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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센티멘탈도 하루이틀

by 기시군 202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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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구석에 있던 김금희 작가의 단편 첫 소설집을 찾았다. 먼지를 털어내고 브라운톤의 젊은여자가 그려진 구판의 표지를 보니 왠지 반가웠다. 뒤적거리다가 간단하게 라도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기억에 새롭다. 십년을 젊은 김금희 작가의 초창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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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의 단편이 빼곡하다. 신춘문예 당선작 '너의 도큐먼트' 부터 임신한 삼수생 이야기인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벚꽃밖에 없는 K시에서 서울로 상경한 시골처자의 모험기 '쉿, 우리집에 왜 왔니', 다단계에 휘말리는 청년의 심리묘사가 인상적이였던 '아이들' 등 보편적인 도시 주변부 우리의 삶을 진득하게 응시하는 톤이 일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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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없이 그려낸다. 막막한 현실에 부딪혀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우리, 또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 말이다. (지금보다) 젊은 작가는 꼼꼼히도 주변을 바라본다. 작품들은 일종의 '서민 어드벤쳐'라고나 할까. 부유층이 아닌 서민들의 공간에서 그들의 모험과 실패, 그리고 위로와 결심을 보여준다. 들뜨지도 않게 깊게 쳐다보고 세밀하게 그린다. 다정하다 말할순 없다. 조금 낮은 온도의 찬기 가득한 세상이다. 겨울, 들숨과 날숨이 만들어 내는 입김이 느껴진다. 세상에 대한 균형은 작가의 이러한 자세에서 만들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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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살펴보면, 작가는 작품들 안에선 작게 절망한다. 그리고 근거없는 낙관은 피하되 희망의 끈은 쉽게 놓지 않는다. 현실의 직시라는 보편성 위에 개별인물들의 특수성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데뷰시점부터 이미 그녀는 좋은 작가였다. 꽤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 곱씹을 구 있는 이야기들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역시 좋은 책이다.

덧,

신간이 나오면 바로 예약구매를 하는 작가다. 작년에 단편집 #우리는페퍼로니에서왔어 를 냈으니 올해는 장편 한 작품 나올 타임이다. 일단 기다려 본다. 😁

p80"제 나이 때마다 할 일이 있는데 감상적으로 굴지마라. 센티멘탈로 하루 이틀 이지"

p82"물어보니 마의 닉네임은 ‘슬픔이여 안녕’이었다. ‘문상맨’보다 서정적인 이름이기는 했다. 온라인에서는 슬픔이 사라지느냐고 묻자, 마는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소유해야 할 것도, 고쳐주어야 할 것도, 철마다 갈아주어야 하는 것도, 심지어 소리도, 냄새도, 빛도, 어둠도, 내 몸도, 죽음도 없다. 마는 그래도 우리의 흔적들은 그곳에 남을 거라고 했다. 그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들이고 그렇기에 무한한 인터넷을 떠돌며 영원히 남을 수 있다."

p213"이 도시는 참 묘해서 어느날은 영원히 서울 시민으로 살 수 있을 듯하다가도 월급이 밀리거나 생활비가 떨어져가면 완강히 내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파도의 반대 방향으로 헤엄치는 것처럼, 물살을 세차게 가르면 가를수록 무언가가 나를 저만치 내보냈다. 혹은 인파를 헤치며 무언가에 쫓겨 달아나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렇게 개미굴처럼 이어진 서울의 골목을 내달리다보면 용케 내 이름으로 된 주소를 갖기도 하고, 나만큼이나 우왕좌왕하는 남자들과 연애도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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