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Life

분더카머

by 기시군 2022. 5. 12.

✔️

📕

일단 나와는 글쓰기의 지향점이 다르다. 나는 지식소비자이며 복잡한 생각을 쉽게 정리하려 한다. 그녀는 지식생산자이며 사유의 밀착을 통해 텍스트를 추출해 내고 개념 얽힘에 예술적 리듬감을 만들어 색다른 읽기의 경험을 주고 있다. 사유의 대상은 저자의 삶 안에 촘촘히 박혀있는 이미지들이다. 책은 에세이의 탈을 쓴다. 끄집어낸 화두에서 시작하여 본업인 서구 예술과 철학의 각종 관념들을 묶어낸다. 이런 스타일 텍스트는 취향이라 포장된 교양의 진입장벽이 있어서 어렵다. 낮은교양과 학습보다는 본능에 기대어 산 나는  이 책의 절반 이하를 즐긴것으로 보인다. 😊

📗

1.

'분더카머'라는 말부터 이해해야 한다. 근대 서구 부르조아지 등 살만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자기만의 수집물을 보관하는 방을 '분터카머'라 불렀다한다. 저자는 자신 내면에 자리잡은 '분더카머'에서 다양한 소재의 고유한 사물,이미지,개념,기억 등을 끄집어 낸다.

2.

그리고 처음보면 낯설 수 밖에 없는 그녀의 글쓰기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문장이 진행되면서 떠오르는 연관 개념들과 단어들이 얽기고 다시 분기하여 이야기와 이야기 틈을 벌리다 다시 합쳐지는 스타일. 호불호가 갈리긴 하겠지만 신선하다.

3.

다음은 그녀가 다루는 내용을 보자. 풍경, 소풍날의 기억, 어린시절 친척집을 뒤지던 추억, 빵집, 번역의 괴로움, 어둠, 묘지와 비석, 꿈, 메르헨(옛이야기), 동어반복, 포르노그래피 등을 이미지, 생각, 개념화된 단어로 기술하며 거기서 파생되는 문사철의 교양을 다룬다.

📘

저자의 작법 스타일로 감상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저자가 풍성하게 담아논 개념 중 일부를 차용하여 기술한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서술은 내겐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될 것이다. 🤔

길항하는 단어들의 연속적인 분절은 의미로서 땅에 깊게 박히지 못하고 수증기처럼 흩뿌려진다. 지식의 발현이 단순히 현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삶의 의미를 침잠시키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아는 까닭에 낮은 가독성은 그녀의 **業**과 遊戱를 존중함으로 갈음하려 한다. 다만 꼭꼭 눌러내려쓴 문장과 단어들은 높은 기밀성 탓에 의성어 하나 파고 들어갈 구석이 없다. 텍스트들은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 보다 지휘자의 명을 따르고 있어 독자의 양가감정을 자극한다. 순도높은 질료를 찾을려는 노력, 흔적, 자취, 징표 모든것은 메타포에 대한 저자의 갈망이 녹아든 형국으로 보이며, 간극을 매우는 기호와 상징체계는 그것을 대리표상한다. 그녀는 세계와 타자에 대한 의견, 추정, 의혹, 기대욕망, 체념을 함의하는 동사구의 변형과 텍스트의 굴절에 대해 필사적이나 결론적으론 함묵한다. 자신의 우울은 텍스트에 가려져 침윤되어 있다.

📙

그나마, 상대적으로 쉽고 구체적으로 서술된 '금지된 말들' 파트을 통해 작가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악의 근원은 무지몽매한 남자들의 폭력이다. 모든 피해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겨내고 설계해 나간다. 그 중간결과물인 이 책.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고 좋은 독서 기회를 준것에 감사한다. 저자의 스타일로 글을 쓸 능력이 되지 않아 무지를 핑계로 계속 쉬운 글로 책에 관한 글을 기록할 예정이나,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의미를 함유한 단어와 문장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p19"분더카머는 개별자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겪어온 고유한 역사와기억의 진열실이자 마음의 시공간의 상징체다. 기억이란 대부분의경우 그보다 훨씬 거대한 망각의 잔여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가각자의 마음속에 지은 분더카머 안에는 결코 미적으로 높이 평가되는예술 작품의 원형이나 고도로 완성된 지적인 사유의 언어가 저장되어있지 않다. 오히려, 언뜻 보면 무가치한, 부서진, 깨진, 닳은, 기원과이름을 모를, 무수한 말과 이미지의 파편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공존한다. 이 사적인 언어와 이미지의 파편들은 르네상스인의분더카머에 진열된 사물들 같은 객관적 지식의 탐구 대상을 넘어서삶의 매 순간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안팎에 다양한 감각과 감정을유발하고 우리 또한 그것을 역으로 투사하는 매개체다."

p277"우리. 톤의 공동체. 그것은 공명이자 화음. 하모니. “아르모니아”는 오늘날 주로 음악 용어로 쓰이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선박을 건조할 때 목재의 각 부분을 꼭 맞게 연결하는 조임새나 이음매 또는 그 도구와 방법을 뜻하기도 했다. 아르모니아는 톤에서 톤으로, 우리, 기호에서 기호로, 미완의 파편에서 상실 이후의 잔존으로, 말에서 다른 말로, 이행하며 너르게 연결한다.....범상한 두 접속사는 그러나 횔덜린의 시에서라면 진술의 논리적 전개를 보장하는 순접과 역접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자기 앞과 뒤에 놓인 말 조각들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문법 요소인지, 어떤 시간성과 인과의 관계인지 거의 무심하다. 단지 언어 안의 균열을 조이고 심연을 메꾸는, 요원한, 과제에 충실할 뿐."

#분더카머 #윤경희 #문학과지성사 #에세이 #서양예술 #철학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 #추천도서 #bookstagram #book #essay #한예종 #책추천 #책소개 #서평 #독서노트 #비교문화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0년  (0) 2022.05.12
해가 지는 곳으로  (0) 2022.05.12
이동진 독서법  (0) 2022.05.12
박사가 사랑한 수식  (0) 2022.05.12
자기앞의 생  (0) 2022.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