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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다시 피아노

by 기시군 202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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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였다. 절대음감이였던 사촌동생이 방금 라디오에서 들은 음악을 떠듬떠듬 바로 피아노로 쳐내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세상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인간과 없는 인간으로 나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노랑님( @norang2019 )의 책소개를 들으면서 그 순간이 떠올랐다. 평생 연주치로 살아온 인생, 중년 아저씨의 피아노 연주 분투기라니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주인공은 영국 진보 언론의 상징 '가디언'의 편집국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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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지 편집국장 '앨런'은 어느날 피아노 캠프에 참가했다가 피아노 레퍼토리 가운데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라고 하는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를 완주하는 어느 아마추어 연주자에게 꽂힌다. 나도 그 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열망에 휩쌓여 일년을 자라보고 연습을 시작하게된다. 문제는 하루 24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써야하는 바쁜자리가 가디언지 편집국장자리라는 것이다. 특히나 연습에 몰두해야할 그 기간, 편집국장님은 전세계적인 사건인 #위키리크스 의 #어산지 와 복잡하고 난이도 높은 연속 특종을 터트리는 중이었다. 그에게 하루에 10~20분 연습시간도 쉽지 않다. 일년 뒤 그는 연주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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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구체적인 목표를 놓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건 보기 좋다. 특히나 그 목표가 '무용한 것'일 때 더 빛난다고 생각한다. 사실 피아노와 상관없는 중년 언론인이다. 오로지 그에게는 '멋진 한곡'을 연주해 내고 싶다는 자신만의 욕망이 존재한다. 그 욕망의 기록들을 일기형태로 쌓아갔다. 매일매일 그의 '일'과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를 언론인 특유의 편안한 필치로 풀어내었다. 연주가 잘 안되어 고민할때 같이 고민하게 되고 '어산지'와의 일이 틀어질때면 긴박감을 느끼기도 한다. 작은 무대에서 서서 떨리는 그의 기분을 간접 체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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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완독은 했지만, 책은 2/3정도만 소화했다는 느낌이다. 디테일한 연주 연습 내용은 내가 피아노에 대해, 아니 음악에 대해 너무 무지한 덕분에 충분히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평소 궁금했던 '음악'에 대한 상식은 이 책 덕분에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책 중간 중간, 작가는 유명 음악가도 만나고 정신과 의사와도 소통을 하여, 음악의 악보를 외우는 원리 등 '음악 연주자'를 공부하고 있다. 나 역시 평소에 저렇게 복합한 음악을 악보도 없이 외워서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보며 감탄했던 적이 많았는데 그 원리를 조금은 알것도 같았다. 그리고  '원래 일'인 언론에 대해서도 '큰 사건'이 있어 그 이야기를 따라가며 특종 및 취재자, 취재원의 긴장등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형태의 독서 경험이었고 그 경험은 나쁘지 않게남은다 나도 뭐 연주할꺼 없나 두리번 거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

덧,
한가지 흠을 잡자면, 책이 너무 두껍다. 😭작은 글씨에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 저자의 입장에선 모든 기록을 다 남기고 싶어했겠으나, 독자의 입장에선 조금 루즈한 부분은 들어내는 편집을 하는 것이  '책의 성공'에는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도 완독에 꽤 오랜시간을 투자했다. 😁 그래도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p19" 어느새 피아노 연습은 내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어 있었다. 현실 도피라 해도 좋고, 어리석은 충동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내 몸이 피아노를 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출근 전 20분을 피아노 앞에서 보낸 날은 뇌의 화학 반응이 달라진 것만 같은 강력한 느낌을 받곤 했다. 연습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마치 내 뇌가 ‘안정’된 것처럼 느껴졌고, 앞으로 열두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모두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의 원천이 정확히는 화학 반응이 아니라 신경회로망의 재편임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

p215" 오늘 저녁에 깨달은 게 또 하나 있다. 연주 기술이라는 면에서는 열여덟 살 때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나았을 테지만 음악을 ‘느끼는’ 면에서는 지금이 훨씬 낫다는 실감이었다. 이제는 음악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거기에 형태를 부여할 자신이 있다. 
"

p565" 피아노 앞에 앉으니 묘하게도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어차피 완벽한 연주란 불가능하다. 나는 그저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1년 넘게 매달려온 개인의 탐험이 맺은 결실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깊이 심호흡을 하고 엄지와 검지를 그러쥔 뒤 옥타브 C를 내리친다. 갑자기 관객의 존재는 내 머리에서 사라진다. 나의 인식 세계는 여든여덟 개의 건반으로 한정되는 좁고 익숙한 공간으로 줄어든다. 그 한 점 집중의 공간 안에 있는 무의식의 영역에서부터 음표들이 샘솟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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