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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압록강은 흐른다

by 기시군 2026.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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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흐른다 #이미륵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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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여서 '세문전'이라 부르는 이 시리즈가 500권째가 되었다니, 놀랍기도 하다. 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게 '고전'이라 했거늘. 그 클래식들을 모아 이렇게 메가 스터디셀러를 만들 수 있을까? 누적 판매량이 2300만 부라 했던가? 사실 내가 보유한 책들 중에서 시리즈물로는 '세문전'이 가장 많기는 하다. 😂

기념호로 발간된 한국인이 쓴 독일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한번 읽어 넘어가야 할, 내게도 기념적인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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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지주의 아들, 이미륵은 어찌보면 행운아였다. 서구에 관심이 많았던 조선의 지식인 아버지는 우리 전통을 알려주려 하면서도 다가오는 '서구'에 대한 관심을 두고 있었고, 덕분에 아들은 일찍 서양식 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동학과 한일합방을 거치며 성장해 간 미륵은 3.1 운동 운동권 학생이 되어 일제의 수배가 된다.

어머니의 권유로 압록강을 건너, 중국을 지나, 머나먼 유럽으로 도피이자 공부의 길을 떠나게 된다.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그 과정을 잔잔하게 담고 있는 자전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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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기 전날 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한다. '난 네가 다시 여기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p184' 아마 죽을 때까지 이미륵은 이 말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압록강 건너 어딘가, 자신이 돌아가면 여전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 그 구체적인 사람이 그에겐 조국이자 가족이었을 터이다.

문제는 그가 그 약속을 평생 지키지 못했다는 거다. 1950년, 뮌헨 근교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압록강을 다시 건너지 못했다. 돌아갈 조국을 잃은 게 아니라, 돌아갈 조국을 약속해 준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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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속을 붙들고 사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정치적 선언도, 격렬한 분노도 없다. 그가 붙잡은 건 시골에서 거니는 소를 보며 느꼈던 평화, 거북점을 알려주던 점쟁이할미, 시인 친구와의 술자리, 바둑이 무엇인가를 알려준 아버지 같은 것들이다.

해설을 보고 알았다. 1946년 패전 직후 독일에서 이 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정확히 이 지점이라고 한다. 나치즘의 배경에 '피와 고향'을 앞세운 나쁜 낭만주의가 있었다면, 이 소설은 '죄 없는 향수, 오염되지 않은 낭만'을 보여줬다는 거다. 폐허가 된 독일인들이 어느 조선 청년의 잃어버린 고향 이야기에서 자기 위로를 찾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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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당시의 현장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 부분도 좋았다. 사전 모의, 몇 차례 진행되었던 기습 시위,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눠주던 '시민'들. 교회에 갇혀 산채로 불타 죽은 조선인들. 비밀활동에 들어간 이미륵. 4.19로 이어지고, 80년 광주에서, 촛불시위에서, 얼마 전 빛의 혁명까지, 그 DNA는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이미륵 본인은 그 싸움의 한복판에 있었으면서도, 거리가 아닌 기억으로 조국을 붙드는 쪽을 택했다. 그가 압록강을 건너 떠난 자리에서, 남은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 약속을 이어갔다. 누군가는 거리에서 싸웠고, 누군가는 평생 한 번의 다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반나치 활동을 하다 사형당한 동료 교수의 유족을 돌보던 조선의 지식인. 1950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너무 늦게 우리에게 알려졌다. 

✍ 한줄감상 : 우리를 100년 전 질곡의 조선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차분하지만 힘 있는 소설. 너무 늦게 알게 된 소설.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이미륵이 한국을 떠나고 나서 남은 사람들이 살아낸 이야기들을 담은 황석영선생의 ‘철도원 삼대’가 떠오른다. 떠난 자와 남은 자들의 이야기. 같이 보기 좋겠다. 

덧,
세째딸 이름이 '셋째'인 시간이 100년 전 조선이었다. 100년 전 미륵이 들었던 이야기는 유럽에선 바닥에 남의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줏어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세월이 두 장소의 특성을 바꾼다. 도둑이 넘치는 유럽과 카페에 노트북을 두고 외출을 해도 괜찮은 '한국'이 되어 버렸다. '유럽인들이야말로 바로 참된 사람들이로구나!' 감탄했던 주인공의 부친에게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단 생각을 했다. ☺️

p25 “ 나는 그 양지바른 길과 조용히 그 길 위를 걸어가는 소를 보는 것이 즐거웠고, 마치 피리 소리를 듣는 것 같았으며, 한없는 평화를 느꼈다. “

p52 “ 불공 어머니는 내게 설명하기를, 거북은 사람들의 운명에 관해 명상을 하고 있는 중이며, 그 때문에 거북은 행운과 불운을 예언할 수도 있다고 했다. “ 

p72 “ 시인에게는 술이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아신다면 얼마나 좋겠어! “ 

p95 “ (바둑) 상대방이 돌 하나를 놓으면, 이 여운이 다 끝날때가지 기다리도록 해라. “

p107 “ 무서운 광경이었다. 우리나라 농민들이 두들겨 맞아 피범벅이 된 채 무거운 수갑에 차여 끌려 왔다. “ 

p167 “ 우리가 유렵인들에게 뒤지고 있는 현대 학문들은 이 철학적 숙고의 산물이 아니라, 자연에 관한 실제적 지식의 산물이다. 자연과학에서도 그러하고 의학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 

p184 “ 나는 너를 깊이 신뢰한다. 부디 용기를 내렴! 너는 어렵잖게 국경을 넘어갈 게다. 그리고, 마침내 너는 유럽으로도 가게 될 것이다. 이 어미 걱정은 하지 말아라! 난 네가 다시 여기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세월은 정말 아주 빨리 지나간단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넌 내 인생에서 내게 많은, 대단히 많은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자, 내 아들, 이제 혼자 계속 가거라!”  

#bookstagram #bookreview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압록강은흐른다_기시리뷰 #황석영 #철도원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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