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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너무 시끄러운 고독

by 기시군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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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왜 구매했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상당히 높게 평가받는 체코작가란 소개글에 넘어갔지 싶다. 내가 좋아하는 #쿤데라 와 동향, 쿤데라는 체코를 떠서서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한 반면, 이 작가는 조국을 떠나지 않고 공산 독재치하에서 고생하며 힘들게 작품활동을 하였다 한다. '보후밀 흐라발', 80년대 운동권에서 대학가 서점에서 비제도권 책을 만들어 유통하듯, 체코에서 노동을 하며 지하문학활동을 하던 작가라 하니 궁금해 질 수 밖에 없다. 작가의 대표작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었다. 표지는 이쁘고 책을 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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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으로 구성된 짧은 장편은 매 장마다 비슷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35년째 지하에서 폐지압축공(기계에 책과 폐지를 압축하는 노동자)으로 일하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일을 하며 그는 나름 즐겁다. 버려지는 책들을 정리하다가 마음에 드는 좋은 책들을 챙긴다. 의미있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일을 하며 그는 추억에 잠긴다. 전 여자친구와의 조금은 우스운 에피소드, 우연히 같이 보내는 시간을 가졌던 집시소녀. 그런 그에게 사건이 발생된다. 최신기계로 대량의 책을 폐기할 수 있는 장비와 그 일을 수행하는 젊은 청년들이다. 그는 충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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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작가는 잡역부, 철도원, 보험사직원 그리고 이 소설의 소재가 되는 폐지압축공의 세월을 보냈다. 정상적인 작품활동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블루칼라 노동자로서의 삶을 몇십년간 이어가며 짬짬히 작품집필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도 그 때의 노동경험이 녹아있다. 지하실 벌레가 드글거리는 환경의 노동중에도 '멋진 책'을 만났을때의 작가의 쾌감이,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삶을 견디는 자세의 한가지 구체적인 예를 한권의 소설로 만들어 낸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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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은 유머스러운 부분도 있으나 대부분은 사념과 사색의 고백이 주를 이룬다. 현재의 자신를 둘러싼 척박한 환경안에서 나열되는 화자의 과거는 삶의 방식, 실존에 대한 형태와 의미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더욱이 바로 이어 나타나는 자신과 관계없이 닥쳐오는 '미래'에 망연자실 무너지는 모습은 시대의 출렁임을 몸으로 느끼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낯선풍경은 아닐 것이다. 스펙타클은 전혀없는 사색의 소설이라 흥미진진했다 하긴 어렵다. 하지만 문장들 하나 하나의 깊이는 또 다른 독서의 즐거움을 준다.

덧,

정리하다보니 생각이 났다. 내가 왜 이책에 처음 땡겼는지…제목 때문이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니 이런 언벨런스한 제목은 무언가 영감을 준다. 너무 뜨거운 아이스크림이라거나 아주 즐거운 죽음, 또 뭐가 있을까? 너무 행복한 망신 등. 제목의 힘도 무시하면 안된다. ☺️

p9"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

p10"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 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p11"진정한 책이라면 어김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를 가리킬 것이다."

p12"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p19"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들로 조밀하게 채워진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p75"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인간을 덮친다. 이 모두가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걸 온 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니,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이 일을 하면서 전능의 무한한 영역에 내던져졌음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p127"나는 이러고 있는 게 좋다. 저녁 시간에 레트나 대로를 걸어다니는 게 좋다. 공원 냄새, 싱그러운 풀과 나뭇잎 냄새가 강물에 실려와 이제 도로 위에 떠돈다. 나는 ‘부베니체크‘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잔을 시킨 뒤 멍하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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