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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치치새가 사는 숲

by 기시군 202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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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새가사는숲 #장진영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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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생겼다’와 ‘예쁘다’의 차이를 아시는지. 이 책을 통해 부록처럼 알게된 사실이다. 예쁘게 생겼다는 사실판단을, 예쁘다는 가치판단이란다. 살면서 예쁘게 생겼다보다 예쁘다는 말을 많이 쓴것으로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나는 가치판단이 사실판단에 우선하는 것 같다. 😅

지난번에 읽은 #취미는사생활 의 영향으로 별 고민없이 민음사북클럽 선택도서에 이 책을 담았다. 탱탱하다 못해 피부를 뚫고 나올 것 같은 가시같은 문장들이 매혹적인 작가. 이번엔 무슨 난리판을 보여줄지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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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 1학년 난, 언니처럼 이쁘지도 않고, 바쁜 부모님은 내게 관심도 없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부가 너무 가려워져 난 다음 생엔 ‘게’로 태어나고 싶다. 게는 피부가 뼈니까. 친구 달미는 내가 ‘사용하기 편리했기’에 데리고 다녀줬다. 일단 남친은 하나 만들어 뒀다. 못생긴 내게도 고객을 한 ‘진혁’하고는 일단 키스정도만 열심히 즐겼다. 언젠가 보여줘야 할 이쁜 팬티 값을 벌기위해 전단지 알바를 했다. 우리집 부모는 나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

우연이었다. 나의 사랑은. 상고를 졸업하고 경리로 일하는 언니의 직장 S전자에서 언니 심부름을 갔다가 체어맨을 타고 나다는 어른 차장님을 만났다. 일 때문에 부부는 따로 살고, 첫날 차장님에 집에 갔을 때는 차장님 아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고기를 먹었다. 두번째 차장님 집에 갔을 땐, 난 차장님과 거친 어른의 사랑을 나눴다. 그 이후 차장님은 연락을 끊었다. 연락이 온것은 경찰에서였다. 그 때 우리집은 보증을 잘못서는 바람에 집을 날릴 판의 아수라장이었다. 문제는 커졌고 결국 이쁘고 똑똑한 언니가 나서서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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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황정음작가가 떠오른다. 위악스러운 대사의 날카로움이, 불편하게만 끌고가는 상황의 안타까움이 부조리한 세상에 길들여져 가는 청춘의 표피를 무장시킨다. 당연히 시대가 다르니 그들의 표정은 다르다. 비장함에서 빈정거림으로 울분에서 체념으로. 치치새의 주인공은 어색한 색조화장을 하고 거울을 바라보는 여중생의 낮은 목소리의 넋두리처럼 세상에 Fuck Up를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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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판단으로 돌아와 보자. 한국의 하층계급 가족의 해체와 그를 통한 삶의 고단함의 재생산이 담긴다. 취약한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착취가 담긴다. 사회고발소설로 손색이 없는 플롯이다. 가치판단을 해보자. 난 작가의 이토록 삐딱한 대사와 상황묘사에 빠진다. 이쁘다 아릅답다가 아니다. 멋지다.

강화길 소설가가 추천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 각자의 오늘이 너무 끔찍했기에, 다급했기에, 자신의 하루가 가장 외롭다’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와 다른삶을 외면한다. 소설은 삶의 비루함을 비춰주는 좋은 도구다. 나의 외면을 직시할 기회를 준다. 그런 의미에서 장진영작가는 좋은 작가다.

✍ 한줄감상 : 나에겐 취향저격, 독설과 가학과 피학, 비도덕적인 야함을 마음껏 버무려낸‘굉장한(소설 속에서 사용된 의미를 차용해서)’소설.

p15 “ 나는 쉬는 시간마다 사물함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 있길 좋아했다. 남몰래 싹띄운 더럽고 추악하고 가슴 뛰고 은밀한 취미였다. 교복 치마 안으로 물방울무늬 팬티가 보일 것이다. “

p20 “ 막둥이 삼촌은 뚱뚱했고 탈모가 있었다. 뚱뚱해서 막뚱이 삼촌인 줄 알았다. “

p21 “ 내가 여자라는 데 영 확신이 없었다. 진화를 거치지 않은 하등 생물 같았다. 팬티라도 보여 줘야 했다. “

p45 “ 세상은 인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요. 그때 내가 피부과 의사의 말을 기억할 리는 없었다. 열네 살이었으니까. 나는 20년 후에 보라매병원 진료실에서 그 말을 듣게 된다. 그렇지만 이미 그 말을 들은 듯했다. 듣고 기억하는 듯했다. 미래를 기억하는 게 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원인이 결과를 빚는 게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반추하게 하므로….. “

p50 “ 나는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길에 껌을 안 뱉는 것처럼. 도덕은 내 비루한 자긍심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못생긴 여자아이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

p53 “ 무단 횡단을 하지 않고 길에 껌을 뱉지 않고 전단지를 버리지 않는 도덕적인 사람도 특수아를 괴롭힐 수 있다. 마음의 가장 작고 가장 연한 부분이 영구히 괴사해 버린 기분이었다. “

p147 “ 아빠는 내가 온조중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

p163 “ 존경하는 재판장님, 만약 사랑이 죄라면 저는 사형수입니다…. “

#독후감 #북스타그램 #bookstagram #독서 #추천도서  #book  #서평 #치치새가사는숲_기시리뷰 #오늘의젊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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