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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정서적인 틈도 치밀하게 밀고들어오는 스타일 탓에 작가 최은영의 작품은 좋으면서도 땡겨하지 않는다. 밝은밤은 건너뛸까 했었다. 그러나 새로 출시된 리커버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 재미야 보장되는 작가인걸 아는터라 또 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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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야 너무 많이 알려져서 소개할 것이 있나 싶다. 이혼의 아픔으로 '회령'이라는 강원도 해안가 작은 도시로 직장을 옮긴 주인공은 우연히 연을 끊고 살았던 외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와 차츰 가까워지면서 지금까지 들어본적 없는 할머니의 어머니, 즉 증조모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백정의 딸로 태어나 일제와 전쟁을 살아내고 친구와 가족을 지키는 할머니의 이야기들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사건과 만남이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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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 #정세랑 의 #시선으로부터 가 떠오르긴 하지만 많이 다르다. 정세랑의 작품이 영화적이라면, 밝은밤은 연극적이다. 치밀한 플롯에 디테일한 연출이 잘 짜여진 실내극을 보는 듯한 기분을 준다. 거기에 재능넘치는 묘사와 대사는 소설의 몰입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감정이 만나는 순간, 감정이 쌓이는 순간, 그것이 웅축되어 가슴에 파고드는 순간을 이처럼 잘 그려내는 작가는 정말 드물다. 특히 여성이라면 그 여성주의 서사 안에 녹아있는 울림이 마음으로 전달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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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장편으로 이정도면 너할나위 없다. 다만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이 좀더 입체적이였으면 싶었다. 메인 인물들 중 몇명을 빼면 대부분은 평면적이다. 특히나 배경을 깔리는 조연들, 특히 남성들은 좋은사람 또는 나쁜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여성서사에서 폭력을 행하는 남성성을 강조하려다 보니 그럴 수 도 있겠싶었다. 다만 악역이라도 좀더 생동감있고 현실적인 인물로 만들어 내었다면 좀 더 좋은 작품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덧,
아무튼 전작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도 많이 났다. 오래전 시골로 놀러갔을때 손주가 좋아 어쩔줄 몰라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작가는 여전히 가라앉아 있는 그 무엇을 생생하게 끄집어내는것에 능하다.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번엔 여성이었고 다음은 어떤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내용을 내어 놓을지 궁금하다. 아니 계속 여성을 이야기를 해도 좋겠다. 아무튼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더 업그레이드된 최은영작가를 만나고 싶다. 😊
p54"그녀에게는 그런 재능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재능. 부당한 일은 부당한 일로, 슬픈 일은 슬픈 일로, 외로운 마음은 외로운 마음으로 느끼는 재능."
p86"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p156"이혼 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더 행복한 모습으로살아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다. 잘 사는 것이 복수라고, 보란듯이 잘 살면 된다고 말하는 응원의 목소리가 내 등을 천천히 두드리는손길에서 내 등을 후려치는 채찍이 되는 동안에"
p233"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날 아침 의사가 내게 귀리의 죽음을 알렸을 때 느낀 감정이 슬픔만은 아니었음을 기억했다. 나는 안도했다. 나의 일부는 안도했다. 귀리의 고통이 이제 사라졌다는 사실에, 고통을 받는 그애의 모습을 보고 겪어야 했을 나의 괴로움이 끝났다는 사실에. 그 이기적인 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p333"나를 데리고 늦가을에 대구로 피난을 가는데어머니가 바들바들 떨던 것이 기억나요. 자꾸 농담을 하면서, 나는 어머니가 추워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떨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어머니는 일평생이 그런 식이었죠. 바들바들 떨면서도 제 손을 잡고 걸어갔어요. 어머니는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어요. 무서워서 떨면서도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나는 어머니를 닮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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