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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by 기시군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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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깊게 들이마시는 시인의 흑백사진에서 책 전체를 느낄 수 있다. 아니 그의 삶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순간의 느낌이었다. '이 한장의 사진이 총론이며 글들은 각론에 불과하다' 라고 메모했고, 책을 다 읽은 지금에도 그 느낌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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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출간된 에세이집에 2013년까지 발표된 글들을 추가해 펴낸 개정판이다. 1부에서 3부는 시인의 어린시절부터 시작한다. 행복했던 시골생활이 차가운 도시생활로 바뀌고, 시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펜 가는 대로 적어내고 있다. 이미 낮고 어두운 감성은 내면에 깔리고 있었던듯하다. 4부에서는 더욱 무거워진다. '죽음' 근처에서 사유한 흔적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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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고독' 그리고 '죽음'은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자 원망의 대상이다. 그 감정들에 집중하여 피하지 않고 마주대하는 행동이 그들에겐 '시를 쓰는' 것 일터이다. 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어떻게 차가운 도시에 떠밀려와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짐'을 당했는지. 수수하게 꾸밈없는 글타래 안에서 그녀의 사람들과 그를 통한 사유의 과정을 통해 그녀의 속살을 본듯하다. 그녀는 그녀가 경험한 '죽음'들은 직시하고 있었다. 공포에 떠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앓고있는 병과 예정된 '단절'에 대해서도 떨기보단 이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근원적인 것을 찾고자 하는 시도를, 욕심을 계속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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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이라 선언했던 시인, 난 그 루머가 계속되었으면 싶다. 이 짧은 피드에서 시인과 시에 대해 어떻게 더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과 같은 부정과 훼손의 단어로 세상에 일갈을 날리던 시인, 시대의 위선에 대한 혐오와 비판을 위악의 형태로 승화시켰던 매력적인 시인. 아마도 산문으로 만나는 그녀의 마지막 흔적이 될 듯하여 안타깝다.

덧,
책장에서 #이시대의사랑 을 다시 꺼내보았다. 술한잔 하는날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시는 알콜과 만났을때 시너지가 난다. 😊

p22"말하자면 나는 애초에 내 인생을 눈치챘다. 그래서 사람들이 희망을 떠들어댈 때에도 나는 믿지 않았다.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택했다.그러나 애초에 나는 내가 백조라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미운 오리 새끼라고 손가락질할 때에도 나는 속으로 코웃음만 친다. 그리고 잡균 섞인 절망보다는 언제나 순도 높은 희망을 산다.생각해보면, 우우, 지겹고 지겹다. 눈 가리고 절망하기, 눈가리고 희망하기, 아옹! 아옹!"

p59"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 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p162"한번 생긴 공포는 무수한 세포분열을 하며 뚱뚱하게 살찌고, 그렇게 해서 우리 존재의 바탕에 자리잡은 공포는 우리의 저 깊은 안쪽에서 보이지 않게 우리를 조종하면서 우리 삶을 이끌어가고, 그 궁극적인 목적지는 죽음이며, 거기까지 가는 동안 많은 죽음의 형식을 실험하고 시연하지.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공포가 꽃수레에 올라타고 자신의 목적지인 죽음에 이르는 과정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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