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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돋아나다

by 기시군 2026.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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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아나다 #다카세준코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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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대머리가 되어 버린다. 이 시놉 하나만 보고도 흥미로웠다. 도서 제안에 응한 이유다. (제안해주신 문학동네 담당자님 @mile_buu 께 감사드린다. ☺️) 이렇게 흥미로운 소재는 드물다. SF적인 요소를 현실에 잘 매핑한 소재 선택. 일단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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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인물들이 등장하나, 주인공은 이십대 여성 '마치카'다. 원래 머리숱이 적어 스트레스를 받던 차에, 세상 모든 사람이 대머리가 되어 버렸으니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갑자기 무작위로 시작된 '대머리화(?)'가 오년정도 지나니 안정기에 접어든다. 십대 후반부터 시작되는 대머리화는 이십대엔 거의 대부분이 완성된다. 오히려 십대에 빨리 대머리가 된 잘 생긴 남자 아이돌들이 활동하는 시대다.

물론, 머리카락에 대한 애착 때문에 '머리카락을 소중이 여기는 모임' 활동을 하는 사람들, 심지어 어린아이들의 두피를 이식하는 수술까지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현실로 받아들이는 입장이었고, 마치카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갑자기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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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비하는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너무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서양은 조금 다른 것으로 안다. 다른 신체의 요소들 보다 만만한(?) 차별의 요소, 대놓고 농담을 해도 받아들여야 만 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당사자들에게 그건 아주 강력한 '폭력'일 터이다. 소설은 그런 상황 자체에 대한 인식 뿐 아니라, 다수 중에 포함되지 못한 소수의 입장에 대한 고민을 같이 던진다.

주류가 끼지 못한 비주류의 의식, 한국보다 더한 '집단문화사회'인 일본에선 그 의식의 괴리가 더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민감하게 그 이야기를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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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부리지 않고 우직하게 일하며 돈을 받아 살아가고 싶다.'는 일본인 평균의 생각 안에는 튀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강하다. 묻어서 가는 삶. 그래서인지 소설 전체가 시종일관 차분하고, 관찰자적이고, 조용하다. 다만 이 조용함은 어디까지나 '일본적인' 조용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전혀 다른 풍경이었을 것 같다. 일본인들이 '묻혀서 가는 삶'을 택하는 자리에서, 한국이었다면 누구의 두상이 더 매력적인지를 비교하고 줄 세우고 조롱하는 콘텐츠가 나타날지 모르겠다. 소설 속 동조와 은폐 대신, 노출과 조리돌림. 차분한 관찰자 시선 대신, 훨씬 시끄럽고 잔인하면서도 어딘가 우스운 풍경. 원래 대머리였던 남자가 '급'이 올라가 연애가 수월해진다는 소설 속 설정도, 한국이라면 두상미남/미녀 콘테스트나 관련 예능으로 더 빨리, 더 노골적으로 번졌을 것 같다. 😂

이 소설이 가진 미덕은 분명하다. 다만 그 미덕은 일본 특유의 동조 의식에 깊이 의존하고 있어서, 다른 문화적 맥락에 옮겨놓으면 전혀 다른 장르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인상이 남는다.

✍ 한줄감상 : 흥미로운 소재를 자극적으로 풀지 않고, 차분하게 관찰자적 시각으로 풀어낸 자연주의 SF소설. 상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소설이다.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정보라 작가의 ‘지구의 생물체는 항복하라’가 떠오른다. 가장 엉뚱한 상상력. 노조 활동가가 외계인(문어와 동일하게 생김)을 삶아먹으로 생기는 일이다. 칼비노의 ‘모든 우주만화’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둘 다 같은 '신체/존재의 변화'라는 소재를 다카세 준코보다 훨씬 거칠고 발랄하게 풀어낸 작품들이다.

p10 “ 안이한 공감을 받을 바에야 웃음거리가 되는 편이 낫다. 철저히 증오하고 원망할 이유로 삼을 수 있으니까. 공감에는 악의가 없다. “

p40 “ 자신도 데라(친구이름)도 머리가 완전히 벗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p61 “ 주위 사람들도 차례차례 머리가 벗어졌다. 원인은 여전히 불분명했고 전염병으로 판명 나지도 않았지만, 대머리와 접점이 있는 사람들부터 머리가 빠졌기 때문에 일단 전염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

p116 “ 진짜 머리가 있는, 그것도 빠지지 않은 머리가 아니라 전부 빠지고 난 뒤 새로 자라난 머리죠.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해요. 굉장한 기적, 혹은 지독하고 비열한 기적이라고. 숭배하건 원망하건, 배출구로 기능하기는 매한가지 아니겠어요? “

p171 “ 모두 대머리이기만 하면 된다고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가짜 하나로만 각자 재량껏 겨루자는 겁니다. “

#bookstagram #bookreview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돋아나다_기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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