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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 작가 때문에 읽었다. 얼마전 피드에도 올렸던 #당신을위한것이나당신의것은아닌 을 읽으면서 정작가가 가장 애정한다는 작가가 '로베르토볼라뇨'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좋아하는 작가를 보면 정작가의 독특한 글쓰기의 근원을 알게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검색해보니 꽤 대단한 작가였다. 아무튼 볼라뇨의 책 중 스스로 베스트라 생각한다는 이 책 '칠레의 밤'을 고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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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시인이자 평론가인 늙은 신부는 누군지 모를 '늙다리 청년'에게 칠레에서의 자신의 일생을 회고한다. 유명한 보수 비평가 '페어웰'과 친분을 쌓아가며 문단에서 명성을 높이며 사회지도층에 오르는 과정을 이야기 한다. 정의로운 인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안에 쿠테타로 죽어가는 좌파 대통령, 집권에 성공한 군인 피노체트, 고문을 자행하던 CIA 미국인과 작가를 지망하는 그의 부인 이야기 등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 시킨다. 그저 잘먹고 잘 살고 싶은 신부의 시각으로 그려지고있다. 질곡의 칠레의 역사적 현장에서 생존력 있는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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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절반까지 읽었음에도 아직 한문단이 끝나지 않았다. 완독 후 확인해 보니 딱 두문단으로 책이 구성되었다. 길고 긴 호흡안에서 사건과 사건간의 경계는 희미하다. 불쑥 나타나는 인용들은 정말 다양하다. 진행에 관계없는 묘사들도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독자를 만난다. 놀이같이 출렁이는 은유와 생략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소설가들과는 확실히 다른 질감을 보여준다. 낯설다가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재미가 느껴진다. 정지돈작가가 느꼈던 매력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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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장에서 정의를 하자면, 이 소설은 상념의 소설이다. 현실에 대한 악담을 문학의 틀로 담아낸 시도다. 많이 알려져 있는 '칠레'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작가는 보여주고 싶었던것 같다. 볼라뇨는 마르케스 이후 중남미 소설의 대안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 시대에 와서 문학을 한다는 것과 비슷한 환경이 아니었을까? 민중문학을 할 수도 있지만 문학 형태의 해체를 통해 시대에 저항했던 예술가가 있었듯이 기존질서의 '파괴'에 동참함으로써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질적인 질감이 조금은 친숙했던 이유는 그 기억 탓일 것이다. 만나지 못했을 작가를 만났다. 좋은 기억이 될것 같다.
덧,
잠시 더 생각해 봤다. 시대에 비춰 볼라뇨 스타일은 효과적이었다. '파괴' 자체가 '창조'일 수 있는 시대. 그러나 이 논리가 전 시대적으로 통하진 않을 것 같다. 이런 형식은 '파괴'에 치우칠 수 밖에 없는 스타일이라 자칫 자기 상념의 집합으로만 작품이 치우칠 우려가 있을 듯 하다. 사족이었다.
p11”인상이란 우리를 최후의 진실, 유일한 진실로 이끌어 가는 오류의 연속이다.”
p62”눈이 가볍게 움직이면서 부동상태가 파괴되어 형성된 페어웰의 표정이 내게는 무한함의 공포 혹은 무한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공포의 의미를 획득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한은 공포의 숙명이기도 하다. 공포는 상승하고 또 상승할 뿐 결코 상승을 멈추지 않기에, 우리의 비탄이, 우리의 낙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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