까대기는 몸만 버리면 되지만, 요리사는 생각을 하고 눈치를 봐야하며 숙달까지 되어야 한다. 피곤은 권력관계에서 밑에 있는 사람에게 공격성이 집중된다. 요리라곤 라면밖에 끓이지 못하는 저자가 경험한 요리사의 세계가 흥미롭다. 

4부는 대형 건물의 청소부. 월급쟁이들에겐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받는, 희미한 존재다. 하지만 그들의 손으로 유리의 얼룩은 사라지고, 폭설에도 우리 건물 앞은 깨끗해진다. 월 150만 원의 급여로 부대자루 4개 분량의 새똥을 긁어모으는 일도 처리해야 하는 이곳, 대부분의 직원이 60대 이상의 이곳에서 ‘여자친구는 있어요’ 등의 첫 질문은 ‘양친은 살아계신가?’로 바뀐다. 젊음은 경계선 없는 단계를 거쳐 서서히 노화해 간다. 우리처럼 그들도.

마무리는, 작가다.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으며, 작가 자신의 직업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자학개그는 언제나 사람을 웃음짓게 만든다. 순전히 운으로 할 일 없는 군대보직을 얻어, 책을 보며 군생활을 마치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웃픈 현실들을 거치며 책까지 낸 작가의 현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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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에세이’라 불리는 그의 책들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는  무겁기만 하다. 천재적인 상상력과 기지로 베셀을 만드는 작가도 나름의 고충과 무거움을 가지겠지만,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몸을 통해 우러나온 글들로 만들어진 이 책은 지금보다는 더 많은 평가과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논픽션은 ‘ 망각에 저항하는 힘이 있었다.p379 ‘라고 한다. 힘이 느껴지는 글. 삶이 새겨지는 글. 작가 한승태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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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과 고통의 업무 속에서 작가을 지탱시켜주었던 것들은 ‘관계’였다. 전우애를 필요로 하지 않은 직종들이지만,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도움을 주는 사람들, 작은 일도 성취해 내었을 때 ‘가치’를 알아주는 눈빛을 보유한 사람들. 평범한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사이 숨어있는 이런 사람들의 관계에서 사람은 다시 힘을 얻는다. 사람이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 몸 안의 엔진은 가열되며 다시 노동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를 통해 새삼 깨달은 부분이다. 

✍ 한줄감상 : 이 책을 읽으면 관심 없던 부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게 된다. 콜센터 전화를 착하게 받게 되며, 택배에 대한 불만이 줄며, 음식점에서 깔끔하고 맛난 음식을 받으면 요리사가 고마워지며, 건물에서 마주치는 청소여사님께 인사를 드리게 된다. ☺️ 좋은 생활 교양서다. 

덧,
작가는 문청시절, 최초의 영감을 온전히 작품으로 옮길수 없다는 불안에 시달렸다고 한다. 내가 왜 글 쓰는 직업을 포기했는지 복기해 봤다. 나 같은 경우는 작품으로 옮길 스킬도 부족했지만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찾지 못했다. 어릴 때, 많은 수의 사촌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해주던 시절이 아니지 않나. 나 혼자만 스펙터클했지,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평범하기 이를 때 없는 삶 속에서 무엇을 ‘세상에 전하고 싶은가’가 언제나 고민이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

p30 “ 콜센터 교육장은 일종의 빵 굽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저지르는 실수마저 똑같은 상담사들을 붕어빵처럼 찍어낼 수 있었다. “

p59 “ (콜센터) 여기서는 외사의 숨결이 상담사의 피부에 항상 닿아 있었다. 그 결과는 끊임없는 자기 감시다. “ 

p81 “ 상담사의 일과는 여덟 시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시에게 달린 악플들을 소리 내서 읽는ㄴ 거랑 같다 “

p109 “ 생존에 있어 진실은 노동에 있어서도 진실이다. “

p133 “ 까대기할 때는 몸에서 물이 샌다. 줄줄 샌다. 누수. “

p138 “ 첫 근무를 마친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포경 수술과 치질 수술을 동시에 받은 듯한 걸음걸이로밖에 움직일 수가 없다. “

p175 “ 일당을 받는 육체노동은 인생을 고체화시킨다. “

p214 “ 요리사는 작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질투심이 강한 직군이다. “ 

p277 “ 놀랍게도 억대 연봉을 자랑하는 이 금융 엘리트들의 삶은 얼마 전 중성화 수술을 마친 우리 집 고양이의 고환과 비슷한 상태였다. 즉, 텅 비어 있었다. “

p381 “ 논픽션은 공동체의 투병기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육체의 상처와 고통뿐 아니라 세대와 시대가 앓고 있는 병을 고백하는 글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 

p385 “ 그는 한국어에서 가장 공격적인 단어가 바로 ‘상관없어’라고 믿었다. 칼이나 총은 사람을 죽이지만 ‘나랑 상관없어’는 관계를 죽이고 환경을 죽이고 세상을 죽인다고 믿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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