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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로베르토볼라뇨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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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딱 두문장으로 구성된 장편소설 #칠레의밤 에서 볼라뇨를 처음 만났다. 암울했던 남미 현실에 대한 마르케스와는 다른 문학적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재작년 50세의 볼라뇨가 치료를 미뤄가며, 죽어가며 써낸 유작 #2666 을 다시 만났다. 그 해의 기시의 책으로 뽑았던 벽돌책. 메마른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죽음'과 '삶'의 의미, 또는 '악'과 '인간성'이라는 추상들의 매력적 구상을 목도할 수 있고 표현했었다.
이번엔 초기작 ‘전화’다 처음 만난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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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편이 실려있다. 등장인물이 참 다양하기도 하다. 물론 본인의 직업이 작가이니 작가인 주인공이 많은 편이고, 그 외에도 탐정, 군인, 마피아, 육상선수, 포르노배우 등 그 외 스페인, 멕시코, 칠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들. 이들을 통해 개인의 서사들을 통해 작가는 시대의 경험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인물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주로 떠돌아다니며, 사라진다. 70년대 남미의 군사독재 하에서 사라지는 사람들, 도망치는 사람들의 반영일 것이다. 불안과 혼란은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기본 정조다. 그런데 인상적인 부분. 상당량의 단편이 미스터리, 추리물과 같은 서사구조를 취한다. 두 여자와 사는 한 남자의 살인이야기를 담은 ‘윌리엄 번즈’의 낯선 전개, 대화로만 이어지는 ‘형사들’의 서늘한 유머감각. 표제작 ‘전화’는 어떤가? 멀리 떨어져 사는 전여친의 살인사건과 용의자로 찍힌 주인공의 태도. 소설은 설명하지 않는다. 굵고 짧은 서사를 툭 던진다. 설명할 것을 설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효과를 본다면 이 쪽 분야의 대가는 볼라뇨 일 듯하다.
볼라뇨의 단편집은 작가 자신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 사회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며 그것을 그려내는 문학가로서의 자신의 불안과 의문을 같이 작품에 녹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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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엔리케 마르틴’의 마지막 문장은 ‘ 이제는 내가 도망칠 차례 ‘라는 문장이었다. 다양한 작품에 이렇게 도망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는 끝까지 도망가지 않는다. 쓴다. 쓰는 것은 그에게 도망도 회피도 아니다.
서사들을 뼈다귀처럼 휙 던지고 나열하다가, 불쑥불쑥 끼어드는 매력적인 문장들로 작품을 만들어 낸다. 기억, 비유, 사유적 문장들은 볼라뇨 만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어쩌면 그의 소설을 (아픈 남미의, 또는 무명자가로서의 수고로움에 대한 ) 기억의 파편들의 기하학적 조합이자, 세상에 대한 타자로 만든 화염병일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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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계속한 생각은 ‘문학’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좋은 문학은 무엇이며 문학에 대한 가치판단은 가능한가. 문학에게 객관적이란 단어는 유용한가 등. 챗GPT와도 한참을 토론을 했다. (몇 번의 사과를 받고 😂) 합의된 결론은 문학에 대한 객관적 판단 지표는 없다는 것이다. 문학계의 관련 권력자들의 합의(?)에 따라 평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란 이렇다. 문학은 삶 자체를 직접 타격할 힘은 없다. 삶의 그림자를 비추는 행위가 문학이지 않을까. 바닥에 새겨지는 그림자의 형태는 문학예술을 하는 예술가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의 미추와 감정의 울렁임이 ‘문학성’을 결정한다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라뇨의 단편들은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시대라는 넓은 바다 위에 올려놓고, 서사구조 자체를 창조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좋은 문학’의 표상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음은 #야만스런탐정 을 읽을 차례다. 내년정도에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끼자.
✍ 한줄감상 : 소설은 원래 이렇다는 상식의 경계 안에 서 있는 모든 독서가들에게 추천해 줄 만한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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